봐야할까?
"일을 왜 이렇게 해! 내가 그렇게 하지 말라고 말했잖아! 똑같은 말 또 하게 할 거야!"
부장의 목소리가 사무실을 가른다. 데시벨로 측정하면 평소보다 12dB 높다. 과장이 고개를 숙인다. 각도는 45도.
"오늘따라 심한 것 같은데요?"
옆자리 대리가 속삭인다.
"오늘 이사님한테 한 소리 들어서 부장님 기분 안 좋으니까 조심해."
선배가 대답한다.
"어우~ 전쟁이다 전쟁."
조용했던 사무실이 금세 긴장으로 가득 찬다. 멀리서 들려오는 누가 봐도 화난 목소리지만 평소보다 더 격양되어 있는 것은 분명하다. 끝이 없어 보이는 이사-부장, 부장-과장, 과장-대리로의 수직 이어달리기 속에서 말들이 내려간다.
어디까지 내려갈지는 전적으로 바통을 이어받는 사람의 의지다.
조직에서 화는 중력의 법칙을 따른다.
제1법칙: 화는 물처럼 위에서 아래로만 흐른다.
이사 → 부장 → 과장 → 대리 → 신입 → (집에 가서) 반려견. 역방향은 불가능하다. 대리가 부장에게 화를 내면? 경력이 끝난다.
제2법칙: 화 에너지 보존 법칙
이사가 부장에게 준 화 100만큼은 어딘가로 가야 한다. 부장이 소화할 수도 있고, 아래로 전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라지지는 않는다.
사라지지 않는 것을 넘어 증폭되기도 한다. 갖고 있던 감정과 전달받은 화가 일정 수준이 넘어가면 그다음 사람에게 모든 화가 더해져 전해진다. 부장이 이사에게 받은 화 100에 자신의 좌절 30을 더해서 과장에게 130을 전달한다. 과장은 거기에 자신의 억울함 20을 더해 대리에게 150을 준다. 시스템 전체의 화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마치 술게임의 벌주처럼 말이다.
사람들이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위계가 생겨났다. 힘이 강한 사람, 머리가 좋은 사람, 잘생긴 사람 등 각자의 능력을 발휘해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가려 한 사람들이 모여 권력을 만들고 한 사람의 개인보다 더 강한 조직의 힘을 운용하게 되었다. 그리고 인간은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종으로 변화하게 되었다.
이와 동시에 권력자와 비권력자 사이의 힘의 차이는 눈치를 만들었다.
조선시대를 보자. 관료는 왕의 표정을 읽어야 했다. 미간이 좁아지면 위험 신호다. 입꼬리가 올라가면 기회다. 잘못 읽으면? 파직되거나, 심하면 목이 잘렸다. 생존이 걸린 문제였다.
이 문화는 사라지지 않았다. 형태만 바뀌었다. 왕과 신하는 임원과 직원이 되었다. 궁궐은 사무실이 되었다. 하지만 구조는 같다. 위계 사회에서 아래에 있는 사람은 위에 있는 사람의 눈치를 봐야 한다.
박대리는 레이더가 있다.
오전 10시 32분. 그는 이사실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는다. 부장의 걸음걸이를 파악한다. 평소보다 빠르다. 얼굴은 더 붉다. 미간이 가까워져 주름이 진해졌다. 이 미세한 신호들이 박민수의 뇌에서 처리된다. 0.3초 만에 결론이 나온다. 위험.
그는 즉시 행동한다. 의자를 책상에 붙인다. 허리를 곧게 펴고 눈은 모니터를 향한다. 일하는 척의 준비 자세. 모니터를 응시하는 각도를 평소보다 5도 낮춘다. 집중하는 사람의 자세. 준비했던 보고서는 보류. 지금은 때가 아니다.
10시 33분, 부장이 폭발한다. 하지만 박대리는 안전하다. 그는 이미 레이더로 위험을 감지했으니까.
눈치 = 생존자의 레이더
타인의 감정을 읽는 이 영역들이 미세한 신호를 포착하고, 위험을 예측하고, 회피 행동을 명령한다. 이것은 의식적 과정이 아니다. 무의식이 자동으로 작동한다. 마치 뱀을 보면 자동으로 놀라는 것처럼.
신입 김사원은 레이더가 없었다.
10시 32분, 부장의 걸음걸이가 멈추고 의자에 유난히 크게 털썩하고 앉았을 때 재빠르게 일어나 부장에게 향한다.
"부장님, 이거 결재 부탁드려도 될까요?"
시간이 정지한다. 모두의 시선이 김사원에게 쏠린다. 누군가 작게 신음한다. 부장의 표정이 굳는다. 0.8초의 정적.
10시 33분 폭발시간.
"이거 저번에 수정하라고 안 했나?"
"아... 네. 수정하겠습니다."
"수정을 해서 가져왔어야지! 하나하나 다 봐줘야 해? 놀러 왔어?"
"죄송합니다."
화의 물리학 0법칙 : 폭탄은 터뜨리는 사람이 잘못이다.
