ㅈ - 점심시간

by 거의모든것의리뷰

아침을 먹은 지 두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았지만 무의식적으로 사내식당의 오늘의 점심 메뉴를 보고 있다. 돈가스, 솥밥, 해장국. 솥밥은 패스. 요즘 유난히 솥밥이 많이 나오는 것 같긴 한데, 솥밥이 그렇게 인기가 많나? 아닌 것 같은데. 돈가스와 해장국 둘 중 하나다. 딱히 술을 먹지는 않았으니 해장국은 필요가 없긴 한데, 차가운 공기가 남아있어 뜨끈한 국밥은 언제나 옳다. 하지만 돈가스도 항상 옳은 결정이므로 두 메뉴 중 무엇도 괜찮다. 두 개의 메뉴를 골라야 하는 이유는 팀원들이 무엇을 먹을지 아직 모르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먹는 메뉴가 모두 다른 날도 있지만 대게 3~4명씩 같이 먹거나 하나의 메뉴를 먹는 경우도 있어 그 어떤 순간에도 대처하기 위해 먹기 싫은 메뉴만 골라둔다. 만약 그 메뉴를 다 같이 먹으러 간다면 따로 먹긴 하겠지만 누군가 강력하게 메뉴를 주장하지 않는 한 모두가 모두의 눈치를 보기 때문에 여태까지 그런 적은 없었다. 일을 할 때는 위계가 뚜렷하지만 점심시간만큼은 위계가 뚜렷하지 않다. 어떻게 보면 야자타임처럼 회사에서 유일하게 막내에게 가장 큰 힘이 주어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12시가 다 되지는 않은 5분 전, 먼저 먹자는 신호와 함께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난다. 시간을 딱 맞춰가면 사람들의 줄이 배가되는 경우가 있어 아주 조금 더 빨리 출발하면 10분 이상을 아낄 수 있기 때문이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5분 전에 시작하는 것 같긴 하지만 그 때문에 10분을 먼저 일어나기엔 조금 이른 것 같고 아직까진 괜찮다.


"오늘은 하늘이 깨끗하네요"


깨끗한 하늘과 추위 vs 미세먼지가 가득하지만 따뜻한 겨울의 밸런스 게임과 함께 일을 할 때는 메신저로만 얘기를 나누었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일과는 전혀 상관없는 얘기, 요즘 가장 화두는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다. 이 끝도 없이 올라가는 그들의 주가는 모두가 한 번씩 mts를 들어가게 만든다. 최고가를 경신할 때마다 누군가는 활짝 웃으며 점심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른 반면, 누군가는 배가 아파 점심을 먹지 못한다. 식당이 가까워질수록 목소리가 커진다. 단순히 더 많은 사람들의 소리가 시끄러워서가 아니라 사무실에서 점점 멀어지는 것에 대한 자유에 의한 환호일지도 모르겠다.


식당 앞에서 고개를 들어 전광판에 디스플레이된 메뉴들을 바라보는 무리 중 한 사람이 되어 메뉴들을 바라본다. 메뉴는 한번 거르긴 했지만 혹시나 상상과 다르게 나를 강력하게 끌어당기는 서브메뉴가 있지는 않은지 다시 한번 본다. 옆을 바라본다. 특별히 선호하는 메뉴는 없는 것 같긴 하다. 그럼 보통 두 가지 메뉴로 나누어서 진행될 확률이 90%다.


밥을 먹을 때는 딱히 말을 많이 하지는 않는다. 우리 팀만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밥을 먹는데 더 집중을 하는 편이고, 식사가 끝난 뒤에야 음식에 대한 평가가 시작된다. 막상 밥을 먹을 때는 별말 없이 먹었던 것 같은데, 생각보다 많은 말이 오간다. 음식이 짤 때도 있었고 양이 적을 때도 있었다. 간이 세거나 같은 음식이 반복되는 것 같다는 등, 아무 말이 없길래 아무 생각 없이 먹는 것 같아도 다 먹고 나오면 모두가 흑백요리사의 안성재 셰프가 되어 한줄평을 남기는 걸 보면 어떤 일이든 의견이 없는 사람은 없다.


'아 돌아가기 싫다...!'


매 점심시간마다 속으로만 삼키는 말과 함께, 커피 한 잔을 들고 다시 사무실로 향한다. 아까와 똑같은 자리, 똑같은 모니터, 똑같은 메신저 창. 하지만 사람들의 표정이 조금 다르다. 1시간 전보다 조금 더 사람 같은 얼굴로, 다들 다시 자리에 앉는다. 곧 메신저 알림이 울리고, 오후 회의 일정이 뜨고, 누군가 보고서를 들고 팀장 자리로 향한다. 점심시간은 끝났다. 하지만 그 1시간이 있었다는 것만으로, 오늘 하루도 버텨봐야지.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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