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에 얻은 작은 성공 (2)
올해 초 인생 중 최대 건강 위기를 만났다. 그것은 (초기) 허리 디스크. 인도 생활하면서 체중도 많이 증가했고 움직임이 제한된(실은 게으른) 생활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다보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기침할때마다 온몸이 고통스러워 기침을 참고 아픔에 지쳐 잠깐 잠이 들어 뒤척이나 아파서 깨고, 몇분 거리 병원을 못 걸어 가서 타다를 불러 방문한 병원에서 (초기) 디스크라고 진단을 받았다. 내가 유독 일자허리라 디스크의 심각한 정도에 비해 고통을 매우 많이 느끼고 있는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50미터를 지팡이의 도움을 받아도 걷지 못하는 고통스러운 시간들이 더디게 흘렀다. 인도에서의 게으른 생활 이전에는 하루에 2번 이상 복싱이나 헬스, 수영을 하고 주말에는 마음에 맞는 동료들과 재미로 10킬로 마라톤을 참가했었는데 내가 기억하는 나와 지금의 나의 신체적 능력의 대비가 너무 극명해서 정신적으로 제대로 받아드리기 어려웠다. 자고 일어나면 감기처럼 사라질것 같은 허리 통증이 괴롭도록 계속 이어졌다.
결국 디스크는 나와 오래 함께 할 것이고 좋은 습관을 만들고 꾸준하게-내가 가장 못하는 것- 습관을 이어 나가야 한다는 것을 받아드릴 수 밖에 없었다. 컨디션이 조금이라도 괜찮아지는 날이면 아침, 저녁으로 걷기 시작했다. 인도에서 사온 효과가 영험한 크림(?)을 허리에 잔뜩 바르고 몇걸음 걷다 서다를 반복하면서 걷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앞질러갈 때마다 나에게도 저런 날이 올까 하는 생각, 나도 저렇게 허리 고통 없이 신나게 걷고 싶다거나, 어느 순간에는 "정말 뛰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건강했을 당시에도 한번도 뛰는 행위 자체를 좋아한 적은 없다. 뛰고 난 다음의 성취감을 좋아 했을 뿐. 그런데 바람을 가르면서 뛸 수만 있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몇개월을 걷다보니 매일 느껴지는 통증의 느낌이 바뀌기 시작하더니 어느 날서부터는 느껴지지 않았고, 어느 순간 허리 통증이 사라지고 대신 근육통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근육통이 이렇게 반갑게 느껴질 일인가.
그렇게 시간은 흘러 택시 대신 이제 버스를 타고 조금은 '걸어서' 이동할 수 있었던 10월 쯤, 이제 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마침, 지인이 런데이를 추천해주었다. 한번도 뛰어본 적 없는 사람들도 8주를 트레이닝하면 30분을 연속으로 달릴 수 있게 만드는 프로그램이었다. 해볼만 하다는 생각과 함께 시작했다. 물론 초반부터 열심히 하진 않았다. 허리 통증이 사라지자, 달리고자 하는 욕구가 이전보다 자연스럽게 낮아졌기 때문이다. 그냥 이렇게 가방을 짊어지고 걷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하는거 아닌가 하는 간사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11월, 2020년이 두달 정도 밖에 남지 않자 올해가 가기 전에 뭐라도 마무리하는 성취를 하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고 -그것은 100일 영어해석하기 챌린지의 긍정적 효과 중 하나 였을 것이다- 1주차 훈련에 멈췄던 런데이를 다시 시작하기 시작했다. 10월 보다는 열심히 했지만 연속해서 3분 달리기가 쉽지 않아 2분과 3분 사이를 계속 반복 트레이닝 했다. 잠깐 더 대과거로 올라가자면 한번도 달린적이 없었던 4년 전인 2016년에 무식하고 용감하게 하프마라톤을 신청하고는 3개월 준비해서 완주 한적이 있었다. 그때 준비 하면서 느꼈던 것은 달리기 능력도 꾸준히 증가하는게 아니라는 것이었다. 마치 체중도 계단식으로 어느 순간 훅하고 감량되듯이 달리기 능력도 1킬로, 2킬로, 3킬로 달릴 수 있다가 도저히 넘지 못하는 순간이 반복되다가 어느순간 5킬로, 그 다음에 10킬로를 달릴 수 있었다. 과거의 경험이 있어서 달리기가 좀처럼 늘지 않아도 다른 때 처럼 조급해하지 않았다. 그저 반복하면 늘겠거니 하면서 힘들면 2분짜리, 더 힘든날은 1분짜리를 했다. 며칠을 하지 않아도 다시 시작하는 자세로 11월을 보내고, 백수 상태의 12월을 맞았다.
12월, 마무리 하고 싶은 일 중에는 역시 달리기가 있어고. 백수가 되었으니 아침 저녁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허리 통증은 사라졌지만 기초 체력이 바닥인 상태에서는 기대보다 진도는 더디게 나아갔다. 11월 처럼 달리다 힘겨우면 이전 코스로 돌아가서 몸이 편안해질때까지 반복하다 에너지 레벨이 높은 날에는 매일매일 진도를 나갔다. 연속에서 3분에서 5분으로 넘어가는 구간이 개인적으로는 가장 힘들었고, 몇주간 그 단계에 머물렀다.
그리고 드디어 올해가 며칠 안남은 그야말로 직전인 27일 저녁에 (빠른 걷기 수준의 페이스로) 30분 연속 달리기에 성공했다. 이어폰에서 30분 달리기가 종료되었다는 안내와 함께 만세를 하고, 박수를 치고, 작게 소리 질러 축하 했다. 8주간 24개의 트레이닝을 12주간 69번 반복했다. 프로그램의 예상 한것보다 많이 느린 속도였지만 어찌되었든 해냈다는 성취감이 아주 기분 좋게 느껴졌다.
런데이 프로그램을 키고 달리면 이어폰을 통해 꾸준히 격려하거나 달리기의 매력에 대한 말을 끊임없이 떠든다. 8주간 트레이닝을 끝내고 나면 달리기의 매력을 알게 될 것이라고 그는 나를 세뇌 시켰지만 30분 연속 달리기에 성공하던 날까지 달리면서 가장 많이 든 유일한 생각은 "달리는건 왜 이렇게 힘들고 싫을까? 과연 달리는 것 자체를 좋아하게 될 날은 올까?" 였다.
하지만, 달리기를 마치고 나서 추운 공기에 뜨거운 땀이 만나면서 느껴지는 오싹한 상쾌함과 성취감의 매력은 확실하다는 것, 그리고 내년에는 매일 최소 10분 달리기 (연속이 아니어도), 최대 목표는 연속해서 10킬로 달리기를 이뤄내고 싶다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든다는 것이다.
한줄요약
(크기와 상관없이) 이룬 성취는, 다른 성취를 이루는데 엄청난 역할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