눈치 없음은 죄가 아니다. 하지만 대가는 있다.
"오늘 뭐 먹을까?"
부장이 묻는다. 하지만 이것은 질문이 아니다. 이미 답은 정해져 있다. 부장의 머릿속에.
"고기 어때요?"
과장이 시험 삼아 던진다.
"고기? 어제도 고기 먹었잖아."
부장의 미간이 0.2초간 좁아진다. 신호 포착. 고기는 아니다.
"그럼 김치찌개는요?"
대리가 다시 던진다.
"흠..."
목소리 톤이 0.3옥타브 낮아진다. 평소에 좋아하던 김치찌개도 패스라고?
침묵. 모두가 계산한다. 부장이 어제 뭘 먹었나? 지난주 회식 메뉴는? 최근 부장이 좋아한다고 말한 음식은?
선배 과장이 말한다.
"부장님, 저번에 말씀하신 그 일식집 어떠세요?"
부장의 얼굴이 펴진다. "아, 거기? 좋지!"
정답.
경제학에서 이것을 '정보 비대칭'이라고 부른다. 거래 당사자들이 가진 정보가 다른 상황. 상사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숨긴다. 부하는 추측해야 한다.
눈치는 이 정보 비대칭을 메우는 수단이다. 하지만 비효율적이다. 추측은 자주 틀린다. 시간이 낭비된다. 스트레스가 쌓인다.
더 효율적인 방법이 있다. 명확한 소통. "오늘은 일식 먹고 싶은데 어때?"
하지만 많은 조직은 이렇게 하지 않는다. 왜? 눈치 문화가 권력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신입 시절, 눈치가 없었다.
부장이 인상을 쓰고 있어도 보고서를 들고 갔다. "지금 보고 드려도 될까요?" 부장은 한숨을 쉬며 받았다. 그 보고서는 3일 동안 책상 위에 방치되었다. 4일째 돌아왔다. 빨간 펜 투성이.
2년 차,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부장이 인상을 쓰고 있으면 보고를 미뤘다. 하지만 언제 가야 할지 몰라서 타이밍을 놓쳤다. 보고서는 늦었다는 이유로 혼났다. "중요한 건데 왜 이제 가져와?"
5년 차, 눈치가 생겼다.
부장이 인상을 쓰고 있으면 30분 기다린다. 커피를 한 잔 마시고 돌아올 때까지. 그가 자리에 앉아 한숨을 한 번 더 쉰다. 그다음 모니터를 켠다. 마우스를 움직인다. 그 순간, 나는 보고서를 들고 간다.
"부장님, 급한 건 아닌데 시간 나실 때 한 번 봐주세요."
부장은 고개를 끄덕인다. "지금 볼게."
눈치는 학습된다. 생존을 위해.
사회적 생존 알고리즘이자, 타인의 감정과 의도를 말하지 않아도 파악하는 한국적 감각 (한국만? 은 아닌 듯)
협력을 가능하게 하는 공감 능력이자, 권력을 유지하는 정보 비대칭 도구
있어도 힘들고, 없어도 힘든 직장인의 영원한 딜레마
관련 법칙:
화의 제1법칙: 화는 위에서 아래로만 흐른다
화의 제2법칙: 화의 에너지는 보존된다
화의 제3법칙: 화는 증폭될 수 있다
명언들:
"눈치가 밥 먹여준다" - 한국 속담
"타인은 지옥이다" - 사르트르
"협력이 인류를 만들었다" - 유발 하라리
"우리는 눈치를 사용하되, 눈치에 지배당하지 않아야 한다" - 익명의 10년 차 직장인
관련 항목: 협력, 위계, 권력, 소통, 감정노동, 공감, 배려, 생존, 적응, 진화, 문화, 세대차이, 조직문화, 자아, 균형
사무실로 돌아가보자.
"일을 왜 이렇게해!"
부장이 소리친다. 김과장이 고개를 숙인다. 주변 직원들이 긴장한다. 하지만 한 가지가 다를 수 있다.
박 과장은 이 화의 사슬을 끊는다. 부장에게 혼났지만, 후배에게는 화내지 않는다. 대신 말한다.
"내가 실수했어. 다음엔 이렇게 하자."
김사원은 눈치 없이 질문한다.
"부장님,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문제인가요?"
부장은 잠시 멈칫한다. 그리고 대답한다.
"음... 데이터 부분. 이 숫자가 맞지 않아. 다시 확인해봐."
작은 변화들. 하지만 이런 작은 변화가 쌓이면, 문화가 바뀐다.
눈치는 7만 년 동안 우리를 살렸다. 타인의 감정을 읽는 이 능력 덕분에 우리는 협력할 수 있었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새로운 방식이 필요하다. 협력은 여전히 중요하다. 하지만 협력의 방식은 진화해야 한다.
눈치에서 소통으로.
추측에서 확인으로.
두려움에서 신뢰로.
권력에서 배려로.
이것이 우리가 나아갈 방향이다.
우리는 여전히 눈치를 볼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본능이니까. 하지만 달라질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