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많이 온.
첫눈이 온다.
진눈깨비로 보이던 눈들이 정체성을 찾아가듯 점점 커지고 두꺼워진다. 불현듯 내리는 눈에 카톡방이 시끄러워진다. ( 예보를 보지 않았다. ) 매년 찾아오는 첫눈이지만 눈이 와야 비로소 겨울이 오는 것이 느껴지는 만큼 혹여 겨울을 싫어하는 사람이라도 첫눈의 등장에는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이 나도 모르게 이미 눈이 오는 카톡방에 "눈이 온다"라고 남긴다. 작년에도 그랬던 것 같은데 올해도 생각보다 많은 눈이 내렸다. 12월이 되어서야 눈이 온 것에 대해 누군가 타박을 한 것도 아닌데 눈사람을 만들 수 있을 만큼의 눈이 쏟아졌다.
육교에서, 작은 오르막길 언덕에서 평소에는 학원이 끝나고 집 가기 바쁘게 움직이던 발걸음들을 붙잡는다. 집에서 쉬던 부모님들이 작은 썰매를 끌고 아이들이 나오게 그 위를 미끄러지며 내려오고 싶어 하는 욕망을 만족시켜 준다. 눈사람들이 하나 둘 생겨나기 시작한다. 눈오리는 더 빠르고 더 많이 생겨난다. 놀이터 화단 한쪽에 놓여있는 눈오리들의 정렬들을 보면 눈처럼 순수한 노력과 기쁨이 같이 묻어있는 듯 보인다. 한편으로는 누군가는 그 눈사람들을 부시기도 한다. 왜 부시고 싶어 하는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좋아하는 여자애들에게 괜스레 시비를 거는 남자아이들의 흔한 욕망 중 하나는 아닐까 싶다. 혹은 갖지 못할 바에 부숴버리겠다는 마음이거나.
인스타그램 역시 눈으로 도배된다. 짧은 동영상과 사진으로 첫눈이 내리는 그 순간을 반가워하며 정말 흔치 않게 똑같은 주제를 갖고 스토리를 올리며 누가 가장 사진을 잘 찍었는지 대회라도 하는 듯하다. 스산한 겨울밤 앙상해진 나무와 야근이 만들어내는 반짝이는 건물들에 하얀 옷을 입히는 순간들을 남겨둔다.
하지만 눈을 적대시하는 세력도 있다.
퇴근하는 직장인들이 주된 세력이다. (군인도 있지만 제외하자) 예상치 못한 많은 눈이 퇴근시간에 내리면 셔틀버스가, 시내버스가 움직이지 않는다. 아니 못한다. 어딘가에서 발생한 사고, 미끄러운 눈길에 속도 감소는 하나 둘 다른 차량들의 속도를 같이 늦추기 시작하더니 언젠가는 멈춰버린다. 경부고속도로의 서울방향은 어느 순간 지옥이 되었다. 나태지옥. 빨리 가고 싶어도 모두가 나태해진 것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손을 놓은 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언젠가 움직이는 순간을 고대하며 기다리고 기다리며 운전대를 잡은 사진을 찍어 올린 그곳에는 "못 움직인 지 1시간ㅠ", "집 가고 싶다ㅠ", "집 오는 데 걸린 시간 2시간 반"이라는 코멘트가 남겨져 있다.
퇴근 버스에 올랐던 이들은 새로 업로드된 유튜브 영상을 모두 본다. 밀렸던 시리즈들도 본다. 이렇게 길어질 줄은 몰랐지만 회사에서 핸드폰을 충전기에 꽂아놓기를 잘했다며 스스로를 칭찬하는 순간 누군가 갑자기 일어나서 허리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를 시작으로 누군가는 기지개를 켰고 누군가는 뒷자리를 쓱 보더니 의자를 뒤로 더 젖혔다. 버스가 움직이지 않는 대신 사람이라도 움직여야 했던 것 같이.
오늘은 못 움직였지만 내일은 너무 잘 움직여서 문제인 날이 될 것이다. 사람들의 발자국이 녹여낸 눈들이 밤새 꽁꽁 얼면 왜 우리나라가 스케이트 강국이 되었는지 새삼 깨닫게 될 것이다. 꿈꾸지 않아도 제2의 제3의 김연아가 되어야 한다. 넘어지면 너무 아프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