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JAN 2018
인도 하면 가장 먼저 (나에게는 또한 유일하게) 떠오르는 곳, 타지마할-
인도의 대표적 이슬람 건축물로 인도 아그라(Agra)의 남쪽, 자무나(Jamuna) 강가에 자리잡은 궁전 형식의 묘지이다. 무굴제국의 황제 샤 자한이 자신이 총애하였던 부인 뭄타즈 마할을 기리기 위하여 2만명이 너는 노동자를 동원하여 그녀가 죽은 지 6개월 후부터 건설을 시작하여 22년 후에 완공하였다. 타지마할은 페르시아, 터키, 인도 및 이슬람의 건축 양식이 잘 조합된 무굴 건축의 가장 훌륭한 예로 1983년에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에 등재되었다.
이 회사에 오기 전 인도에는 관심이 (절대) 없었지만 타지마할은 한번쯤 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막상 오고나서는 타이밍을 놓쳐서 못가고 있었는데 드디어 기회가 왔다. 정원은 최대 6명, 사실 뒷자석에 3명이 타기 어려우므로 5명이 적절하다고 봐야하는데 이미 가기로 한 사람이 6명이었다. 대기자로 궁시렁(?)거리면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주말이 가까워오자 대거 사람들이 안가겠다고 했다. 요시!!! 결국 최종으로 가기로 한 사람은 케빈, 조쉬와 조쉬와이프(이하 왚), 마이크, 나 총 5명이었다.
토요일 새벽 5시에 출발해서 아그라에 도착, 타지마할과 아그라포트를 둘러보는 일정이었다. 새벽같이 출발해야하므로 전날 슈퍼마켓에서 간단하게 먹을 장을 보고, 샌드위치 만들 재료도 샀다.
새벽 4시 30분에 마이크와 함께 샌드위치를 준비하기로 했는데 주방에 들어온 마이크가 초췌한 얼굴에 잠옷차림이다. 무슨일이냐고 물으니 밤사이 인도설사로 고생한 모양이었다. (인도설사는 한국과 달라 한번 걸리면 2-3일은 누워 요양해야 한다) 아그라는 못가도 샌드위치는 같이 싼다는 그를 방으로 돌려보내고 참치샌드위치를 준비하고 남은 빵은 버터에 튀겨 설탕을 뿌려 도시락을 완성했다. 뿌듯-
새벽 5시가 되어 간단하게 가방하나를 둘러메고 1층으로 내려가니 시암은 벌써 차를 대기 시켜놨고 조쉬와 왚도 미리부터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케빈까지 도착해서 마이크가 못온 이유를 짧게 말하고 결국은 4명이 (아주 넉넉하게) 차를 타고 아그라를 향해 출발했다.
이맘때 안개가 특히 심했는데 이날도 역시 가는 길 내내 안개가 너무 심해 갈 수나 있을지, 도착해도 타지마할을 볼 수나 있을지가 걱정이었다. 지난번 12월 마지막 날에 에이미와 브랜든이 타지마할을 갔을때 분명 가긴 갔는데 안개가 자욱해서 타지마할을 보지 못했다고 한 탓에 걱정이 2배가 되었다.
마살라 하이웨이(?)라고 적혀진 길을 따라 안개속임에도 신나게 내달리는데 가장 당황한건 그 속에 사람들이 길을 달려간다는 사실이었다. 아니 왜 고속도로에 심지어 시야도 확보되지 않은 고속도로위를 뛰어다니는건지, 시암에게 물어봐도 웃으면서 인도라서 그렇다는 대답뿐이었다.
출발한지 3시간이 조금 넘어 우리는 티자마할로 가는 입구에 도착했다. 시암은 차를 세우고는 가는 방향을 알려주었다. 주차장에서부터 타지마할 입구까지는 릭샤며 말마차며 호객을 하고 있었지만 10분이 채 안되게 걸리는 거리인데다 막상 도착했을때는 안개는 사라지고 파란하늘을 볼 수 있어서 룰루랄라- 걸어가기로 했다.
타지마할 입구에 도착했다. 입장료를 내야하는 모든 곳이 같지만 역시나 외국인은 1100루피 (약 17,000원), 인도인은 50루피(약 80원)었다. 아니 20배라니- 이 와중에 케빈은 아다하르번호가 있어서 50루피 주고 티켓을 살 수 있었는데 그 순간만큼은 케빈이 부러웠다.
