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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렉사이다 Feb 09. 2019

눈바람을 뚫고 산을 넘어 25.5km (7)

까미노 5일차 27 Jan 2019, 라바날에서 몰리나세까까지 95km

마음 한켠에 산을 넘어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지만 이틀간 푹 쉬었겠다, 아침도 든든히 먹었겠다 처음 출발은 발걸음이 가벼웠다. 밤새 비가 왔는지 땅은 축축했지만 머리 위 하늘은 파랬다. 우리가 향해가는 저 멀리 산 위로는 두텁고 시커먼 구름이 가득 껴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산을 넘지만 우리가 넘어야할 산이 그 산인진 몰랐다.


저 길 끝 구름이 가득 차 있다.



열입곱번째 마을, Foncebadon

폰세바돈 (5.5km)

슬슬 산길을 따라 올라 간다.


등산 초입구 같은 길을 따라 올라간다. 산을 하나 넘어야 하니 이정도는 예상했던바인데 차가운 겨울 바람이 내내 불더니 길에 눈이 슬슬 보인다. 뭔가 심창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을때 쯤 폰세바돈에 도착했다. 출발한지 1시간 밖에 안되었지만 몸이 얼어 잠깐 녹였다 가기로 했다. 다행이 마을 초입에 문을 연 바가 있었는데 이 작은 마을에 유일하게 연 알베르게였다. 들어가자마자 활활 타는 모닥불이 맞아준다. 자연스럽게 가방을 내리고 모닥불 앞에 앉았다. 모닥불 위쪽에 세계 각국의 말로 써있는 쪽지들 사이로 유난히 익숙한 인도인도한 느낌이 들었다.


이미 구름 속으로 들어온 상황(좌), 폰세바돈의 따뜻했떤 알베르게 바(우)


 


철의십자가

에이미는 핫코코아를 나는 와인한잔을 마시고 무거운 엉덩이를 겨우띠고 겨울바람이 불어대는 밖으로 나왔다. 오르막을  오를수록 날씨는 점점 나빠진다. 얼굴에 향해 작은 우박이 사정없이 죄로 우로 싸대기를 때렸다. 만하린까지 가는 길 중간에는 순례자길의 가장 하이라이트라고 부르는 철의 십자가가 있다. 순례길을 시작하기전 각자 살고 있는 곳으로부터 소망을 담은 돌멩이를 하나 들고 와 내내 함께 길을 걷다가 철의 십자가에 도착하면 이곳에 여정을 함께 한 돌을 내려놓는다고 한다. 산따 까딸리나를 떠날때 서야 호텔 주인으로부터 돌멩이를 챙겨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고 아저씨는 이 동네에서 돌멩이 하나를 주워가라했다.

 

주섬주섬 돌을 꺼내는 중


오르막과 평지의 길을 반복해서 올라가다보니 저 멀리 뿌연 시야 사이로 사진에서 본 철의 십자가가 서 있다. 생장으로부터 출발해야 느낄 수 있는건지 종교인이야 느낄 수 있는 건지는 모르지만 개인적으로는 감흥이 없었다. 게다가 철의 십자가에 거의 다달았을때 차를 타고 내린 한부부가 요란스럽게 소리를 지르며 철의 십자가에서 10가 넘는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어대는 통에 고요한 감상을 즐길 수도 없었다. 그래도 돌멩이는 십자가 근처에 두고 요란한 커플을 뒤로 하고 만하린을 향해 걸어갔다.

 


열여덟번째 마을, Manjarin

만하린 (4.5km)

