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쁜 사람을 좋아하세요? 못생긴 사람을 좋아하세요?
유튜브로 세상을 둘러보던 중 우연히 성선설과 성악설에 대한 영상과 마주하게 되었다. 일타강사 이지영 선생님이 설명한 순자의 논리는 이랬다. 성악설은 우리가 선을 동경한다는 것 자체가 인간이 선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아름다움을 동경하는 이유다. 아름다움은 금처럼 귀하다. 보충되는 내용이 있었지만 눈에 많이 들어오지는 않았다. 머릿속의 화면은 이미 정지되어 있었다.
잠시만, 우리는 악한 사람을 보면 혐오하는데? 아무리 나에게 아무런 악한 짓을 하지 않았더라도 연쇄 살인마나 성범죄자등에 대해서 강력한 처벌을 원하고 그들을 혐오한다. 순자의 논리대로라면 그것은 인간 모두가 선하기 때문인건가? 아니다. 우린 선을 동경하고 동시에 악을 혐오한다.
그렇다면 나올 수 있는 결론은 하나다. 대부분의 인간이 선하지도 않고 악하지도 않다. 정말 특이한 경우를 제외하면 모두가 GRAY ZONE 에서 머물렀고 착한 사람 - 보통 사람 - 악한 사람으로 나누는 것이 맞아보인다. 실제로 친구들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걔는 착하지'라는 말이 나오는 사람이 있는 반면, '착하다'는 형용사가 붙지 않는 친구들이 더 많다. 그렇다고 해서 착하지 않다가 나쁘다와 동의어는 아니다.
과연 이 사실을 그 유명한 철학자들이 몰랐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비판의 끝자락에 서있는 사람들이? 그럴리 없다. 전달력의 문제가 아니었을까.
사람들은 그저 존재할뿐이고 선하거나 악한 것은 개개인의 노력과 교육으로 변화시켜야한다는 사람의 주장은 너무 기억에 남지 않는다. 마치 정치인들이 하나의 주장을 과장하고 극단적으로 말하면서 사람들에게 확실하게 각인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극단적으로 말한 사람들만의 언급들이 충격적이라 후대에까지 전달된게 아니었을까 하는 점이다.
성선설과 성악설과 관련된 논쟁은 가장 이해하기 쉬웠다. 모두가 공감할 수 있고 자기만의 의견을 쉽게 도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친구들과도 발표하며 이야기하며 그 어떤 도덕시간보다 활발한 이야기가 이루어지며 재미있었다. 어쩌면 그것이 이 세상을 만들어낸 구조일지도 모른다.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단순함으로 규칙을 만들고 세상을 구조화했다. 이는 여전히 유효하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진보와 보수, MZ세대와 꼰대로 나누며 회색지대를 외면한다. 하지만 우리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글자로 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봐야한다는 사실을, MZ 같지 않은 청년들, 꼰대가 아닌 어르신들이 되길 원한다. 회색지대의 어딘가에 머무르고 싶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