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동안 잊고 있던 계좌가 알려준 것
복리를 처음 배울 때, 그래프를 본다.
왼쪽은 평평하고, 오른쪽에서 갑자기 치솟는 곡선. 시간이 지나면 돈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는 이야기. 누구나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데 현실에서 복리를 체감하는 사람은 드물다.
남편이 결혼 초에 가입한 연금 계좌가 있었다.
매달 일정 금액을 넣으면, 회사에서 같은 금액을 넣어주는 방식이었다. 조건이 좋아서 시작했고, 그 뒤로 15년 동안 한 번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았다. 매달 월급에서 빠져나가는 건 알았지만, 거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같은 시기에 부동산을 샀다. 부동산은 달랐다. 레버리지 덕분에 사자마자 덩치가 있었고, 오를 때도 눈에 보였다. 큰 것이 눈앞에서 움직이니까, 작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2023년, 남편이 이직을 하면서 그 계좌를 옮기게 됐다.
금액을 확인하는데, 예상과 달랐다. 우리가 넣은 돈의 몇 배가 되어 있었다. 매달 들어간 작은 금액에 회사 매칭이 붙고, 거기에 수익이 붙고, 그 수익에 다시 수익이 붙어 있었다.
15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분석도, 판단도, 타이밍도 없었다. 그냥 매달 같은 금액이 같은 곳으로 흘러갔을 뿐이다.
그런데 시간이 일을 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지금, 그 계좌는 우리 자산에서 무시할 수 없는 크기가 됐다.
처음 10년은 있어도 없어도 상관없는 수준이었다. 이게 뭔가 되고 있다는 감각 자체가 없었다. 그 다음 5년은 "제법 됐네" 정도였다. 그런데 최근 3년, 거북이가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복리가 진짜로 작동하는 건 그래프의 오른쪽이라고 했다. 나는 지금, 그 오른쪽에 들어선 것 같다.
오른쪽에 와보니 알게 된 게 있다.
왼쪽에 있을 때는 몰랐다. 매달 빠져나가는 돈이 어디로 가는지도 신경 쓰지 않았고, 이게 뭔가 되고 있다는 감각도 없었다. 그냥 하던 대로 했다. 가끔은 잊기도 했다.
그런데 그 시간들이 지금 여기까지 데려왔다. 견딘 것도 아니었다. 의지를 가지고 버틴 것도 아니었다. 그냥 같은 방향으로 계속 흘러갔을 뿐인데, 어느 순간 흐름이 힘을 갖게 됐다.
그래프로만 알던 걸, 이제야 이해했다. 복리는 설명이 아니라 경험이었다.
복리를 이야기할 때 사람들은 숫자를 말한다.
몇 퍼센트, 몇 년, 얼마. 계산기를 두드리고 그래프를 그린다.
그런데 내가 경험한 복리는 숫자가 아니었다. 15년 동안 같은 방향으로 흘러간 시간이었다. 매달, 같은 금액, 같은 계좌, 같은 방향. 그게 전부였다.
복리는 숫자가 아니라 방향이다. 얼마가 불어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오래 같은 방향을 유지하느냐.
방향만 맞으면, 시간이 나머지를 한다.
다만, 문제가 하나 있다.
오른쪽에 도착하기 전까지, 왼쪽의 시간이 너무 길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시간. 통장을 봐도 달라진 게 없고, 그래프를 봐도 평평하다. 그래서 의심이 생긴다. 이게 맞나. 이렇게 해서 뭐가 되나. 차라리 다른 걸 하는 게 낫지 않나.
나는 운이 좋았다. 잊고 있었으니까 버틸 수 있었다. 그런데 지켜보는 사람은 다르다. 보이지 않는 시간을 견디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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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못 버티는 건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