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우, 경쟁자 그리고
설레는 입사 확정 이후, 이 사회에 첫발을, 회사에 첫발을 들이는 순간.
비즈니스 캐주얼 복장을 한 채 앉아있는 사람들. 빈 회의실 한구석에서 첫 만남이 시작된다. 어색한 공기만 가득하다. 누군가 기침을 한다. 누군가 핸드폰을 만지작거린다. 괜한 어색함에 목이 타는지 정수기로 향한다. 누군가 물을 마시고 있다. 마침 물을 마시고 있던 이가 용기를 내어 말한다.
"안녕하세요. 김 OO입니다 이번에 들어오신 거 맞으시죠..?"
"아, 네네, 저는 박 OO입니다"
같은 날, 같은 시간, 같은 회사에 입사한 사람들. 우리는 이들을 동기라고 부른다.
어색함을 지우기 위한 질문들이 오간다. 혹시나 나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갖고 있을까 하는 기대감도 살짝 섞여서. "여기 복지 어떤가요?" "부서 분위기는 좋대요?" "야근 많이 한다던데 진짜예요?"
우리는 아직 모른다. 이들이 앞으로 얼마나 특별한 존재가 될지. 이들과의 관계가 얼마나 복잡하게 변할지.
그저 같은 날 입사했다는 이유만으로, 우리는 동기가 된다.
"야, 오늘 너무 혼났어. 부장님이..."
메시지를 남긴다.
"나도. 오늘 보고서 다섯 번 고쳤어. 다섯 번."
"하 언제쯤 1인분을 할 수 있을까?"
"그러게 말이에요~ 이게 맞나"
우리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비록 같은 부서에 배치되지는 않았지만, 매일 이야기를 나눈다. 멀리 떨어진 부서에서 서로의 불만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내에 떠도는 선전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오늘 했던 실수나 혼난 썰을 이야기 한다.
"우리 팀장 진짜 이상해. 맨날..." "우리 부장도. 어제는..."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오는 현타와 함께, 퇴사하고 싶은 욕구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거 3년만 하고 이직할까?" "나도 그 생각 중이야."
동기는 특별하다. 선배에게는 할 수 없는 말, 후배에게는 보이고 싶지 않은 모습, 동료에게는 경쟁 때문에 숨겨야 하는 약함. 이 모든 것을 동기에게는 보여줄 수 있다. 우리는 같은 출발선에 섰으니까. 같은 어려움을 겪으니까. 함께 살아남아야 하니까.
금요일 저녁, 동기들끼리 모인다. 회식도 아니고, 누가 강제한 것도 아니다. 그냥 만나고 싶어서. 맥주 한 잔 하면서 한 주를 털어놓는다.
"이번 주는 진짜..." "나도 진짜..."
술잔을 부딪친다. 웃음이 터진다. 진짜 웃음이다. 직장이라는 전장에서 동기들은 서로의 전우가 된다.
1년 차의 동기는 순수하다. 아직 이해관계가 없으니까. 아직 경쟁할 것이 없으니까.
"너 이번에 고과 잘 받았다며?"
"응. 그냥 운 좋게..."
2년 차가 되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다. 누군가는 조금 더 좋은 프로젝트를 맡고 더 좋은 고과를 받기 시작한다. 똑같은 일을 한다고 생각했고, 똑같이 서투를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모두가 완전히 똑같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차이가 생겨있었다. 누가 더 인정받고 있는지, 누가 더 기회를 얻는지, 누가 승진에 가까운지.
"축하해! 너라도 받아서 다행이다"
웃고 있지만, 메신저의 횟수는 줄어들고 있었다. 그것이 받지 못한 고과 때문인 건지, 서로의 일이 바빠서 인 건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그래도 아직은 괜찮다. 아직은 친구다. 하지만 뭔가가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걸, 우리 모두 느낀다.
우리는 자신을 평가할 때, 절대적 기준이 아니라 타인과의 비교로 한다. 그리고 가장 많이 비교하는 대상은 바로 동기다.
같은 조건에서 시작했는데, 왜 저 친구는 더 빨리 갈까?
