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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렉사이다 Apr 29. 2018

델리 오후의 산책, 꾸뜹미나르

인도에서 뭐하니 진짜 시리즈

평소의 주말은 숙소 거실의 소파와 물아일체가 되어 밀린 예능과 영화를 보면서 빈둥대는 것이 나의 일상인데, 요상하게도 여행을 다녀온 직후의 주말은 부지런을 떨게 만든다. 뭔가 여행과 일상 사이의 중간사이의 느낌이다. 게다가 인도는 나에게 집은 아니니까. 파리에 다녀온 3월의 주말 오후에 그리하야 델리로 향했다. 


사는 곳에서 가까우면 얼마나 대단하던지 별로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꾸뜹미나르는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명소로, 무려 유네스코에 등재된 곳이지만 가깝다는 이유로 가장 방문해야하는 우선순위가 가장 낮은 장소였다. 게다가 구글로 찾아본 이미지는 그저 높은 돌로된 기둥이었고, 무슬림이 인도 정복을 기념하여 세운 석탑이라는 지루한 설명뿐이었다.


하지만 그날의 나는 여행의 흥분이 가시지 않았었고, 날씨 또한 일조했다. 처음 경험하는 인도에서의 첫계절이었고, 한국의 가을하늘같은 쨍하니 푸른 하늘이었다. 우버를 타고 간단하게 이동했다. 사실 그 전에 더 부지런을 떨어보려고 전철을 찾았지만 갈아타야하기에 곧 관두었다. 


입장권을 사기 위게 길게 늘어서 있는 인도인들


도착해서 입장권을 사기 위해 길고긴 줄 뒤에 서 있는데 갑자기 경비원이 다가오더니 자기를 따라오라는 손짓을 한다. 제복을 입었기에 의심이 크진 않았지만 "와이? 와이?"라고 보채자 손가락으로 텅비어있던 외국인 전용 창구를 가르켰다. 의심했던 것이 머쓱해서 와이? 라고 보챈것보다 더 큰 목소리로 땡큐라고 몇번이나 반복한 뒤에 창구앞에 섰는데, 역시나 외국인은 500루피. 뭐 알고는 있었지만 항상 기분이 묘하단 말이지. (인도인은 30루피 정도) 표를 사서 입구로 가는데 역시나 외국인 전용 입구가 있다. 입장 하는 긴 줄 대신에 또 금새 지나쳐 안으로 들어갔다.


입장 하고 보니 넓은 유적지에 높다란 기둥하나가 서있다. 네가 바로 그 주인공이렷다.


그렇다. 그저 역광을 받은 기둥-


기둥을 중심으로 사방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인도인들뿐 아니라 많은 서양인들도 많이 볼 수 있었다. 타지마할 이후에 내가 관광지에 왔구나 싶었다. 그래 이 기둥이 나에겐 기둥일 뿐이지만 무려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있는 곳이니까!


쏟아지는 햇살에 빛났던 꾸뜹미나르와 광장


세계문화유산 클라스


하지만 기둥을 따라 안쪽으로 걸어들어가면서 그 실망감은 금새 사라졌다. 길을 따라 기둥을 가까이 볼 수 있었는데 기둥의 색상과 정교하게 새겨진 문자들이 아름다움을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그 감동이 끝나기전에 마주친 광장은 고즈넉하고 평화로웠다. 크지 않았지만 왠지 모를 웅장함과 위대함이 느껴졌다.



이슬람교의 예배당인 모스크의 일부를 이루는 첨탑을 의미하는 "미나르" 중 인도에서 최대 규모이다. 1층은 힌두양식 2,3층은 이슬람양식으로 만들어진 힌두와 이슬람 양식의 융합이 가장 두드러진 독특하고 웅장한 건축물이다. 미나르의 외벽에는 코란의 구절들이 새겨져있고 내부에는 나선형의 379계단이 있다. 노예왕조의 쿠트브 딘 아이바크가 델리 정복기념으로 1193년에 건립을 시작해서 260여년 후에 완공 되었다. 


꿉뜨 미나르를 뒤에 두고 오른편(Qutub Complex), 중간에 유명한 철기둥도 보인다.


