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의 세계
팀장이 회의가 끝나고 나를 잠깐 불렀다. 뭔가 잘못됐나 싶어 긴장했는데, 한마디를 던졌다.
"이번 자료 준비 잘했어요. 덕분에 회의가 깔끔하게 끝났어요."
별거 아닌 말이었다. 10초도 안 걸리는 한마디. 그런데 그날 오후가 달랐다. 같은 자리, 같은 모니터, 같은 업무인데 손이 조금 더 빨리 움직였다. 퇴근길에 발걸음이 조금 가벼웠다. 집에 와서도 그 말을 괜히 한번 더 되새긴다. 밥을 먹다가도, 씻으면서도. 고작 칭찬 한마디가 하루를 바꿨다.
회사는 성과와 숫자로 돌아가는 공간처럼 보인다. KPI, 목표 달성률, 분기 실적. 차갑고 합리적인 언어들이 가득하다. 하지만 그 안을 채우는 건 결국 사람이다. 보고서를 쓰는 것도, 클라이언트를 만나는 것도, 야근을 버티는 것도 전부 감정을 가진 사람이 한다. 숫자는 목표를 세우지만, 그 목표를 향해 실제로 움직이는 건 감정이다. 회사는 생각보다 훨씬 인간적인 조직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회사에서 칭찬은 인색하다. 잘못하면 바로 피드백이 오지만, 잘해도 당연한 듯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잘하는 게 기본값이 되는 순간, 칭찬은 설 자리를 잃는다. 신입 때는 작은 것도 칭찬받다가, 경력이 쌓일수록 점점 조용해진다. 잘할수록 칭찬이 줄어드는 아이러니. 그 침묵 속에서 사람들은 조금씩 의욕을 잃는다. 티가 안 날 뿐이지.
칭찬을 받기 전의 나와 받은 후의 나는 다른 사람이었다. 전날까지만 해도 이 일을 왜 하고 있나 싶었는데, 그 한마디를 듣고 나서는 다음 자료를 어떻게 더 잘 만들까를 생각하고 있었다. 시스템이 바뀐 것도, 연봉이 오른 것도 아니었다. 그저 누군가 나를 알아봐 줬다는 것. 그것만으로 사람은 달라진다.
'미움받을 용기'에서 아들러는 칭찬을 경계했다. 칭찬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평가이고, 결국 상대를 조종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칭찬 대신 감사와 존중을 나누는 수평적인 관계를 강조했다.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사람은 이론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칭찬받은 그날, 나는 아들러를 몰랐고 그냥 기뻤다. 그리고 더 열심히 했다.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직급과 상관없다. 신입도, 팀장도, 임원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오래 일할수록 당연하다는 시선에 익숙해져서 더 그리워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며 "잘했어요"라고 말해주는 그 순간이. 회의실에서 나누는 수십 개의 보고와 지시 중에, 딱 한마디의 칭찬이 그날의 온도를 바꿔놓는다.
성과를 높이고 싶다면 시스템을 바꾸기 전에 한마디를 먼저 건네보는 게 낫다. 잘했다고, 덕분에 좋았다고. 10초짜리 말 한마디가 그 사람의 하루를, 어쩌면 그 주 전체를 바꿔놓을 수 있다. 가장 저렴한 성과 관리 도구는 칭찬이다.
회사는 결국 사람이 다닌다. 사람은 인정받을 때 움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