구름 속 겨울 산길


차가운 빗방울과 우박 사이가 번갈아 내리더니 급기야 눈이 내린다. 갑자기 가을에서 겨울로 점프한 것 같다. 그 와중에 눈에 담기는 설산이 아름다워서 얼은 손으로 사진을 찍었다. 추위에 몸에 힘을 꽉주고 걸으니 피로가 더 쌓인다. 쉬고싶은 마음이 간절한 상태로 고개를 넘는 순간 앱에서 본 (좋게 말해도) 판자집이 하나 눈에 띈다. 요란하게 여러나라의 국기가 걸려있고, 그 중에 태극기도 있다. 겉에서 볼땐 문을 열리가 없어보이는데 개가 짓는 소리가 들리는걸로 봐서 사람이 있을 것 같아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녹이슨 보온병들과 컵들, 싱싱해보이지는 않은 과일들과 기부상자가 있는걸로 봐서 아마 알아서 돈을 내고 먹는 시스템인것 같았다. 비닐과 판자로 만들어놓은 곳이라 온기는 느껴지진 않았지만 비바람을 막는 것만해도 감사하는 마음에 둘러보는데 왠 아저씨가 나온다. 인사를 건네니 인사를 받고는 쿨하게 다시 들어가고 나서 이번엔 할아버지가 나왔다. 그 사이 이 판자집에 사는 고양이들도 단체로 몰려나왔는데 그 중 한마리가 접대냥인지 생소한 우리의 손길에도 도망치지 않고 애옹거리면서 놀아주었다. 


만하린 판자집 접대냥이


할아버지는 스페인어로 무언가 말해주려는것 같았는데 대충 눈치껏 앞으로 2-3km 더 오르면 그 다음부터는 쭉 내리막이야 하고 말하는것 같았다. 순례자사이트에서는 철 십자가 이후로 쭉 내리막길이라 어려운 고비는 넘겼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더 고생해야할 모양이이었다. 할아버지의 이런저런 얘기와 고양이의 애교에 적은 돈을 기부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판자집 뒤로 여러마리의 고양이들이 추운 날씨에도 우르르 몰려다니는걸 볼 수 있었다.



열아홉번째 마을, El Acebo

엘 아세보 (7km)

결국 할아버지 말이 (당연히) 맞았다. 우리는 아주 한참을 산을 올라야했다. 예상하지 못했던 길고 긴 오르막은 두배로 힘들었지만 얼마 안가 지겹도록 길게 이어진 내리막은 무릎과 발목에 고통을 앉겨주었다. 추위와 오르막과 내리막 사이에서 부지런히 걸어갔다. 하기사 우리는 걷는 것 빼놓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추운 날씨에 손을 꺼내 사진 한장 찍는 것도 용기가 필요했다. 


그와중에 아름다운 풍경


거친 구름 사이로 저멀리 시야에 엘 세보가 보였을때 잠시 쉬어가며 따뜻한 식사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발걸음에 힘을 실었다.

 

이런 날씨와 길에 7km를 한번에 걷는건 어려운법, 고통스러워 잠시 길가에 주저 앉았다.


오후3시를 넘은 시간이라 본격적으로 배가 고파왔다. 마을 안으로 들어오니 기분이 쎄한 것이 아무래도 불안했다. 알베르게는 모두 닫은 모양이었고 문을 연 숙소 하나는 식사는 제공하지 않는다고 했다. 마을을 다 통과 했을 무렵 엄청 나게 큰 알베르게가 보였지만 문이 굳게 닫혀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에이미가 전화해봤지만 겨울 시즌이라 문을 열지 않는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결국 우리는 그 알베르게 앞 커다란 공터에 털썩 주저 앉아 쟁여둔 간식을 먹기로 했다. 전에 남은 음식으로 만든 샌드위치랑 딱딱한 바게트, 잼, 아스토르가에서부터 들고온 배를 모두 꺼내 먹기 시작했다. 여행 기간 중 가장 불쌍한 순간이었다. 가장 혹독한 날씨에 배낭까지 메고 산을 넘었는데 차가운 땅바닥에서의 늦은 점심이라니.


거지꼴


오래 쉴 수도 없었다. 허기를 간단히 채우고 다음 마을로 출발했다. 따뜻하게 쉴 수 있는 곳이 있길 바랬지만 없어도 실망하지 않기로 했다. 겨울 까미노에서 감수 해야하는 일 중에 하나란걸 자연스럽게 받아드리고 있었다.



스무번째 마을, Riego de Ambros

리에고 데 암브로스 (3.5km)

고도가 내려가면서 얼굴에 우박이나 눈이 쏟아지지 않으니 그마나 다행이었다. 산을 따라 고불고불 나있는 도러 옆을 따라 걸어 마을에 도착했다. 이 마을 역시 겨울에는 유령도시가 되는 지 상점은 문 연곳이 없었지만 관광객으로 보이는 한 가족과 여행 갈 채비를 하는 가족을 마주쳤다. 작지만 아기자기 귀여운 마을이었고 우리는 이 곳에서 쉴 순 없었지만 이번엔 실망하지 않고 씩씩하게 마을을 지나쳤다.




