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mol Summer Fest
Ericeira
작은 도시 여행을 좋아한다. 그곳은 도시 내에서 대중교통을 어떻게 타나 검색을 할 필요도 없고, 수많은 인파 속에서 소매치기를 걱정하며 핸드폰을 더 꽉 쥐고 있지 않아도 된다. 양팔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 좁디좁은 골목골목을 누비고 다니니다 모퉁이를 돌면, 흐드러진 꽃나무 아래 낮잠을 자고 있는 동네 고양이와 마주하는 곳. 작으면 작을수록 더 매력적인 곳.
에리세이라는 리스본 여행을 준비하며 난생처음 들어본 도시였다. 리스본에서 북서쪽으로 약 5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작은 바닷가 마을이다. 세계에서 가장 서핑하기 좋은 파도가 치는 곳이라기에 세계 각지에서 서퍼들이 몰려드는 곳이다. 대부분의 숙소도 서핑 캠프와 연결되어 있어, 이곳에서 먹고 자고 파도를 타며 지내는 것이었다. 나도 서핑을 하러 왔냐고? 물론 나는 페스티벌을 보러 왔다. 역시나 늘 그렇듯 목적에 매우 충실한 여행을 하고 있다. 리스본에서 열리는 노스 얼라이브 페스티벌을 보러 온 김에 근처에서 열리는 공연을 검색하던 중에 ‘Sumol Summer Fest’라는 처음 보는 페스티벌을 발견했다. 이틀 동안 개최되는 작은 페스티벌의 라인업은 그다지 나의 취향도 아니었지만 사진으로 본 에리세이라의 아기자기한 풍경에 반해 여기까지 오게 됐다.
리스본에서 직행버스를 타고 30분 만에 에리세이라에 도착했다.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을 보니 역시 나의 선택이 탁월했음을 알 수 있었다. 저 멀리 파도치는 바다가 보이는, 온통 하얀색과 아이보리색 낮은 건물로 둘러싸인 마을. 내리쬐는 햇살과 새파란 하늘 위로 그에 어울리는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나고 있었다. 해안도로를 따라 절벽 아래로 이어져 있는 해변가엔 형형색색의 파라솔이 세워져 있고 서핑의 도시답게 사람들은 파도를 즐기고 있었다. 난 서핑을 하러 온 것이 아니기에 서핑 캠프가 아닌 아주 작은 호텔을 예약했다. 한 사람이 겨우 올라갈 듯한 좁은 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아주 조그만 컨시어지가 있었다. 무척 친절한 주인분이 안내해 준 내방은 내 한 몸만 딱 뉘일 수 있을 정도로 작고 아담했다. 그렇지만 있을 건 다 있고 무엇보다 테라스가 있어 좋았다. 테라스 문을 열면 내가 사랑하는 작은 도시의 풍경이 펼쳐져 있었고, 그 풍경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더 바랄 게 없었다.
방안으로 햇살이 잔뜩 들어와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기분이 좋았다. 호텔에서 중심지까지는 걸어서 단 2분, 바닷가까지는 5분이면 도착했다. 하루만 돌아다녀도 동네의 길이 눈에 훤해지는 작은 도시의 매력. 빨래를 잔뜩 널어놓은 건물 사이를 걸어 다니면 피존 냄새가 진동을 하고,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면 고양이들이 테라스에 앉아 오후를 즐기고 있었다. 강아지와 산책을 나온 할아버지가 내게 따뜻하게 인사를 건네는 사랑스러웠던 마을이었다. 아침마다 그 풍경을 바라보며 근처 마트에서 빵과 커피를 사 와서 테라스에서 즐겼다. 밤이면 동네를 어슬렁거리며 아무 펍에 들어가서 술을 마셨다. 여행자 보단 동네 사람들이 가득했던, 데이빗 보위의 노래가 연속으로 나오던 '주크박스'라는 펍에 들어갔다. 계란 흰자와 바질이 들어간 진토닉을 한 모금 마시던 순간, 이 도시에 꼭 다시 와야겠단 마음을 먹었다.
O grande amor
에리세이라에서는 대부분의 시간을 바닷가에서 음악을 들으며 보냈다. 파도에 몸을 맡기고 서핑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아이스크림을 먹고, 가져간 파시미나를 돗자리 삼아 모래에 깔고 누워 음악을 들었다. 리스본에서 본 카에타노 벨로주 공연의 여운이 가시지 가시지 않아, 에리세이라에서도 계속해서 브라질 음악을 들었다. 자연스럽게 조앙 질베르토가 생각났다. 보사노바 최고의 클래식 앨범인 스탄겟츠와 조앙 질베르토가 함께 한 <겟츠 / 질베르토>를 안 들을 수 없었다. 이 앨범에서 오래도록 가장 좋아하던 곡은 ‘Para machucar meu coracao’였다. 그러나 이 날 바닷가에서 나를 사로잡은 곡은 ‘O grande amor’, 우리말로 하자면 ‘위대한 사랑’이었다. 이 바닷가의 한가로운 풍경은 말 그래도 큰 사랑 아닐까. 이 풍경과 더 이상 어울리는 노래는 없을 것만 같았다.
수몰 서머 페스트에 가는 길에도 역시 이 앨범을 들으며 천천히 걸었다. 바닷길를 무작정 따라가면 나오는 페스티벌이라니. 이 사실만으로도 이 곳은 가볼만한 가치가 있었다. 이 순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음미하며, 조앙 질베르토의 나지막한 목소리를 들으며... 마침 서서히 해가 지고 있어 발길을 멈추고 아무것도 없는 바닷가 앞의 벤치에 앉아 타들어가는 해를 한참 바라봤다. 그리고 평소처럼 인스타그램을 보는데 피드에 믿을 수 없는 문장이 쓰여 있었다.
‘Rest in Peace, João Gilberto (1931-2019)'
노래를 멈추고 몇 번을 다시 들여다봤다. 믿을 수 없었지만 그가 어제인 7월 6일 리오 데 자네이로의 자택에서 향년 88세의 나이로 별세했다고 한다. 이 숨 막히는 풍경 속에서 심지어 그의 음악을 듣고 있는 중에 부고를 듣게 될 줄은 몰랐다. 마치 그가 굉장히 가까운 사람처럼 느껴졌다. 여름 음악을 들려준 그였기에, 이 여름의 정 한가운데에 있던 내가 이 노래에 이토록 빠져들었던 걸까. 마치 그가 방금 바닷속에 자취를 감춘 태양 같았다. 세상을 황홀하게 물들이며 서서히 저물어 가는 태양 같던 그의 노래는 여름을 닮아 있었다. 하지만 잠시 사라졌던 태양은 내일 다시 떠오를 것이고, 조앙 질베르토의 노래는 여전히 세상을 떠돌며 많은 사람들을 위로해 줄 것이다. 페스티벌에 가던 길을 멈추고 바다를 바라보며 그의 노래를 다시 재생시켰다. 짧은 애도의 시간을 가졌다. 앞으로 언제든지 그의 노랠 듣게 되면 하염없이 바다만 바라봤던 이 여름의 에리세이라가 생각날 것이다.
편히 쉬세요. 위대한 사랑을 남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 함께 들으면 좋을 음악
Stan Getz & João Gilberto - O Grande Am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