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다짐

by 앤니


요즘 들어 글을 자주 쓰기 시작했고, 본격적으로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 '본격적'이란 말의 의미는 글 쓰는 행위에 대해 한층 진심이 되었으며 더 많은 사람들에게 내 글이 도달했으면 함을 느끼는 것. 타인의 감상과 평가를 피하지 않겠다는 것. 십 년 전쯤부터 막연하게 생각해 왔던 꿈에 한 발짝 다가가는 것, 그것이 막연하다고만은 생각하지 않게 되는 것. 그런 것들이다.










사실 생각해 보면 글이라는 것은 예술 또는 표현, 무언가를 드러낼 수 있는 글자들의 모음 이전에 가장 기본적인 전달 수단의 하나였다. 내가 본격적이라고 일컬을 필요도 없이 내 삶에서 글이란 것은 언제나 함께였고, 나의 정체성 일부이며, 적어도 나에게는 말보다 편한 수단이었다. 청소년 시절에는 늘 책과 함께였으며, 특히 그 시절 추리소설과 판타지소설에 빠졌던 아이에겐 당연하게도 재밌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욕구가 강했다. '조각글'이란 것이 유행하며 당시 블로그(예전에 쓰던 블로그와 같은데 초기화를 한 것이 정말 후회가 될 뿐이다. 어린 시절의 기록이 날아갔다. 아날로그보다 디지털이 익숙하다면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에는 조각글 카테고리가 개설되어 있었다. 용두사미 기질이 다분한 나에게 세계관과 설정을 짜고, 1화를 쓰는 데에는 한참의 시간(지금은 짧게만 느껴지는 몇 시간~하루)이 걸렸지만 2~3화까지 쓰고 나면 연재를 멈춰버리는 그런 일이 몇 번이나 있었다.


어쨌든 나는 글을 썼다. 학교 수행평가로 시와 독후감을 쓰고, 사회적인 주제로 글을 쓰고. 누구나 한 번쯤은 해보는 경험이다. 그런 경험 시간을 꽤 즐겼고 또래들 사이에서는 글쓰기 실력에 대해 자부심이 있는 편이었다. 당연히 작가만큼은 아니지만, 주변의 아이들 중에서는 어휘력과 문장력, 표현력이 제법 있다고 자신했던 때. 칭찬을 받을 때도 있지만 생각하던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아무렇지 않은 척하면서 속에선 부끄러움을 쏟아내던 때.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는 더 많은 글을 쓸 기회가 있었지만 자신감은 잃어버렸다. 책과 글/그림 따위에 신경을 쓸 시간에 수학문제 한 개를 풀고 영어 단어 한 개를 외우는 것이 더 중요했던 때가 찾아온 것이다. 중3의 겨울방학을 지나며 공부를 어렸을 때만큼 열심히 하지 않아서 나의 수준과 다른 사람들의 수준 차이를 알게 되었고, 당장의 고등학생에게 중요했던 것은 공부실력과 성적이었기에 그 부분이 너무나 크게 느껴진 나는 다른 부분의 능력까지 저하되었던 것 같다. 부족함을 알지만 그래도 수행평가 등으로 글을 써야 하는 건 마찬가지여서 그냥 썼다. 하기 싫은데 했고, 하고 싶어서 한 것도 있다. 생활기록부에 들어가는 문장들, 세부능력특기사항*을 적는 것은 학생의 몫이었다. 그런 부분이 귀찮기는 해도 싫지는 않았다. 적어도 2-3등급 이상의 성적을 받아야 쓸 기회를 주시는 선생님들이 계셨다. 올라가는 성적 - 열심히 한 결과를 눈으로 접해서, 나의 진로와 맞춰 쓸 수 있어서, 거짓인 듯 진실로 구성된 글이니 나름 재미있었다. 2학년 때에는 좋아하던 과목 선생님이 수빈이도 글 잘 썼던 것 같은데, 하며 나에게 친구들의 세특*을 적어주지 않겠냐며 임무를 주셨다. 잘 보였으면 하는 선생님과 반아이들로부터 인정을 받음과 동시에 아이들의 생기부 일부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생각에 또 나의 도파민은 뿜뿜. 그것은 나에게 전혀 귀찮은 일이 아니었으며 오히려 반기는 일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학생들 모두가 인천대공원에 가서 참여해야 했던 백범 김구 백일장 대회에서는 산문(소설) 부문으로 우수상을 받았었고, 학교에서 수시로 입시하는 아이들을 위해 어떻게든 상을 주고자 마련했던 각종 독후감, 동아리발표회 감상문, 자기소개서 쓰기 교내 대회에서도 상을 받았던 기록이 남아있다. 초중학생 때 많은 상장들로 자존감과 자부심을 채웠던 기억이 새록새록 생각나며, 다시 나에게 떳떳해도 되는 때가 오나 싶었다. 늘 어중간한 위치에 서있다고 생각했기에 도전도 가볍게, 결과도 쉽게 받아들였던 사람에게 무언가 해보아도 되지 않겠냐. 지금 너를 믿고 키운다면 1년, 5년, 10년 뒤에는 충분히 바라는 모습이 되어있을 텐데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 기억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일부가 되거나 옅어진 다짐들은 나를 또 그럭저럭 잘 살아가는 인간으로 만들었고 약간의 불만족은 있다만야 전반적으로는 만족하며 살아가는 삶이 계속될 뿐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20살과 21살의 다채롭고 시끌벅적한 외내적 경험은 스스로에게 계속해서 의문을 던지게 만들었고, 21살이 끝나가는 그 시기에 바뀌어보고 도전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심어주었다. 실제로 그 시기부터 나는 무언가 바뀌기 시작했고 그것을 보여주는 것은 다시 쓰기 시작한 블로그였다. 블로그에는 나를 알아가는 과정과 중간중간의 학업과 여러 노력들을 담았다. 그렇게 나에게는 사람들과 기억과 기록들이 남았다. 그 이후로도 격정의 구간을 몇 지나면서 이야깃거리는 계속해서 생겨났다. 관심 있는 것에 대해 소개하고 싶고, 좋아하는 작가의 문장을 보고 의견을 남기고 싶고, 나의 생각을 표현하고 싶다는 마음이 숨어있지 못하고 자꾸만 튀어나왔다. 튀어나온 마음은 과거의 욕망과 다짐을 불러와 존재감을 더욱 키우고 있다. 25살의 해가 끝나가는 동안 그 존재를 인정하게 되었다. 아마도 앞으로의 목표는 나만이 아니라 모두가 아는 마음이 될 수 있게 몸집을 불리는 것이 될 것이다. 아직은 의식적으로 힘을 주고 마는 본격적인 글쓰기가 자연스러워질 때까지 써버리고, 글 쓰는 사람이기보다 표현하는 사람을 목표로, 한정된 것을 표현하는 사람에서 모든 것을 자유자재로 표현할 수 있게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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