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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잘쓰는헤찌 Oct 08. 2021

코로나 시대의 너와 나

코로나이별이 유행하던 2020년 초반의 젊은 청춘 남녀들.

“엘리베이터 타러 내려 가는 길도 무서워. 바이러스 걸린 사람이 만진 버튼을 누르고 싶지 않아.”

L은 우리가 만나지 못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나는 웃었다. 환하게 웃었다. 그의 생각이 확고해 변하지 않을 것이란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하지만 이해가 되지 않았다. 12층에 사는 그는 아침에 출근할 때마다 엘리베이터를 탈 것이고, 주차장에서 내리면 사람들을 만난다. 나를 만나는 엘리베이터 안은 무섭고, 돈을 벌러 가는 엘리베이터 안은 달콤한가? 또한 우리는 둘다 차량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같은 지역에 산다. 그런데 왜,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만나지 못하는 걸까? 차에서 데이트를 하면 되지 않는가? 


L의 마음엔 큰 공룡이 살고 있었다. 그는 코로나바이러스가 중국 내에 퍼져있을 때부터 마음의 공룡을 키우고 있었다. 국내에선 마스크 쓰는 사람이 잘 없었던 시기였는데, 그는 내가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안 만났다. 까짓껏, 마스크야 약국이나 다이소에서 구매하면 되지. 그것이 1월이었다.

2월이 되자 코로나 바이러스는 국내, 하필 우리가 있는 지역에서 번지게 되었다. 

그에게는 좋은 기회였다. 마스크따위로 안 되는 마음의 공룡이 누빌 수 있었다. 

‘그래, 귀하게 자란 막냇아들이니까 부모님 걱정 안 드리고 싶겠지. 보고 싶은 사람이 만나러 가면 된다. 나도 차가 있는 걸.’ 

그에게 전화를 하면 늘 친절하게 잘 받는다. 다정한 그가 있어서 행복하다. 그의 집 근처에는 큰 공원이 있는데, 우리는 그곳에서 카버보드를 타며 놀았다. 그러나 내가 찾아간대도 그는 거부하는 날이 점점 늘어갔다. 전화는 잘만 받는다. 그것이 3월이었다. 

내가 찾아가기만 하면 계속 만날 수 있던 그가 만나는 것 자체는 거부하니 점점 집착하게 되었다. 1시간만 보자. 30분만 보자. 10분만…. 얼굴만…. 


그렇게 그는 잠수를 탔다. 며칠간 내 모든 연락을 이유도 없이 받지 않았다. 혹시 무슨 일이 생겼을까. 우리가 함께 속해있던 동호회 단톡방에 L의 소식을 물었다.  

“ L 오빠 무슨 일 있나요? 며칠 째 저랑 연락이 안 돼요" 

안 읽은 사람은 고작 1명인데,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몇 시간이 지나자 다른 주제로 이야기가 넘어갔다. 다른 사람과도 연락이 안 되는 걸까., 목요일 9시. 평소처럼 우리가 함께 속해있던 동호회 장소로 향했다.

나는 보드 기술을 배워야 할 초보인데, 그 누구도 가르쳐주려 하지 않았다. 왠지 모르는 소외감이 들었다. L은 운영진답게 그 자리에 있었다.  

“왜 연락이 안 됐어?” 

“풋브레이크 배워야 하제?” 

그는 내 물음에 대한 대답은 피한 채 보드기술을 가르쳐준다. 

‘말 못할 사정이 있었나보다. 말할 준비가 되면 말해주겠지, 뭐’

나는 그저 다시 L을 만난 것 자체가 좋았다. 그러나 그는 그날 밤부터 또 연락이 되지 않았다. 그렇게 영원히 헤어졌다. 


그쯤 우리 지역에는 ‘코로나이별’이 유행했다.

모두가 이런 바이러스는 처음이라 너무 무서웠다. 그래서 스스로들 자가격리를 하였다. 밖에는 전국 각지의 엠뷸런스 소리만 울려퍼질 뿐. 거리는 텅텅 비었다. 나 역시 방학기간임에 감사하며 15일 간 자발적 자가격리를 하였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다. 신천지들끼리 감염이 되었지, 내 주변에는 코로나 검사를 받아본 사람조차 없었으며 하루 확진자가 지금처럼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처음 겪는 일이라 모두가 정신이 없었고, 또 정신 없고 싶어하였다. 정신 없는 틈을 타서 ‘코로나 이별'이 유행하였다. 

자신이 나쁜 사람이 되기 싫어서, ‘이별의 시발점'을 상대에게 넘기고 싶어하는 상찌질이들의 굿타이밍이었다. 나도 코로나이별인 줄만 알았다. 


한 달쯤 지났을까. 같은 동호회에 있던 K가 잔뜩 화가 난 채 내게 전화를 걸었다.

“야, 니가 내 시러해서 L한테 인스타고 뭐고 다 차단하라고 했다메? 그럼 내만 싫어하면 되지, 내 여자친구 A는 와 건드는데? 우리가 니한테 뭐 잘못했는데? 카고 니가 맨날 L 멱살 잡고 때리고 데이트 폭력했다메? 걔 4월달에 자기 생일 때도 니랑 있어서 표정 안 좋았다고 카든데, 왜 니만 모르는 척 하노?” 

그리고 우리가 데이트하던 그 공원에서 다른 여자랑 연 날리고 있다는 연락들.

그렇다. 그는 동호회 내 다른 여자 아이가 마음에 들어서 나와 이별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자기가 나쁜 놈이 되기는 싫었다. L은 그 동호회의 운영진이고 체면이 있으니까. 바람핀 놈이 되기 싫었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잠수였고, 그래서 생각한 방법이 ‘니가 감염병에 둔한 거야' 라는 가스라이팅이었다. 그리고 같이 속한 동호회에서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소문을 내어 편을 만들었다. 그곳에서 내 편은 아무도 없었다. 그는 그 동호회를 3년이상 이끌어 온 운영진이었고, 나는 그를 따라 간 신입에 불과했다. 아니, 사람들에게 진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운영진인 그의 라인을 잘 타면 동호회에 오래 머무를 수 있었다. 사람들은 그의 말을 일부러 믿었다. 

코로나 시대의 너와 나. 더러웠고 다신 만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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