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력의 부재
나의 머릿속엔 늘 적어도 다섯 개씩의 생각이 공존하고, 그들은 자신을 먼저 생각해 달라며 소리 없는 아우성을 치곤 한다. 겉으로 소리치진 않아서 오직 들을 수 있는 건 나뿐이겠지만 그 구분 없는 시끄러운 외침에 나는 누구를 먼저 살펴봐야 하는지 이내 생각하는 걸 포기해 버린다. 까먹기 전에, 그리고 우선순위를 파악하기 위해 '메모'라는 행위를 이용해 본다. 명확한 데드라인이 없는 것들, 그리고 언제부터 시작되어 온 건지, 끝이 있는 건지 알 수 없어서 더욱 무엇부터 해야 할지 판단할 수 없다.
'게으른 완벽주의자인 나니까 일단 시작하기 쉬운 일부터 끝내야 할까? 하지만 지난번에 수업 지문에 나왔던 내용에 따르면 쉬운 일보다는 어려운 일부터 시작하는 것이 뇌의 효율을 살리기에 적합하다던데...', '아, 수업 준비도 해야 하는데. 그런데 하기가 너무 싫다. 내 공부는 언제 할 수 있지? 이러려고 일을 시작했나? 제대로 된 전공을 살린 직장을 구하는데 신경을 써야 하는데. 나는 주변 동기, 친구들에 비해 늦어지고 있어. 실력도 스펙도 부족하면서. 하지만 천천히 해도 되잖아 고작 만 나이로는 23살일 뿐인데, 앞으로 평생 일할 것을 생각하면 암울하기도 하고, 급하지 않게 여행도 다니고 놀기도 하고 그러고 취업하고 싶어.', '그래 맞아, 취미생활은 언제 해. 나는 소소하게 취미생활을 할 때가 가장 행복한걸...'
머릿속의 사고 회로는 A부터 Z까지 다양한 길로 이어져있다. 이렇게 생각하면 어느새 10분, 30분은 뚝딱이다. 그러면 또 이럴 때가 아니라며 고작 30분이 하루를 대변하는 것처럼 시간을 낭비했다는 생각에 자괴감과 무기력함이 따라 든다. 늘 이런 식이야 하는 비하를 첨언하며.
한바탕 쏟아져내린 생각 더미들에 갇혀서 뇌는 답답함과 피곤함을 느낀다. 그러면 가장 쉽게 갈 수 있는 개방적인 공간에서 휴식을 취하기 위해 핸드폰을 든다. SNS에 들어가서 사람들이 게시글에 남긴 반응도 확인하고, 메시지창에서 답장을 골라 읽고. 읽었지만 지금 답장할 에너지가 없다는 이유로 일단 '읽씹'을 하며 내버려 둔다. 며칠이 지난 한참 뒤에 답장하거나, 답장하는 것을 까먹고 아차 하며 친구가 보내온 마지막 메시지를 서둘러 두 번 클릭한다. 다시 홈으로 돌아와서는 좋아하는 인플루언서의 패션, 그들이 다녀온 서울의 신상 카페를 보며 열심히 스크린샷을 하지만 그 사진들은 다시 내 눈에 띄지 않고 그저 핸드폰의 저장공간을 가득 채우는 역할만 한다. 인스타든 블로그든 어떤 곳에서든 넘쳐나는 콘텐츠가 빠르게 눈과 뇌에 스쳐 지나간다. 놓치지 않으려고 킵을 해두거나, 저장 버튼을 눌러보거나, 스크린샷을 하거나, 아니면 머리에 욱여넣거나. 그렇게 할 일이 많아진 듯한 착각과 과중한 부담만이 남는다. 무엇이 중요한지 구분도 하지 못하면서, 다시 찾아볼 정보도 아닌데 놓치는 것에 큰 아쉬움을 느끼며 손해를 본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행위는 굉장히 중독적이고 스트레스를 소모해 준다는 핑계를 댈 수 있어서, 잠깐의 도파민만 얻고 끝낼 거니까 괜찮다며 스스로가 행위를 지속하게 만든다.
