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

세상을 보는 필터

by 거의모든것의리뷰

라섹 수술 이후, 맨눈에 익숙해져 살아가던 어느 날, 오랜만에 안경을 썼다. 그 순간 잊고 있었던 습관들이 안경 하나에 스며나왔다. 쓰기 전 닦아야 했고, 항상 제자리에 두어야 했으며, 아침마다 더듬거리며 앞을 찾지 않기 위해 나름의 규칙을 세워야 했다. 지금은 블루라이트 차단을 이유로 다시 쓴 안경이지만, 어릴 적 습관들이 되살아났다. 이제는 보이지 않는 것도 아니지만 안경은 마치 보이지 않는 것처럼 만들었다.


내가 안경을 처음 쓴 건 아홉 살 때였다. 시력 차가 심해 약시 교정을 위해 오른쪽 눈을 가리고 왼쪽 눈에만 안경을 끼웠다. 세상의 반쪽을 안경 너머로 바라보던 시절, 안경을 썼다는 이유로 남들과는 다른 무언가를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때는 안경을 쓰는 아이들도 많이 없었고 심지어 약시를 위해 한쪽 눈을 가린 아이는 더더욱 없었다. 반쪽자리 눈을 통해 세상을 보았지만 결국은 세상을 더 잘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초점이 맞지 않던 세상은 안경을 통해 세상이 정립되어갔다. 모든 게 무분별하게 들어오던 혼란의 세계에서 하나의 안경이라는 필터를 통해 들어온 세상만을 받아들이고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했다.


군대가 끝나갈 무렵, 눈을 깎았다. 라섹 수술을 결심한 건 단순히 불편함 때문이었다. 렌즈를 착용하기 불편해서, 안경을 끼기엔 마음에 안들었다. 수술 이후 처음으로 맨눈으로 간판의 글자를 읽던 순간, 나는 이 세계가 그대로인데도 마치 새롭게 태어난 듯한 착각을 느꼈다. 이제는 안경을 통해 초점을 맞추지 않아도 되었다. 변화한 것은 나였지만 마치 세상이 변한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안경은 또다시 돌아왔다. 이번엔 블루라이트 차단이라는 이유를 달고. 업무용 화면 속 작고 빽빽한 글자들, 멀어지는 초점, 피로한 눈은 다시 필터를 요구했다. 나는 안경을 썼고, 그 안에서 심리적인 안정을 얻었다. 거대한 의미는 아니었다. 나쁜 것을 걸러준다는 의미에 가까웠다. 블루라이트에 자외선을 얹어 가격은 더 올라갔지만 안경사의 화려한 언변에 '그돈씨'를 실천해버리면서 어느새 안경 하나가 손 위에 올려져 있었다.


어느새 선글라스의 계절이 돌아오고 있다. 먼 것 같았지만 또 금방 올것 같은 시기가 오고 있다. 햇빛이 잠에서 깨어나는 시기, 겨울잠을 자던 필터 하나가 다시 작동을 시작한다. 빛의 일부만을 받아들이고, 때로는 세상을 의도적으로 왜곡함으로써 나에게 편안한 현실을 구성해준다. 어두운 색의 렌즈는 여름의 강렬함을 중화시키고, 옅은 갈색의 렌즈는 쨍한 여름대신 약간은 어두운 가을을 앞당겨 데려온 것 같았다. 선글라스는 세상을 왜곡시켜 보여주기 시작했다.


나이가 들어가며 우리는 점점 더 자신만의 렌즈를 만든다. 어떤 건 선명하게, 어떤 건 흐릿하게, 어떤 건 아예 보지 않도록 만든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정리하고, 왜곡하며, 살아간다. 세상은 늘 그대로지만, 우리가 어떤 안경을 쓰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결국, 우리는 모두 안경을 쓰고 있을지도 모른다. 점점 더 두꺼워지는 안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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