몇차례 타지마할을 다녀온 동료들로부터 입장하는데 한시간이 걸렸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운이 좋았는지 줄이 짧아 바로 들어갈 수 있었다. 늘 그렇듯이 가방검사와 신체검사(?)를 하는데 다들 안걸린 셀카봉을 케빈 혼자 걸려 다시 나가 보관소에 맡기고 다시 들어왔다. 더 웃긴건 입장하고 보니 사람들이 너도 나도 셀카봉을 들고 돌아다녔다.
케빈의 궁시렁 거림을 뒤로 하고 입장해서 코너를 돌았는데... 헐!?!?!?
사람들이 너도 나도 이 스팟에서 사진을 찍느라 멈춰 서있었고 나또한 그들 사이에 섞여서 셀카봉들이 시야에서 사라질때까지 기다렸다가 사진을 찍고는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오자 눈앞에 파란하늘 아래 타지마할이 눈을 가득 채웠다. 바로 이곳 스팟에 사람들이 가득 모여 다들 이 엄청난 광경과 사진을 찍으려고 신경전(?)을 벌이면서 자리를 잡아가며 사진을 찍었다. 안타깝게 분수에는 물이 말라 조금 삭막해보였지만 눈앞에 광경이 여전히 믿어지지 않았다.
서로 돌아가며 사진을 찍어주고 한걸음 가다 멈추고, 가다 멈추기를 반복하면서 타지마할을 향해 걸어갔다. 중간중간 사람들을 따라 포즈를 따라 우리도 사진을 찍었다.
눈앞에 펼쳐진 타지마할이 실감이 안나서 자꾸만 앞으로 뒤를 번갈아 바라보면서 길을 걸었다.
타지마할 앞까지 가면 매표소에서 나눠준 신발 덮개를 신고 들어가야 한다. 사실 내부라고 해봐야 (사진촬영 금지) 어둑하기도 하고 볼것이 크게 있진 않아서 곰새 줄을 따라 한바퀴 돌아 나온게 전부이고 주변을 크게 돌았다.
날씨가 너무 좋아서 땀이 흐를정도로 더웠다. 한바퀴를 크게 돌고 돌아나왔다. 일찍 도착했던탓에 우리가 들어왔을때보다 사람들이 더 많이 모여있었다. 이미 사진은 찍을만큼 찍었지만 점점 하늘이 푸르러지는만큼 발걸음이 띠기 어려웠다.
나오는 길, 마지막으로 캠에 담고 싶어서 캠을 들고 찍고 있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누군가 나타서 가이드가 필요하냐고 묻는다. 필요없다 말하고 무시하고 계속 찍고 있는데, 내가 들고 있는 것이 캠이냐고 묻는다. 그냥 무시하고 찍고 있으니 계속 캠이냐고 따져 물었다. 왜냐고 물으니 캠은 들고 들어오면 안된다는거다. 내 주변에만 스마트폰으로 동영상을 찍고 있는 사람이 최소 3명은 넘었는데 유독 나를 잡고 물고 늘어지더니 급기야 제복을 입은 사람을 데려와 내가 캠을 들고 있다고 일러바쳤다. 내가 큰 잘못이라도 한 듯이 그 사람은 나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흥분하며 말을 했고 제복입은 사람은 난감한듯이 캠을 들고 들어오면 안된다고 했다. 사방에 스마트폰으로 동영상을 찍는 사람이 많다고 하니까 그래도 캠은 안된다고 한다. 도대체 무슨 기준인지 모르겠고 가이드를 안한다고 하니 해꼬지하는 상황이 너무 어이가 없어서 지금 나갈꺼라고 했더니 제복입은 사람은 귀찮을 뻔했다는 표정으로 지금 나간다면 전혀 문제가 안된다고 했고, 나를 일러바친 사람은 아쉬운 표정을 못내 지었다.
꿉꿉하게 마지막 기억을 장식하고 밖으로 나와 잠깐 화장실을 들렸다 밖으로 나왔는데 모두 사라졌다. 잠깐 기다리면서 두리번 거리는데 톡을 보내도 읽을 생각도 안하고 미리 주차장으로 출발했나 싶어 한참을 걸어가는데 중간에 연락이 닿았다. 근처 기념품샵에서 구경을 하고 있었다고, 이 사람들이...
주차장에 먼저 도착해서 사람들을 기다리다가 강아지를 발견했다. 인도에 와서 길에서 만난 첫번째 멍뭉찡이었데 나른한 햇빛 아래 꼬죄죄하게 늘어져있다 내가 보여주는 관심에 겨우 고개를 들어 눈길을 주고는 곧 다시 누웠다. 다리를 쭉 펴고 옆으로 누워 세상 편하게 (어떨땐 죽었나 싶을 정도로) 누워 잠이 든다.
