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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의모든것의리뷰 Jan 15. 2024

첫 눈

반하다

여느 때와 같이 스타벅스에 앉아 책을 읽던 남자가 있었다. 공부라도 하러 온 것처럼 가방을 들고 왔지만 사실 가방 안에 든 것이라곤 책 한 권밖에 없었다. 별로 재미있는 책은 아니었는지, 혹은 창가의 발이 긴 의자가 어색해서 자리가 불편했는지 집중을 썩 잘하고 있지는 못했다. 책을 중간에 내려놓고 핸드폰을 들기도 하고, 커피를 마시다가도 괜히 창밖을 바라보기도 했다. 추운 겨울 사람들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와중을 멍하니 구경한다. 아무런 생각도 없이 멍하니 저 창밖을 바라보다 조금 더 편안한 자리에 앉아있던 한 쌍의 커플이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나자,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급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다른 사람에게 자리를 내주고 싶지는 않은 의지가 담긴 속도 롤 의자와 테이블을 향해 짐을 하나 둘 옮기기 시작했다.


 자리를 옮기고 나서는 곧잘 책을 읽는 것을 보아 아마 자리가 조금 불편했던 게 아니었나 싶다. 목이 아파서 잠깐 고개를 돌려 스트레칭도 할 겸 책의 내용을 잠시 덮었던 그 순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고개가 90도 정도 꺾인 순간 커다란 테이블에 앉아 이야기하는 한 여자가 보였다. 오로지 그녀만 조명을 받는 듯, 마치 주변이 어두워지고 그녀의 얼굴만 한층 밝아진 채 남자의 눈길은 얼어붙었다. 똘망 똘망 한 눈이 초승달 모양이 되면서 입꼬리가 올라가는 그녀의 웃음이었다. 너무나도 환한 웃음 때문인 건지, 밝은 조명 때문인 건지, 목까지 올라오는 검은색 폴라티 때문이었는지 그 무엇보다도 밝은 얼굴이 있었다. 


 1초의 시간이었지만 너무 쨍하게 쳐다보고 있었다고 생각한 그의 눈동자는 책에 파묻혔지만 그의 머릿 손은 온통 그녀의 웃음으로 가득 차있었다. 순간적으로 잘못 본 게 아닐까 하는 마음과 다시 한번 그 얼굴을 보고 싶다는 욕구에 고개는 다시 자연스러운 척 이리저리 둘러보는 듯하지만 그 초점은 오로지 한 군데에 맞추어져 있었다. 잘못 본 게 아니었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눈이 마주친 것 같은 느낌을 받은 그는 재빠르게 다시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한다. 부끄러워서, 감히 마주할 용기가 없어서 다시 한 번 본 그녀의 얼굴은 상상으로 미화가 된 건지는 몰라도 그저 아름다워 보였다. 


두 번, 흘긋 본 것만으로 그의 마음은 요동치기 시작했다. 좋아하던 연예인을 본 것보다 더 마음이 요동친다. 눈은 책의 보고 있지만 그 책장은 단 한 장도 넘어가지 않는다. 괜히 헛기침을 하고, 딴 곳을 보면서 마음을 진정시키길 원했지만 당연히 쉽게 되지는 않았다. 


놀라운 사람을 발견했지만 친구랑 같이 있어서, 사실은 용기가 부족해서 다가가지 못했던 그의 마음을 그녀가 알아챘는지, 혼자 일어서서 아마 화장실로 향한다. 그는 아마 마지막 기회가 될 수 있는 그 기회에 떨리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따라 나가야 할까 고민하지만 그 고민이 찰나의 순간 같은 긴 시간이 흐른 후에 어느새 그녀는 자리에 다시 돌아와있었다. 그 기회를 놓친 것에, 용기 없음을 자책하며 고개를 숙인다. 

아직 하늘이 그를 버리지 않은 것일까, 갑자기 그녀가 자리를 옮겨 바로 옆 테이블로 옮긴다.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걸까? 그의 마음은 다시 요동치기 시작한다. 더 가까이서 그녀를 볼 수 있다는 마음과 눈이 이리저리 흔들린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의도치 않은 기회에 몸부림치던 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옆 테이블에서 친구들과 다시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하지만 이번에는 혼자 또다시 화장실을 갈 생각은 없었는지, 잠시 친구들과 머물다 결국 카페를 떠나간다. 떠나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그는 이내 다시 한 번 아쉬움과 겁 많음을 자책하며 더 이상 책에도, 카페에도 미련이 없는 듯 짐을 챙겨 밖으로 나선다. 찬 바람이 불어오는 바깥공기에 그의 한숨이 어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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