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는 이 말도 했을
티백에 적혀있던 문장 "Love does not confuse everything, but mixes - 괴테" 이 책은 괴테 연구가인 주인공이 처음 들어보는 괴테의 문장의 출처를 찾아 떠나는 여정을 그린다.
그 과정에서 책에서는 다양한 명언들을 소개해준다. 그들 중 몇몇이 변형되었다는 사실이 나를 멈춰 세웠다. 왜 바뀌었을까? 어쩌면 명언의 대부분이 해외에서 만들어져 번역이 잘못될 수도 있고, 너무 긴 문맥은 지루하기 마련이라 짧고 강한 한 문장이, 말하는 사람에게도, 듣는 사람에게도 편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변형이, 부정확함이 과연 옳은 것일까?라는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가령 마리 앙투아네트가 말했다는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된다' 히포크라테스의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마리 앙투아네트가 말했다는 시점에 그녀의 나이는 10살 남짓이었던, 프랑스에 오지도 않은 시점이었다. 뿐만 아니라 실제 그녀는 검소한 모습을 보이고 빈민들의 삶에도 신경을 썼다고 알려졌다. 그리고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의 예술(art)은 당시에 기술(tech)에 가까웠다. 의사였던 히포크라테스는 사람의 생명은 짧은데, 의술은 너무 배울 게 많아 부지런해야 한다는 의미였지만, 예술 작품은 영원하다는 것을 의미할 때 사용된다. 이런 것을 보면 정확한 출처와 그 맥락을 아는 채로 사용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명언은 권위자의 목소리를 빌려 부족한 논리를 보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권위자의 목소리를 더하거나 다수의 사람들이 인정하는 문장은 조금 더 힘이 있어 보인다. 잘못된 정보나 명언을 인용함으로써 자신의 목소리에 힘을 싣는다면 어쩌면 기만에 가까울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변형된 명언에서도 울림을 얻는다. 그렇다면 설령 그것이 역사적으로 오해가 있다고 한들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스쳐 지나갔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기다란 말을 자신의 좌우명으로 삼고 작품 하나하나에 짧은 인생을 담아 영원을 노래한다면 그의 삶을 대하는 태도에서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포스트잇은 강력한 접착제를 만드려고 했던 실패작이었고, 설거지를 하지 않아 생긴 푸른곰팡이는 최초의 항생제로 수억 명의 생명을 구하게 되었다. 언어 또한 마찬가지가 아닐까.
사실 우리는 수많은 문장들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낸다. 한 번쯤은 들어봤던 수많은 문장들이 허공에 떠돌더라도 마음에 와닿지 않으면 나의 문장이 되지 않는다. 결국 남은 것은 본질이다. 명언들을 통해서 내가 무엇을 얻을 수 있고, 그들의 언어가 지금 나에게 줄 수 있는 깨달음은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하는 것이 명언의 본질이 아닐까 싶다.
"사랑은 모든 것을 혼동시키지 않고 혼연일체로 만든다"는 말을 괴테가 했든 안 했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