ㅂ - 부장

과 신입 사이

by 거의모든것의리뷰

부장님


부장님은 늘 바쁘다. 정확히 무엇을 하는지는 모르겠다. 자리에 찾아갔을 때 종종 안계시는데, 아무도 모르게 회의실을 오가신다. 메신저를 받고 때로는 전화를 한다. 대부분은 메일을 보며 미간을 찌푸린다. 보고서를 들고 가면 "음" 하고 짧게 끄덕이거나 "이 부분 다시"라는 말만 남긴 채 다음 일정으로 향한다. 실무를 하는건 아닌데 가끔 궁금하다. 무엇을 하고 계실까? 누가 무엇을 하고 계시는지는 다 알고 계시지만 어떻게 저렇게 다 알 수가 있는거지? 그러면서도, 저 바쁜 와중에도 내 메신저에는 답장이 온다. 새벽에 보낸 질문에도, 주말에 올린 문서에도.


부장님은 무심한 게 아니라 그냥 회사라는 전쟁터에서 살아남는 법을 너무 오래 익힌 사람이다. 감정을 아끼고, 말을 줄이고, 중요한 것만 남기는 법을 체득한 사람. 가끔 회식 자리에서 술이 들어가면 부장님도 웃는다. "너 그거 잘했어" 같은 말을 툭 던진다. 그때 나는 안다. 부장님도 사람이고,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는 걸. 다만 그 방법이 내가 기대하던 것과 달랐을 뿐. 나는 그 사람의 등 뒤에서 배운다. 어떻게 흔들리지 않는지, 어떻게 중심을 잡는지. 언젠가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신입


저 친구는 아직 모든 게 신기하다. 회의 때마다 눈을 반짝이고, 작은 칭찬에도 얼굴이 환해진다. 가끔은 지나치게 완벽하려 해서 마감을 놓치기도 하고, 중요하지 않은 디테일에 매달리기도 한다. 하지만 저 열정이 얼마나 귀한지 안다. 나도 저랬다. 보고서 한 줄에 의미를 담으려 했고, 회의 발표를 앞두고 밤을 새웠다. 상사의 한마디에 일희일비했고, 인정받고 싶어서 안달이 났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배웠다. 회사는 마라톤이지 단거리 달리기가 아니라는 걸. 모든 일에 100%를 쏟으면 1년을 못 버틴다는 걸. 그래서 나는 저 친구에게 가끔 "이 정도면 돼"라고 말한다. 차갑게 들릴까 봐 걱정되지만, 이게 내가 줄 수 있는 가장 솔직한 조언이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실수해도 된다고. 중요한 건 계속 서 있는 거라고. 저 친구의 메신저에 늦은 밤에도 답장을 보내는 이유는,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려주고 싶어서다. 저 친구가 5년, 10년 뒤에도 이 자리에서 웃고 있기를 바란다. 그때쯤이면 알게 될 것이다. 내 무심함이 사실은 응원이었다는 걸.



서로 다른 시간의 간격


회사에서 가장 먼 거리는 책상 사이의 몇 미터가 아니라, 경력 사이의 몇 년이다. 한 명은 매일이 시험이고, 한 명은 매일이 반복이다. 한 명에게는 모든 프로젝트가 인생의 전부 같고, 한 명에게는 그저 지나가는 여러 프로젝트 중 하나일 뿐이다. 부장의 침묵 속에 들어 있던 '너는 할 수 있어'라는 믿음을, 신입의 서툰 열정 속에 숨어 있던 '이 일을 사랑하고 싶어'라는 마음을. 우리는 결국 같은 사람이다. 다만 다른 시간 위에 서 있을 뿐. 그 시간의 간격을 이해하는 순간, 오해는 연대가 되고, 거리는 계단이 된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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