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by 거의모든것의리뷰

즐거운 일요일 아침, 눈 비비고 일어나 12년 만에 수능을 봤다.


그저 10년의 넘는 시간이 지난 이후의 시간을 확인하고 싶었다. 국어 68점, 영어 79점. 간단한 맥주를 마시면서 전날에 예상했던 점수와 숫자만 바뀐 점수였다.


고등학교 때는 국어가 더 자신이 있었는데 이렇게 낮은 점수가 나오다니 충격이었고 심지어 영어보다 점수가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이 꽤 이상했다. 왜 영어는 더 잘 나온 거지? 등급컷을 쳐보니 영어는 어느새 절대평가로 바뀌어 있었다. 1점 차이로 2등급을 달성하지 못해 아쉬웠지만 별로 중요한 건 아니었다.


오랜만에 보는 유형의 글들과 문제들을 마주하니 많이 헷갈렸다. 특히 국어의 비문학 중 칸트의 철학, 보증과 관련된 문제들은 전멸을 했을 정도로 풀긴 풀었는데 괜히 시간을 썼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국어를 만만하게 봐서인지 급하게 풀어서인지, 책을 덜 읽어서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다.


영어 역시 생각보다 더 낮은 점수였고, 아쉬웠다. 회화 위주였긴 하지만 넷플릭스도 보고, 전화 영어도 했었는데 수능에는 크게 도움이 된 게 아닐지도 모른다. 어쨌든, 익숙하지 않은 문제 풀이 때문인지 실력이 많이 줄었기 때문인지는 확실하지 않다만 국어와 영어 거의 4시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집중을 해서 무언가를 했다는 행위 자체가 새로운 자극이 되었다. 최선을 다해 무언가에 집중한다는 것은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각이었다. 회사에서는 아무리 오랫동안 집중을 한다 하더라도 처음과 끝이 있는 데다 병렬적으로 일을 처리하느라 긴 시간 동안 한 가지 일만을 위한 집중을 하기 쉽지 않다.


고등학교 때는 수능이 전부인지 알았다. 아니 전부였다. 중학교에서 시작된 공부의 결실은 결국 수능으로 귀결되었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친구들이 선생님들이 사회가 마치 학창 시절의 공부는 수능을 위함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었다. 수능이 끝나고는 정말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되는 것 같았다. 실제로 하지 않기도 했지만 대학을 들어가서는 또 다른 공부가 필요했고 과외나 학원이 없는 그곳에서의 공부는 오히려 더 자율적으로 더 힘들게 해야 했다. 처음에는 어떻게 공부를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기도 했지만 학창 시절에 배운 것은 공부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공부를 위한 다양한 방법들을 제시하고 그 틀을 만들어주는 것이 중고등학교의 진정한 공부였다. 어차피 그 안에 내용은 시간과 공간에 따라 계속해서 바뀔 예정이었으니 항상 공부를 해야 했고 그 공부하는 기준과 방법을 마련하는 것이 중고등학교의 공부의 진정한 목적이었다.


또한 그 공부를 통해서 우리는 지식을 쌓아간다. 시간이 되어 일을 할 시간이 다가왔을 때, 그 새로운 조직에서 적응하기 위한 지식들, 공부를 통해 어렴풋하게라도 습득할 수 있었던 지식들은 예상치 못한 어떤 순간에 쓰이기도 했고 때론 재미도 있다. 과연 시험을 보지 않았다면, 그를 위해 반복적으로 머릿속에 집어넣지 않았다면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기억할지는 미지수이다. 또한 잊힌 세계의 한 부분을 보여주기도 한다. 가령 국어 지문의 비문학을 보다가 관심 있는 주제를 찾을 수도 있다. 지금은 경계가 흐릿해졌다고 하지만 문과가 과학을 배우는 것, 이과가 더 깊은 철학과 경제학을 가르쳐주면서 무관심한 세계의 한 부분을 비춰 무지의 세계에 한줄기 빛이 되어주기도 한다.


수능이 끝난 이후로 만약 돌아갈 수 있다면, 좀 더 무언가를 배울 것 같다. 취미로 삼을 수 있는 운동이나 영어 등 물론 지겨운 공부겠지만 앞으로의 삶을 위한 준비, 혹은 갑자기 홀로 떠나는 여행 등 앞으로 마주할 더 넓은 세계의 일부분을 엿보는 시간으로 썼다면 조금 더 재미있는 나날을 보낼 수 있었을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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