얼마지나지 않아 사람들이 도착했고 우리는 곧 아그라포트로 출발했다. 타지마할을 보러 아그라에 온김에 근처에 있는 아그라포트에 들르는 것은 거의 정해져있는 코스인데 차로 15분정도 걸렸다. 주차장에 내리니 왠일인지 채찍을 기념품으로 판다. 미니어쳐 사이즈도 아니고 뭔가 특별한 목적이 있어보이지 않고 실제로 말을 이랴이랴할때 쓸것같은 진짜! 채찍이었다. 가격은 만원정도 한것 같은데 도대체 이걸 사서 어디다가 쓰라는거냐...
길 건너편 파란 하늘아래 붉은 사암으로 만든 거대한 성벽의 아그라포트의 첫인상은 꽤나 압도적이었다. 아그라 요새는 1565년 악바르 대제가 수도를 델리에서 아그라로 옮기면서 건축하기 시작해서 그의 손자 샤 자한이 타지마할을 건축하면서 더욱 발전 시킨 곳이다. 그리고 다시 델리로 옮긴 1638년까지 무굴왕조 황제들의 주요 거주지였다.
아이러니 하게도 아그라 성은 타지마할을 축조하면서 너무 많은 재정을 낭비한 샤자한이 말년에 그의 아들인 아우랑제브(타지마할 무덤의 주인공 뭄바즈 타할의 셋째 아들)에 의해 이 곳 무삼만 버즈에 유폐되어 야무나 강 너머의 타지마할을 바라보다 결국 숨을 거둔 후 타지마할에 왕비 옆에 묻혔다.
매표에서 나와 조쉬와 왚은 500루피, 역시나 이곳에서도 케빈은 30루피를 내고 입장했다. 1월이라 더울 때가 아닌데도 한여름 날씨처럼 무더웠다. 타지마할의 봤는데 사실 아그라 포트가 눈에 들어올리 없...
사람들이 걸어 가는 방향을 따라 구경하기 시작했는데 가이드 없이 구경해서 중요한 함의나 역사를 알지 못한채 구경햇지만 눈길 닿는곳 아름답고 신기해서 그것만으로도 즐거웠다. (이는 자한기르 궁전으로 악바르대제가 힘겹게 얻은 아들 자한기르를 위해 지은 건물이다. 아그라 성벽과 같은 붉은 사암으로 건설되어있다.)
성벽과 같은 붉은 사암으로 이루어진 건물을 지나치고 나니 이제는 하얀색 대리석으로 만든 건물들이 이어지기 시작한다. 유려한 곡선과 세밀한 장식이 입을 떡 벌어지게 만든다.
이곳 저곳 기웃거리며 구경을 하다 탁트인 광장으로 나오는 순간 우아! 라는 감탄사가 나온다. 나오는 순간 유서깊은 대학건물과 캔퍼스같은 느낌을 받았다. (디완이암, 샤자한 황제가 1631년~1940년에 건설한 강연장으로 붉은 사암으로 만든 뒤 백색 치장벽토로 장식을 했으며 내외부가 무척 호화롭다.)
사진 속 건물 뒤쪽으로는 더이상 갈 수 없었는데 모두다 다행이라는 표정이었다. 새벽 5시에 출발해서 점심 나절까지 줄창 돌아다녔으니 진이 빠질때도 되었던 것이다. 타지마할과 달리 이번엔 아쉬움없이 아그라포트를 뒤로 하고 주차장에서 시암을 찾았다. 시간은 12시쯤이었고 차안에서 먹은 간식덕에 배는 고프지 않아서 바로 델리로 돌아가기로 했다. 잠시 잠이 들었고 차가 멈춰 눈을 뜨니 휴게소에 멈췄다.
인도의 고속도로 휴게소고 뭐고 차안에 누워있으려다 호기심을 못누르고 차밖으로 나와 주변을 서성이다 식당안으로 들어가 결국 식사를 하고는 다시 델리를 향해 출발했다. 시암은 막히는 길 위에서 공간창출을 해가며 쭉쭉 앞으로 나가아더니 우리를 결국 숙소에 오후 4시도 전에 데려다주었다.
덧) 2018년 1월 1일 타지마할의 홀리한 기운을 받으러 간 에이미가 본 타지마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