스물 한번째 마을, Molinaseca

오늘의 도착지 몰리나세까 (4.5km)

노란색 화살표를 따라 마을을 벗어나는 순간 내리막의 산길이 나타났다. 조금 전까지 놀이동산의 마을 사이의 길을 걸었는데 골목을 꺾자마자 나타난건 산중턱이었다. 미끄러운 돌 위를 발꼬락에 힘을 주며 조심스럽게 한창을 내려갔다. 산길을 벗어나 다시 도로옆길, 언덕을 넘어가자 저 멀리 도시가 보인다. 이제는 멀리 보이는 도시를 보고 얼마쯤 더 가야하는 지 감이 온다.

 

드디어 도착!!!


베낭의 무게가 늘리 없지만 점점 가방이 무거워지는 느낌이다. 한시간이 넘는 내리막을 아픈 무릎을 모른척하며 산을 다 내려와 마을의 입구에 도착했다. 커다란 탑이 있는 교회와 아름다운 다리, 그 사이로 흐르는 강이라니 동화에서나 봤을법한 아름다운 마을이다. 마침 해가 지고 있어서 분홍색으로 휩싸인 마을은 그 분위기를 한층 더 했다. 힘든걸 순간 잊고 한창 사진을 찍었다.


아름다운 몰리나세까


다리를 건너 마을로 들어가자마자 갑자기 할아버지가 나타나서 큰 목소리로 인사를 한다. 본인이 성직자라면서 우리를 축복해줬다. 도착한 마을에서 환영받은 기분으로 숙소에 들어가 체크인을 했다. 방으로 올라가 쉬고 싶은데 말많은 아저씨가 여기저기를 소개하다못해 숙소와 이어진 가게까지 소개해준다. 기나긴 설명타임이 끝나고 방키를 건네면서 땅콩과 건포도 한봉지도 선물로 주었다.


방으로 올라와 가방을 내려두고 신발를 벗었다. 침대에 털썩 주저 앉으니 아이고 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그대로 쉬고 싶다는 생각보다 맛있는 식사를 하고 싶다는 욕구가 더 컸다. 에이미는 이미 식당을 검색하고 있었다.


바로 숙소를 나서서 식당을 찾아갔는데 하필 문을 닫았다. 속상함은 잠시 다시 검색해서 다음전 식당을 찾아갔다. 식당문을 여니 축구중계소리가 커다랗게 들린다. 바를 지나 식당으로 들어가 앉아 메뉴를 받았는데 거의 김밥천국 수준의 메뉴구성이다. 모든걸 다 파는 모양새여서 살짝 기대감이 낮아졌다. 뽈뽀와 감바스를 시키고 에이미가 검색해서 찾은 가리비 요리를 하나 거 시켰다. 그리고 와인 한병.


정말 너무너무 맛있었다.


 뽈뽀가 처음 나왔는데 양이 어마무시하다. 에이미가 한 입먹더니 눈이 동그래지면서 어서 먹으라는 손짓을 한다. 한입 먹으니, 오! 평소먹던 뽈뽀보다 훨씬 부드럽고 조각조각이 컸다. 뒤이어 나온 가리비... 우리 여행에서 어떤 중요한 기준점이 된 날이다. 정말 한입 먹고 감동으로 말이 맘췄다. 가리비가 10개가 나왔는데 에이미와 나는 5분안에 모두 먹어치웠다. 이날부터 우리의 가리비 찬양은 시작되었다. 감바스도 다른 식당보다 맛이 있었고 추가로 시킨 버섯볶음도 너무 맛이 있었다. 우리는 거의 모든 음식을 남기지 않고 거의 다 먹고는 남은 음식은 빵 사이에 껴서 휴지에 둘둘 말아 챙겼다.

 

오늘 여정도 무사히


눈과 우박맞으며 산을 넘다가 길바닥에서 음식먹으며 도착한 아름다운 마을에서 최고 맛있는 음식이라니, 인생이란 역시 그런건가(?)하는 마음으로 배뚜드리며 숙소로 휘적휘적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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