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기쁨
슈유융~ 우주선이 이리저리 날아다닌다.
그만 좀 뛰어다녀~ 다친다. 그렇게 우주비행사가 좋아?
꼭 우주비행사가 될거야!
우주 비행사가 되어서 뭘 하고 싶어?
화성에 갈거에요!
꿈꾸는 아이의 목소리가 가만히 눈을 감고 앉아있는 나를 어린시절로 보냈다.
어렸을 적 꿈은 화려함 그 자체였다. 누구나 티비에 나오는 연예인이 되어 ( 지금은 유튜버로 바뀌었지만 ) 온 세상의 인기를 독식했다. 저 화려함의 한 가운데서 티비에 나오는 누군가가 될 수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의 자리가 미래의 나의 자리였다. 위인전을 보면 그 중 한 사람이 된다고 생각했다. 이순신 장군이나 삼국지의 관우와 제갈량을 보면 그들의 모습이 너무나도 멋있어 보였다. 나도 그렇게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태권도를 배웠다. 월드컵에서 우리나라가 4강에 올라가는 것을 보며 우리나라는 정말 축구를 잘하는구나 생각하며 박지성 선수의 포루투갈전 골을 재현하려고 운동장을 누비고 친구들에게 공을 던져달라고 졸랐다.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생각했고, 모든 어른들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완벽한 미래가 눈앞에 펼쳐졌다!
공부도 잘하고 축구도 잘하고 태권도도 잘해서 아주아주 유명해서 티비에도 나오는 사람이 서 있었다. 거울 속에.
꿈이 뭐니?
파일럿이 될거에요!
우주비행사는 너무 터무니 없었다. 한국에서 딱 한명밖에 없는데 무슨 내가 우주비행사가 될 수 있겠어. 우주비행사는 한명인데, 그래도 비행기를 운전할 수 있는 사람들은 엄청 많다. 여전히 하늘을 나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내가 태권도를 배우면 그 옛날의 성룡처럼 하늘을 날아다닐 줄 알았지만 거기까지 무술을 익히진 못했으니 대신 비행기라도 몰면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과 다름이 없을 것이다. 하늘을 나는 사람은 여전히 멋있었다. 하늘에 가끔 지나가는 비행기들의 가장 앞자리에서 커피를 마시며 운전을 하고 있을 사람들. 영화 캐치 미 이프유캔을 보면 파일럿들을 향한 사람들의 호의가 있었다.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고, 심지어 사기꾼이 제복 한벌을 입고 있었을 뿐인데 우러러 보고 있었다! 라이트 형제보다는 더 안전하고 즐겁게 비행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자동차보단 비행기지! 파일럿이 되겠다고 마음을 먹었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래도 꽤 괜찮은 미래였다.
공항에서 사람들과 인사하며 작은 캐리어를 끌고 다니며 비행기 안의 수많은 사람들을 싣고 여기저기 여행과 일을 번갈아가며 하는 파일럿!
장래희망 : 군인
파일럿이 되고 싶었지만 파일럿이 되려면 공군사관학교를 가야한다고 한다. 지금 내 성적으로 공군사관학교를 갈 수 있을까..? 그나마 비슷한걸 찾아보면 육군사관학교라 일단 퉁쳐서 군인으로 적어야겠다. 그래야 자소서를 나중에 쓰더라도 뭐라도 엮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군인은 멋있어 보인다. 그 흔한 '힘숨찐'스토리 들이 내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조용히 살던 퇴역 군인을 건들다'라는 영화 제목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유튜브의 알고리즘은 비슷한 영화들로 도배된다. 가장 인상 깊은 영화는 단연 탑건이었다.
아직 마음 한켠에는 파일럿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남아있지만 정말 내가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우선 목표는 높게 잡으라지만 너무 높은 것은 아닐까? 이러다 파일럿은 커녕 군인도 안되면 어떡하지?
고3, 6월 모의고사 점수가 나왔다.
이거 안될 것 같다.
목표를 너무 높게 잡은건 아니었다고 생각했지만 내 성적에 비해서는 높은 목표였나보다. 결국 군인이 되지는 못했다. 많은 이들이 그러했듯이 점수를 맞춰서 대학교에 진학했다. 수시를 준비할 때는 하나의 꿈을 위해 어린시절부터 달려온 나였는데, 이제와서는 붙여주는 곳이라면 어디든 감사합니다였다. 어렸을 적 꿈과는 작별인사를 하고 흔한 경영학과에 들어가 대기업과 중소기업 그 사이, 외국계 회사에 다니게 되었다.
눈을 떴다.
이제 가야할 시간이다.
비행기 표를 보여주고, 익숙하게 비행기를 탄다. 창가에 앉아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을 바라본다. 비록 파일럿은 되지 못했지만 비행기는 정말 많이 탈 수 있게 되었다. 매일 같이 이어지는 출장에 여권에도 많은 나라의 문장들이 찍혀있었고, 비행기 마일리지도 꽤 쌓았다. 파일럿만큼은 아니더라도 일반인 중에서는 꽤 많이 비행기를 타지 않았을까?
어렸을 적 가장 화려했던 꿈이었던 우주비행사에서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 둘 덜어냈다. 처음에는 우주라는 공간을 덜어냈다. 가장 완벽한, 엄청난 재능과 능력을 가진 미래의 나에게서 하나 둘 떨어져나갔다. 그 다음은 비행사라는 직업을 덜어냈다. 현실에 순응하는 방식이었다.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할 수는 없었다. 내가 가장 원하던 것이었더라해도, 반드시 얻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쩌면 영영 닿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시간은, 중력이 되어 하늘에 떠 있던 나를 땅으로 점점 끌어내렸다. 땅에 가까워지기 싫어 꿈에서 하나 둘 욕심을 덜어냈지만 시간이 더 빠르게 나를 잡아당기고 있었다.
하지만 나의 꿈이, 바램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만 오는 것은 아니었다. 어쩌다 들어간 대학교와 회사에서 이렇게 비행기를 많이 탈줄 상상도 하지 못했다. 비행기를 타는게 이 회사를 다니는 낙 중 하나가 된 지금 생각한다. 만약, 파일럿이 되었다면 우주비행사가 되었다면 비행기를 타는 지금 이 순간이 이렇게 즐거울 수 있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인생은 내가 간절히 원하는 것을 내가 원하는 방법으로 주진 않았지만, 어쩌면 가장 기분 좋은 방법으로 주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