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최고야
집에 도착하자마자 샤워를 하러 뛰어들어간다.
중간에서 시작한 샤워기의 온도 조절기를 조금씩 하지만 확실하게 왼쪽으로 돌린다. 점점 올라가는 온도는 빠르게 화장실 안을 습기로 가득 차게 만들었고 평소보다 1.5배는 뜨거운 온도까지 샤워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뜨거운 물을 정수리에서부터 발끝까지 흘러가게 냅둔다. 온몸을 감싸고 있던 냉기가 하나 둘 녹아내린다. 평소였으면 빨리 씻기 바빴을 텐데 지금만큼은 온탕 한구석에 자리 잡은 할아버지처럼 느긋하게 기다린다. 눈을 감은 채 모든 냉기가 녹아내리고 뜨거운 물이 온몸에 새로운 열을 전달할 때까지 서 있는다. 차라리 목욕을 하는 게 좋았을 텐데 이사한 뒤로 사라진 욕조가 아쉬울 따름이다.
냉정한 세상의 전부를 가져온 듯, 칼바람이 온몸을 훑고 지나갔다. 매 순간 새로운 바람이 불었는데, 해수욕장에서 가끔 유난히 강한 파도를 만나는 것마냥 강하고 차가운 바람이 나를 때렸다. 목도리를 턱까지 올리고, 단추를 최대한 여몄다. 경량 패딩까지, 내 모든 보온을 영끌했는데도 소용없었다. 추위는 언제나 틈을 찾아낸다. 목도리와 옷깃 사이, 가리지 못한 얼굴, 아주 작게 뚫려 있는 신발의 그 숨구멍, 그 빈틈으로도 칼바람은 정확하게 파고들었다.
길거리가 가장 추웠지만 이상하게도 용산의 카페, 저녁을 먹는 식당, 이어진 술집까지 찬바람이 모든 곳을 점령한 것처럼 모든 곳이 추웠다. 특히 신발의 아주 작게 뚫려 있는 그곳을 얼마나 좋아하던지, 발이 얼어버리는 듯했다. 어떤 공간에 들어간다고 나아지지 않았다. 밥을 먹으면, 술을 마시면 좀 더 따뜻해질 줄 알았건만 그 열기가 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렇게 많이 마시지는 않았지만 알코올이 퍼지지 않을 만큼은 아니었는데, 알코올이 퍼졌음에도 추위가 더 강했음이 분명했다.
더위는 에어컨을 틀면 금방 가시는 편인데 추위는 히터를 틀어도 공간이 데워지는 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 뜨거운 바람은 위에서만 머물러 난방을 때면 공간이 전체적으로 따뜻해지지만 온풍기를 틀면 바닥은 차갑다고 했던 중학교 과학 시간에 배웠던 지식이 오늘따라 체감된다.
결국 추위에 이기지 못하고 빠르게 집에 돌아왔다. 밖에 더 있다간 감기가 다시 한번 나의 몸을 두드릴 것이 분명했다. 집 앞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1분 30초가 영겁처럼 느껴졌다. 옆에 서 있던 사람들도 모두 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양손을 패딩 주머니 깊숙이 찔러 넣고, 어깨를 으쓱 올린 채, 고개는 푹 숙이고, 발을 동동 구르는. 인류가 추위 앞에서 취할 수 있는 방어 자세의 완성형이었다. 우리는 모두 추위라는 공통의 적 앞에서 같은 모습으로 움츠러들고 있었다.
봄이여, 제발 빨리 와라. 시간이 빨리 가는 것에 부정적임에도 네가 빨리 오는 것은 격하게 환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