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매주 그런 것은 아니지만 조용한 토요일 아침이 찾아온다. 출근도 없고, 급하게 할 것도 없는 평화로운 아침.
문득 급하게 제껴두었던 옷가지들이 눈에 들어온다. 책상에는 책과 빨래가 아무렇게나 놓여있었고 점점 높이 올라가는 탑을 바쁘다는 이유로, 피곤하다는 이유로 방치해두었었던 기억이 남아있다. 아침을 쇼츠와 유튜브로 채우기엔 너무 아까운데, 딱히 뭘 하긴 싫고 눈에 들어온 옷가지들을 하나 둘 정리하기 시작한다. 그 와중에 서랍에 대충 쑤셔넣으려는 맘을 다잡고 서랍을 통째로 빼내어 가지런하지 않게 쌓여있던 것들을 다시 갠다. 엄청나게 품이 많이 드는 일은 아니었지만 다 하고 나니 무엇인가를 한 것처럼 보인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새로운 계절이 오면 또 한번 정리를 한번 하겠지라는 막연한 다짐과 함께 책 한권을 들고 침대에 몸을 던진다.
엄청나게 읽고 싶었던 책은 아니지만 소설책을 한번쯤은 봐야겠다는 마음으로 고른 책들이었다. 표지만 보고 고른, 단편인듯 장편인 자전적 이야기에 가까운 이 책의 장점은 언제든 끊어서 읽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일기의 형식을 따라가는 것 같은 형국으로 한장 한장을 어렵지 않게 넘길 수 있는데다가 내용이 그닥 이어지지가 않아서 언제든 펼 수 있고 언제든 덮을 수 있는,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ru” 라는 제목을 가지고 베트남 전쟁 이후 서방세계로 이주한 아이가 마주하는 이야기들을 담았는데, 아직 보지 않은 책 “파친코”를 한번쯤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처절했던 시기에 이민의 이야기는 어떻게 풀어나갔을지하는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다음에는 sf 소설을 보려고 했는데 둘 중 고민을 해봐야겠다.
책을 읽는 것의 장점은, 잠이 잘 온다는 점이다.
나만 그런건지는 모르겠지만 이상하게 핸드폰을 하다가 책을 보면 잠이 잘온다. 그게 어떤 종류의 책이든 깊게 잠은 자는 것은 아니지만 책을 통해서 잠을 자고 일어나면 마치 뇌가 리셋 되는 것 같다. 막상 자고 일어나 책을 읽으면 또 잘 읽히기 때문이다. 이 기분이 묘하게 뇌를 청소하는 것 같은 느낌이 썩 나쁘진 않다.
위에 사는 집도 똑같은 모양인지, 갑자기 청소기를 미는 소리가 들린다. 한 10초간 지속되는 그 소리는 아마 내 바로 머리 위에 청소기가 지나갈때만 들리는 것 같다.
위층 청소기 소리가 멎으면 다시 고요가 찾아온다. 나도 슬슬 움직여야 할 시간이다. 점심을 먹으러 나갈지, 집에서 대충 해먹을지 고민하다가 일단 침대에서 일어나 창문을 연다. 찬 공기가 들어오고, 저 멀리서 아이들 노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린다. 이런 토요일이 매주 오는 건 아니지만, 가끔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것들로 채워지는 아침이 있어서 한 주를 버틸 수 있는 것 같다. 다음 주 토요일엔 또 무엇을 할까. 아마 또 쇼츠를 보다가 하루를 날릴지도 모르지만, 그것도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