반성문

by 거의모든것의리뷰

과거와 미래를 잇는 순간이자 우리가 유일하게 숨 쉴 수 있는 시간이다. 하지만 그와 함께 별로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 시간이기도 하다. 퇴근한 이후, 몇 시간이 지나 과거를 돌아본다. 뭐 했지? 무언가를 했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 같다. 과거의 순간들이 뭉터기로 없어진 느낌. 몇몇 핑계가 있긴 하다. 오늘은 일이 힘들었으니까, 오늘은 할 기분이 아니었어. 오늘 하루쯤은 괜찮아. 하지만 이 시간을 맞이하기 전에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마음을 먹고 있었다. 영어 공부를 한다든지, 글을 한편 쓴다든지, 책을 읽는다든지 무언가 그래도 나의 미래를 위한 행위들을 하려고 했었다. 사실 오늘만의 다짐은 아니었다. 꽤 오랜 시간 동안 다짐했다. 새해에도, 어젯밤에 잠에 들기 전에도, 오늘 아침에도 말이다. 그럼에도 그 많은 시간이 아직 채 먹지 못한 솜사탕이 태양에 녹아 사라져 버린 것처럼 달콤한 향기만 남긴 채 사라졌다. 내일은 먹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과 함께.


어제도 분명히 반성을 했었다. 이제는 핑계 대지 말아야지. 그런데 오늘 지금 이 순간에도 반성을 하고 있다. 이러면 안 됐는데. 의지가 문제였을까, 명확한 목표가 없는 것이 문제였을까. 한 가지 확실한 건 시간은 있었다. 이 순간이 점점 더 많아지는 것 같은데, 스스로에게 너무 안일한 줏대를 들이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고등학교 때는 안 그랬다. 해야 할 것들이 있었고 그것들을 모두 완료한 이후에야 놀기 시작했다. 아무런 거리낌 없이 놀 수 있었던 바탕에는 최소한의 일들이 마무리되었기 때문이었다. 다 놀고 난 이후에는 오늘의 할 일이 아닌 내일의 일들을 했고, 내일도 놀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과 함께 하루를 마무리했다.


그 시절 나의 동력은 노는 것이었고, 그것에 대한 스스로에 대한 제한과 보상이 따라왔다. 하지만 지금은 딱히 없다. 제한도, 보상도 시간에 이끌려가듯 글을 쓸 때도 있었고 책을 읽을 때도 있었다. 그렇다. 주체성이 빠졌다. 능동적으로 스스로에 대한 무언가를 했던 시절과 수동적으로 무언가를 하는 지금 이 순간이 도대체 무엇으로부터 다른지 알아내야 했다.


아마 첫 번째 이유는 지금의 목표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하나의 목표를 위해 달려가기 위해 노력했던 그 순간들은 꽤 단순했다. 공부를 하면 성적이 오른다는 단순한 진리를 통해 앞으로 나아갔고, 공부를 하는 계획을 세우는 것은 너무 많은 참조와 방법들이 있었기 때문에 부족한 부분들에 대한 약간의 보충만 해주면 아무런 문제 없이 돌아갔다. 물론 성적이 나오지 않으면 수정 사항이 있기도 했지만 그것들이 큰 틀 안에서는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자유시간이라는 이름아래 자유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싶다는 그저 소비적인 마음과 지금이 가장 좋은 효율을 가질 수 있는 때라는 것을 알면서도 좋은 자유시간을 보내는 것에 대한 번아웃이 온 것 마냥, 눈앞에서 눈을 감고 만다.


이런 무기력은 해답이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니, 해답이 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살아간다는 것이라는 것을 사실 최근에야 깨닫게 되었다. 삶의 망망대해에서 표류하며 북극성을 향해 나아가려고 한다. 하지만 북극성이 아닌, 무지개를 쫓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가야 하는 불합리함을 삶은 요구한다. 부처가 되어 해탈이라도 하지 않는 한 커다란 불합리라는 굴레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다. 여태까지 쌓아왔던 것을 포기하기엔 사실 그다지 멀리 오지도 않았건만 너무 많이 와버린 것 같은 불안감이 서늘한 가을 아침의 공기처럼 몸을 은근히 감싼다.


누군가 말했다. 윤리학은, 착하게 살아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고, 무엇인가를 선택할 때 선택을 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나는 시간에게 선택을 맡겼을지도 모른다. 이대로 아무런 시간이 지나갔을 때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는 바보 같은 대답을 기다렸던 건 아닐까. 나의 선택이 아니라 미래의 나에게 시간의 이자까지 쳐 그의 어깨에 무기력을 덤으로 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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