여행을 온 것 같았다. 예상했던 것보다 더욱. 여유롭게 한바퀴를 크게 둘러보고는 오른편에 자리잡고 있던 곳으로 걸어올라갔다. 햇살이 가득하게 쏟아지고 청량한 바람이 주변을 살랑거리며 스쳐갔다. 그 간질간질한 느낌을 충분히 즐기면서 구석구석 돌아보고, 사진도 찍으며 돌아다녔다.


통로를 따라 늘어서있던 돌기둥, 의미는 몰라도 이쁘니까(좌), 혼자서도 잘 찍는 셀카(우)


인도를 돌아다니다보면 가끔 겪는 일 중에 하나가 모르는 사람이 와서 사진을 같이 찍자고 하는 것이다. 역시나 이곳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겪은 "사진같이찍어요" 중 가장 역대급이었다랄까.


"진심으로" 나와 사진을 찍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좌), 카쉬미르에서 온 청년들(우)


어슬렁 거리고 걸어다니고 있는데 누군가와서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그래서 사진을 찍었는데 그 자리를 뜰 새도 없이 이번에는 다른 사람이, 또 다른 무리들이 우르르 다가와서 나름의 질서와 차례를 지키며 돌아가며 (나를 배경 삼아) 사진을 찍었다. 악수를 청하는 사람도 잇었고 거짓말 안하고 수십번은 찍혔다. 한차례 폭풍같은 사진 촬영이 끝나고 자리를 뜨는데 이번에는 한그룹의 청년들이 다가왔다. 역시나 돌아가며 사진을 찍었는데 갑자기 나만 찍히는 상황이 억울한 느낌이 들어 포즈를 요청했더니 자연스럽게 대형을 맞춘다. 


경비원이 친절하게 포즈를 알려주며 사진을 찍는 중(좌), 유명한 순도 99% 철기둥(우)


저 철기둥은 무려 4세기에 세워진 순도 99%짜리 7.2m 기둥인데다 지금까지 녹슬지 않아 엄청난 미스테리라고 한다. 그 사이의 맥락을 누군가 설명해주면 좋으련만 사실과 미스테리 사이를 이해할만한 지식이 나에겐 없어서 '그렇구나'하고 넘길 뿐. 단지 저 기둥을 만지면 행운이 온다고 하는데 어느 순간부터 기둥을 보호하기 위해 울타리가 쳐있어 직접 만질 수가 없었다.


출처 : https://www.hindustantimes.com/

그리고 꾸뜹미나르 위에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그것 역시 금지되어있었다. 역시나 뒤에 검색해서 알게된 일이지만, 아주 오래전 탑으로 올라가던 학생들이 인명사고를 당하는 일이 있었고, 그 뒤로 금지되어 지금까지도 입장 금지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한바탕 포토타임이 끝난 후 둘러보다 꿉뜨미나르와 광장이 잘 보이는 돌난간에 걸쳐 앉아 주저 앉았다. 오래 앉아 있을 생각은 아니었는데 어쩐일인지 자리를 뜨기가 싫어서 내 주변으로 사람들이 앉았다가 사라지기가 몇번이나 반복될 만큼 꽤 오랫동안 머물러있었다. 하늘이 바람이 너무나 좋았다. 이런 소박한(?)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인도에서의 생활이 나에게 깨닫게 해준 것 중에 하나가 아닐까 싶다. 거창하게 말하자면 세상에 사소하고 당연한 것은 없다는 것.


