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직선을 좋아한다

보이지 않는 시간을 견디는 일에 대하여

by 필연

우리는 끝의 그래프를 보고 시작한다.

누군가가 보여주는 곡선. 처음엔 평평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급격히 올라가는 그림. 복리의 마법. 시간의 힘. 그걸 보면 마음이 움직인다. 나도 저기까지 갈 수 있겠다.

그래서 시작한다.


그런데 시작하고 나면, 보이는 건 직선이다.

한 달이 지나도 달라진 게 없다. 두 달이 지나도 비슷하다. 반년이 지나도 통장은 거의 그대로다. 분명 뭔가를 하고 있는데, 결과가 보이지 않는다.

노력한 만큼 돌아오지 않는다. 정확히는, 돌아오고 있는데 눈에 보이지 않는다.


우리 뇌는 직선을 좋아한다.

1을 넣으면 1이 나오고, 2를 넣으면 2가 나오는 것. 노력과 결과가 비례하는 것. 오늘 운동하면 내일 몸이 달라지고, 이번 달 저축하면 다음 달 통장이 두꺼워지는 것.

그래야 뇌가 안심한다. 내가 맞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느낀다.

그런데 복리는 직선이 아니다. 처음엔 거의 평평하고, 한참이 지나야 올라간다. 뇌가 원하는 보상이 오지 않는 시간이 너무 길다.


그래서 포기한다.

전략이 틀렸다고 생각한다. 종목이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방법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니면, 나는 안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 틀린 건 전략이 아니다.

시간이 부족했을 뿐이다.


다이어트를 생각하면 쉽다.

2주 동안 열심히 했는데 몸무게가 안 줄었다. 그러면 "이 방법이 안 맞나 보다"하고 다른 걸 찾는다. 새로운 식단, 새로운 운동, 새로운 앱. 방법을 계속 바꾼다.

그런데 문제는 방법이 아니었다. 2주가 짧았을 뿐이다. 어떤 방법이든 시간이 필요한데, 결과가 바로 안 보이면 불안해진다.

돈도 마찬가지다. 나도 그랬다. 6개월 적립했는데 수익이 미미하면, 이게 맞나 싶다. 1년 했는데 주변 사람이 다른 방법으로 더 빨리 불리면, 내가 틀렸나 싶다.

틀린 게 아니다. 아직 왼쪽에 있을 뿐이다.


문제는, 이걸 아는 것과 견디는 것은 다르다는 거다.

머리로는 안다.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 초반은 느리다는 것. 그래프의 오른쪽이 올 거라는 것.

그런데 몸은 모른다. 뇌는 지금 보상을 원한다. 변화가 안 보이면 불안하고, 불안하면 뭔가를 바꾸고 싶어진다. 그게 사람이다.

그래서 포기하는 게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뇌가 직선을 기대하도록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곡선의 초반을 견디는 건, 본능을 거스르는 일이다.


그러니까 버텨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건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인식의 문제다. 왜 이렇게 힘든지를 이해하면, 최소한 자신을 탓하지는 않게 된다.

보상이 안 보이는 시간. 변화가 없는 것 같은 시간. 내가 뭘 잘못하고 있는 것 같은 시간.

.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시간은 실패가 아니라 정상이다.




매거진의 이전글복리는 숫자가 아니라 방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