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파민

점점 짧게

by 거의모든것의리뷰

같은 양의 도파민이 나오는 시간에 따라 구분을 하자면 쾌락과 행복.


쾌락


짧은 시간 동안 많은 도파민이 뿜어져 나와 순간적인 만족감,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 효과가 오래가지는 않는다. 마치 너무 빨리 타오른 불이 순식간에 장작을 태워버리고 재만 남아 버리 듯. 여운을 느낄 새도 없이 타버린 불꽃이 아쉬운 까닭에 또 다른 도파민을 찾아 떠난다. 주기성은 점점 짧아졌다. 짧아져도 됐다.


대표적으로 콘텐츠


무한한 콘텐츠의 바다 한 가운에서 포류 하는 우리는 기술로부터 맘에 드는 콘텐츠들을 빠르고 쉽게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얻었다. 가히 무한한 콘텐츠들이 쏟아지고 있는 이 시대에 굳이 하나의 콘텐츠를 오랫동안 소비할 여력도 시간도 없다. 쇼츠와 릴스의 유행은 시시각각 변하고 따라잡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질릴 때쯤 나오는 새로운 무엇들은 물질적인 풍요를 선물했다.


행복


비교적 긴 시간 동안 은은한 도파민이 퍼져나간다. 디퓨저의 향기가 방 안을 가득 채워 그 향기를 품고 있는 사람이 되는 것처럼 행복을 품게 된다. 왠지 모르게 긍정적인 사람, 웃고 있는 사람은 자신의 긍정적인 레벨을 전염시키기도 한다.


가끔, 좋은 향기를 품고 있으면서도 그 향기에 익숙해져 잊어버리기도 하지만 한번 집을 나갔다 오면 은은하게 배어있는 향기가 편안하고 따뜻하게 맞이한다.


대표적인 예로 가족


주말의 침대처럼 항상 그 자리에 있는 그들은 모든 여정의 마지막 종착지로 남아있다. 삶이란 여행의 시작부터 끝까지 그들은 함께할 것이다. 가끔은 밉고 짜증 나게 하고 잔소리를 하지만 "나만 갈굴 수 있다"는 문장처럼 외부의 적이 존재할 때 가장 믿음직하고 든든한 방패가 되어준다.


나는 콘텐츠에 절여져 있다.


잠깐의 비어있음을 견디지 못한 채 무한한 도파민의 굴레이 빠져있다. 글을 쓰는 순간에도, 버스를 기다리는 순간에도, 지하철을 기다리는 순간에도 심지어 화장실을 가는 그 잠깐의 순간에도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큰일 나는 것처럼 콘텐츠를 찾아다닌다.


그 많은 콘텐츠들 사이에서 불꽃을 찾아 떠나는 불나방처럼 이곳저곳을 기웃대며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닌다. 잠깐이라도 안착할 장소는 첫인상 3초 내에 판가름이 나고, 잠깐 자리를 잡으면 오랫동안 가만히 음미하는 것보단 역마살이 돋는지 금세 떠나버린다.


얼마나 뇌가 힘들지 상상하기 힘들다. 끊임없이 바뀌는 주제, 순간순간의 집중력을 요하는 콘텐츠의 지옥은 점점 더 마모되는 집중력의 길이를 통해 나타난다. 끊임없는 세포복사가 길어 나는 것 같지만 텔로미어는 점점 닳아 없어지는 것처럼 언젠가 나의 집중력도 그러지는 않을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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