여러분 여긴 꼭 와봐야해요. 단, 날씨가 좋을때


한시간쯤 앉아 있는데 시골 함무니와 아줌마들 한무리가 근처로 다가왔다. 나에게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고 내가 앉아있던 주변으로 쭉 앉았고, 나도 개의치 않고 앉아있으니 그 무리의 중간에 자리잡은 상황이 되어버렸다. 표정이 없는 얼굴로 서로 눈이 마주쳤고 할말이 없어 활짝 웃었더니, 활짝 웃는 내가 신기했던지 뭐라고 말을 하는데 영어가 통하진 않고 아는 힌디어라봐야 '잘디잘디(빨리빨리)', '안다르자이헤(안으로들어가주세요)', '바스바스(정지!정지!)'류의 우버용 단어뿐이라 쓸만한 것도 없었다. 서로 말이 안통하는 것이 이렇게 답답할 수가 있을까, 서로 나눠봐야 인사뿐이었을테지만 왠지 모르게 안타까웠다. 그러던 중에 그 무리의 인솔자처럼 보이는 청년이 등장했고 내 주변에 함무니, 아줌마들이 이구동성으로 그 청년에게 뭐라고 요구했는데 눈치를 보아하니, 니가 얘랑 얘기좀 해봐 같은 느낌이었다. 청년은 바로 손사래를 치면서 내 눈을 피했다. 


함무니들 아줌마들 잘가요! 건강하세요!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다가온 포토타임, 한 함무니가 본인이 쓰고 계셨던 주황색 모자하나를 머리에 씌여준 채로 사진을 찍고, 나도 청년에게 폰을 건네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사진을 다 찍고 떠나는 그들과 말한마디 못한게 아쉬워서 손을 흔들었는데, 다들 고맙게도 손을 흔들어서 화답해주었다. 



꾸뜹미나르의 2,3층을 건설한 왕인 일투미시의 무덤(Tomb of Illtutmish) (좌, 가운데), 남은 건물들 사이 (오른쪽)약 27m 높이의 미완성 탑인 알라이 미나르(AlaiMinar)


이제 슬슬 햇빛이 주황색으로 변해간다. 빨간색 건물들이 그 빛을 받아 황금색으로 빛이 난다. 이곳에서 석양을 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이 들었지만 어두워지기전에 떠나야한다는 조바심에 그 길로 일어서서 못둘러본 곳을 향했다.


꾸뜹미나르의 2,3층을 건설한 왕인 일투미시의 무덤(Tomb of Illtutmish) (좌, 가운데), 남은 건물들 사이 (오른쪽)약 27m 높이의 미완성 탑인 알라이 미나르(AlaiMinar)


둘러보다보니 볼 것들이 꽤 있다, 물론 그 당시에는 그 건물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지 못했지만- 


알라웃딘의 무덤과 학교(Allaudin's Tomb and Madrasa)(좌)와 사진찍기에 열중한 사람들(우)


한바퀴를 크게 돌아 다시 광장에 들어서서 뭔가 아쉬워서 다시 한번 근처를 돌아봤다. 해가 진다. 해가 질때까지 머물러야할까 다시 한번 고민하다가 발길을 돌렸다. 이곳에 오기전까지는 내가 이곳에 이렇게 오래 머무를지, 떠나기 아쉬워할지 꿈에도 몰랐다.


해가진다.


돌아나와 입구에서 우버를 기다리고 있는데 한 부녀가 알콩달콩 놀고 있었다. 아부지가 꼬맹이의 과자 하나를 집어 먹었는데 갑작스레 꼬맹이가 세상을 잃은 것처럼 땅바닥에 주저 앉았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나도, 그리고 그 꼬맹이의 아버지도 깔깔 웃으니, 안되겠다 싶었는지 바닥에 드러누웠다. 말한마디, 눈물 한방울 없이 본인의 의사를 표현해다니 비폭력저항의 나라, 역시나 인도답다.


드러누운 (속눈썹이 인형같은) 꼬맹이, 아부지의 반응을 곁눈으로 살피고 있다.


이렇게 오후의 외출은 완벽하게 마무리 되었다. 돌아와 버디 숙소 호스트인 버디언니에게 다녀온 이야기를 하자, 본인도 그곳이 너무 좋으시더라 하면서 마치 그리스 유적지같았다라고 하는데 그 순간, 내가 느낀 그 고즈넉함과 웅장함과 위대함 같은 기분들이 그것이었구나, 묘한 기시감 같은것이 바로 그것이었구나 싶었다. 물론 그리스에는 아직 가보진 않았지만- 




참고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963965&cid=42864&categoryId=50859

https://ko.wikipedia.org/wiki/%EC%BF%A0%ED%8A%B8%EB%B8%8C_%EB%AF%B8%EB%82%98%EB%A5%B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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