다른 부서였던 우리가 보직이 바뀌면서 경쟁자가 되었다.
이제는 승진을 위한, 연봉을 위한 고과를 신경 써야 한다고 선배들이 말한다. 동기들이 많을 때는 같이 동고동락할 수 있는 점이 마냥 장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동기들이 경쟁자가 되었다. 고과에 영향이 갈 수 있는 프로젝트를 내가 맡아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압박이 있다. 많은 동기들의 단점은 많은 경쟁자들로 남아있게 되었다.
문제는 나만이 아니라 모두가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동기들은 비슷한 위치에 있다. 신입은 아니지만 일을 해야 할 때이다. 고과와 승진을 위한 자리는 제한되어 있다. 모두가 올라갈 수는 없다. 누군가는 빨리, 누군가는 늦게, 누군가는 영영 올라가지 못한다. 제로섬 게임이 시작된다. 가장 치열한 경쟁은 학창 시절인 줄 알았다. 하지만 수능은 제로섬 게임은 아니었다.
서로 바빠서. 아니, 바쁘다는 핑계로. 예전처럼 불만을 털어놓지 못한다. 상대가 그 정보를 이용할까 봐. 예전처럼 솔직하지 못한다. 약점을 보이기 싫어서. 동기 모임도 뜸해졌다. 1년 차에는 매달 만났는데, 이제는 분기에 한 번. 그나마도 다 모이지 않는다. 10명 중 오는 사람은 6명 정도. 한 명은 퇴사를 했고, 한 명은 자주 오지 않는다. 두 명은 바쁘다고 했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말하지만 나의 자연스러움은 아니었다.
동기는 가장 가까운 친구이면서, 동시에 가장 치열한 경쟁자다. 동기에 대한 질투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지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질투는 어쩔 수 없다. 이게 과연 나빠서일까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인간 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비교하도록 진화했다. 동기들의 나의 가장 익숙한 REFERENCE였을 뿐이다.
1년 차 때 매일 밥 먹던 동기들. 이제는 몇 달에 한 번 본다. 매일 통화하던 친구. 이제는 생일에 카톡 한 번 보낸다. 멀어진 게 슬프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것도 안다. 우리는 더 이상 같은 속도로 가지 않는다. 누군가는 빨리 달리고, 누군가는 천천히 간다. 누군가는 이미 회사를 떠났다.
서로가 다른 방향으로 향하거나, 같은 방향에서 다른 속도로 향한다. 누구는 빠르고 누구는 느리게 같은 출발선 상에서 출발은 했으나 이제는 그들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가끔은 그립다. 1년 차 때 그 순수했던 우정이. 아무 이해관계없이, 그저 같은 처지라는 이유만으로 의지했던 그때가.
어쩌면 그건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 아니면 10년, 20년 후에 다른 형태로 돌아올 수도 있을 것이다. 비록 예전처럼 자주 만나지 못하고, 예전처럼 솔직하지 못하고, 때로는 경쟁하고 질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날 입사했다는 그 하나의 사실이, 우리를 특별하게 만든다. 여전히 회사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은 동기이고, 나의 가장 내밀한 것을 아는 것도 동기이다.
에필로그
"야, 오랜만이다. 언제 밥 한번 먹자."
"그러자. 다음 주 어때?"
"좋아."
만날 때 어떤 대화를 나눌지 모르겠다. 예전처럼 편할까? 아니면 어색할까? 우리는 여전히 친구일까? 아니면 이제 그저 아는 사이일까?
모르겠다. 하지만 만나면 반가울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동기니까.
정의
명사
같은 시기에 같은 회사에 입사한 사람들. 직장 생활의 동반자이자 경쟁자
가장 가까운 친구이면서 동시에 가장 치열한 경쟁 상대
서로를 비교하는 거울이자, 서로를 가장 이해하는 존재
시간에 따라 전우에서 경쟁자로 변화하는, 복잡하고 특별한 관계
관련 항목: 입사, 승진, 경쟁, 질투, 우정, 비교, 협력, 퇴사, 연대, 성장, 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