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페스티벌의 가장 좋은 점은 페스티벌과 함께 주변에 가보고 싶었던 도시를 여행할 수 있다는 점이 아닐까. 물론 시간의 여유가 있다면 말이다. 그렇기에 나는 대부분의 연차를 여름휴가에 소진한다. 2017년 글라스톤베리에 가기 전에도 어느 도시를 들를까 한참을 고민했다. 그 해엔 유독 한 번도 밟아보지 않은 땅에 가고 싶었다. 한 번도 보지 못한 바다가 보고 싶었다.
구글맵을 보고 또 보며 수많은 고민을 한 끝에 그리스와 이탈리아에 가보기로 했다. 수많은 그리스의 섬과 수많은 이탈리아의 도시들 중에서 미코노스와 산토리니, 그리고 시칠리아의 카타니아, 시라쿠사, 모디카를 선택했다. (다시 봐도 감기몸살이 날 만한 일정이었다.) 사실 이 모든 여정은 미코노스로부터 시작됐다. 몇 년 전 겨울 우연히 미코노스섬의 사진 한 장을 보게 됐고, 새파란 바다와 맞닿아 있는 온통 새하얀 도시의 색깔에 완전히 매료돼 버렸다. 그 해 겨울에 가려고 알아보니 비수기여서 교통편도 자주 운행을 안 하고 상점도 문 닫는 곳이 많다고 하여 포기했었다. 글라스톤베리가 열리는 6월은 유럽을 여행하기 가장 좋은 달이다. 그렇게 나는 미코노스에 도착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먼 북소리>에서 미코노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곳을 여행한다면 여름이 좋다. 호텔이 만원이고, 근처의 디스코텍이 시끄러워서 잠을 잘 수 없어도 여름의 미코노스는 굉장히 즐겁다. 그것은 일종의 축제인 것이다.’
미코노스는 사진에서 보던 그대로 온통 하얀색과 파란색으로 뒤덮여 있었다. 새하얀 상자 같은 네모난 건물과 코발트색 바다, 바다보다 더 새파란 하늘, 그리고 지천에 진분홍색 부겐빌레아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이 곳에 산다는 거대한 핑크 펠리컨이 동네 비둘기처럼 아무렇게나 서있었고, <ZORBAS>라는 글자가 커다랗게 쓰인 바 앞엔 소설처럼 할아버지 한 분과 여성분이 앉아 계셨다. 그리스인 조르바가 환생해서 앉아 있는 듯한 광경이었다. 이틀을 묵게 될 작은 호텔 <빌라 피넬로피>에는 고양이 대여섯 마리가 꽃나무 아래에서 밥을 먹고 있었다. 동화 속에 들어온 걸까? 도착하자마자 펼쳐진 평화로운 풍경 앞에서, 왜 대체 이 곳을 이틀밖에 예약하지 않았을까 후회했다.
그러나 밤이 되자 하루키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낮엔 카페처럼 보이던 모든 음식점들이 시끌벅적한 바로 변했고, 좁은 골목골목엔 EDM 음악소리가 흘러넘쳤다. 미코노스가 그리스의 ‘이비자’라고 불린다더니 사실인 듯했다. 파도가 심하게 치는 바닷가 코앞의 바에 자리를 잡고 진토닉 한 잔을 시켰다. 민트가 한 다발이라도 들어간 것처럼 향이 몹시 진했다. 모두 친구들, 연인들과 함께 왁자지껄 떠드는 사람들이 가득했고, 나만 혼자 파도에 짠을 하며 잔을 홀짝였다.
마실수록 얼마 전 홍콩의 ‘진토네리아’라는 진 전문점에서 먹었던 진의 맛이 생각났다. 그때 함께 있었던 친구들이 무척 그리워졌다. 조금 외로웠지만 그 친구들을 다음 주면 브리스톨에서 만나서 글라스톤베리에 함께 간다는 사실에 다시 마음 한구석이 든든해졌다. 혼자 떠나와서 여행 중간에 친구들을 만나는 일정을 매우 좋아한다. 한국에서 함께 떠나는 것도 즐겁지만 낯선 도시에서 만나는 친구는 잃어버린 형제라도 만나는 것 마냥 두세 배는 더 반갑다. 풍요속에 쓸쓸하기도 했지만, 앞으로의 여행이 기대되는 미코노스섬에서의 여름밤이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 함께 들으면 좋을 음악
Fleet Foxes - Mykon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