심지어는 다른 지역의 카페까지 다녀오며 일상에서의 기분전환을 하는 그들을 보며, '나도 여행이나 가볼까..? 안 간 지 오래됐네. 예쁜 풍경을 보며 따뜻한 카페에서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으면 분명 행복할 거야.'라고 생각을 한다. 그리고 속으로는 사진을 열심히 찍어서 전시도 해줘야지라는 숨겨진 목적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기껏 여행까지 가서 한다는 게 또 예쁜 카페에 가서 음악을 들으며 독서라니. 물론 그것이 나에게 있어서 즐거움을 주는 것도, 취미생활의 하나로 삼고 싶은 것도 맞지만. 정말 처음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집 근처에서도 집에서도 충분히 해낼 수 있는 것임을 사실은 알고 있다. 할 수 있을 때는 안하면서 해야만 하는 이유를 다른 목적에 덧붙여서 포장하려고 한다. 그렇게 됐을 때엔 내가 해낼 것인가? 결국 못하고 약간의 찝찝함과 아쉬움을 담은 채 현실로 돌아오고야 말겠지. SNS에서는 아주 힐링하는 시간을 가진 것처럼 포장해서 보여주고는 말이다.
여전히 메모장에는 기껏 그려 넣은 체크박스와 중요한 할 일을 강조하려는 빨간색 파란색 밑줄까지 있지만, 체크박스는 모두 빈칸인 네모 상태로 남아있다. 그 할 일들은 모두 주말로 몰아넣어버리지만 그 많은 일을 주말 내에 끝나겠다는 것은 욕심이다. '하고 싶은 일'이었던 취미 생활은 어느새 '해야 할 일'이 되어버린다. 시간을 신경 쓰지 않고 일단 해보자는 마음으로 호기롭게 시작한 독서는 한 페이지마다 공감가는 문장들이 몇 개씩 나오고, 거기엔 나의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이 자리 잡는다. 지금은 책을 읽는 중이었으니까 일단 다 읽고 하자며 인상 깊었던 단락을 통째로 사진 찍기를 몇 번, 그렇게 핸드폰을 들면 그 사진들을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싶은 욕망이 몇 번. 왜 이렇게 집중을 못하는지, 보여주기를 위한 책을 읽는 게 아니잖아! 단단히 이르며 다시 책 속으로 파고 들려 하지만 이번에는 아빠에게 전화가 온다. 밥을 먹으러 가자는 전화에 '나 배불러. 밥 먹고 나왔어~'하며 거절을 하고 끊는다. 나의 취미생활을 방해하는 전화에 귀찮음과 짜증이 순간 올랐지만 곧바로 드는 생각은 내가 너무 무심했나, 더 다정하게 말할 걸 하는 후회. 활자에 집중하려 하지만 방금 전의 통화 내용을 곱씹는다.
끝나지 않은 연속적인 일들에서 자주 도망치고 싶다. 빨래와 설거짓거리는 왜 자꾸 생기는 것이며, 한 권의 책을 다 읽지도 않았건만 내 눈길을 사로잡는 책들은 왜 이렇게 많은 것이며, 월요일에는 또 출근을 해서 못다한 일을 마치기 전에 새 일이 주어지겠구나 한다. 투두리스트의 목록에 쭉 줄을 그어버려도 곧바로 적을 일이 생기겠지 하는 마음은 의욕을 사라지게 만든다.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요즘엔 쫓긴다는 생각, 너무 많은 것들이 뇌를 차지해 버렸다는 생각에 나는 해방을 꿈꾸고 있다. 빠르게 생산되고 소멸해 버리는 콘텐츠의 늪은 나의 해방을 방해하는 1순위이다. 마감기한이 없는 일조차도 나를 자꾸 재촉하니 본래부터 청개구리 기질이 심했던 나는 하기 싫다며 도망가며 질색하는 것이다. 이 글을 쓰는 도중에도 낮에 유튜브에서 본 ADHD 영상들이 생각나서 역시 검사를 받아봐야 해 VS 그래도 일단 집중해 가며 나의 일들을 해 나가야겠지라는 결론나지 않는 생각들이 싸움을 벌인다. 결론을 내지 못하는 일과 글이지만 누군가는 결론을 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게으른 완벽주의자에서 탈피해서 잃어버린 집중력을 천천히 되찾아보자는 목적을 가진 나에게는 여기까지가 대단한 성과이다. 이번 주말에도 계속 밀려서 불어난 목표치를 역시 다하지는 못했지만, 조금이나마 했다는 점에 큰 칭찬을 받아 마땅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