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식과 폭식 사이에서의 정신력
방울토마토 한 팩을 다 먹었다.
먹기 전에 찍은 방울토마토 사진을 코치님께 전송했다.
돌아온 그의 답변은 다음과 같다.
“제정신이세요? 이건 다른 선수들에 대한 모욕이에요.
그런 정신 상태로 무대 올라갈 거면 그만두세요.”
그렇다. 보디빌딩 첫 대회 10일 전,
방울토마토 한 팩을 다 먹었다.
방울토마토는 살 안 찐다길래 먹었다.
그래도 500g은 너무했다고 한다.
지나고 보니 맞는 말 같다.
그러나 너무 배가 고팠다.
비 맞은 나무껍질이라도 맘껏 먹어보고 싶었다.
운동량은 점점 많아지고,
바벨의 원판의 크기는 더해진다.
그런데 대회 막바지라고 닭가슴살도 못 먹게 한다.
그러면 풀떼기라도 듬뿍 먹게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나는 그렇게 3년 전까지 보디빌딩 무대에 섰다.
보디빌딩 지도자 자격증을 땄고,
말라비틀어진 뱃가죽으로 크롭티를 입고 다녔다.
선수의 모습을 유지하기 위한 책임감이 크면 클수록
몸은 가벼워졌다.
지금부터 딱 3년 전 10월의 어느 날이었다.
영국 최대의 피트니스 대회가 서울에서 치러졌다.
나는 여유롭게 미소를 지으며 무대에 올랐고,
좋은 성적을 냈으며 그 길로 선수 생활을 접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무리한 이뇨 작용으로 인한 신장 기능 저하.
혀가 a4 용지의 백색처럼 하얬다. 영양실조였다.
그 대회에 부담을 느낀 나는 ‘정신력’을 읊조리며 힘껏 버텼다.
하루에 물 11L 마시기, 사이클 5시간, 샐러드 50g만 섭취.
내게 식욕은 없었다. 살기 위한 몸부림만 남았었다.
이제 자유의 몸이 되었다고 생각하자 양껏 먹을 시간에 신이 났다.
그러나 뭘 먹어도 채워지지 않았다.
미각이 마비된 것처럼 뭘 먹어도 맛이 느껴지지 않았고,
순한 데리야끼 소스조차 자극적으로 느껴져서 왠지 억울했다.
수제 햄버거 세트를 먹었다.
거기에 라면 세트를 밀어 넣었다.
그리고 ‘나 이제 음식 자유야~’ 라며 친구들을 불러서
삼겹살파티에 소맥을 벌컥벌컥 마셨다
. 이 모든 일은 한 끼에 일어났다.
신기하게 배탈이 나진 않았다.
오랜만의 영양분에 흥분한 몸은 섭취한 영양분을 다 빨아먹었다.
나는 눈을 뜨지 못할 정도로 퉁퉁 부었고, 이틀 만에 11kg가 찌기도 했다.
1년이 지나도 배부르단 신호가 잘 오질 않았다.
식욕은 한 장 종이와 같아서, 뭐가 먹고 싶다가도 막상 먹으면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억울함만 남았다.
일반인처럼 살고 싶은 욕심과 그러지 못한 억울함만 있었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나는 일반인이었다.
내겐 다시 못 먹을 이유가 없으며
심지어 몸으로 먹고사는 업무를 하는 것도 아니다.
나의 내면에는 그래도 ‘운동하는 여자’라는 생각이 있었고,
통통해진 사실이 부끄러웠다. 작은 걸 먹어도 죄책감이 시치미처럼 따라왔다.
2021년 현재, 나는 지금 통통하다. 그러나 몸에 집착하진 않는다.
인생 최대의 몸무게다. 엄마의 만삭 때 몸무게보다도 더 나간다.
그래도 나를 예쁘다고 해주는 신랑이 있고,
퇴근 후에 맥주 한잔 기울일 수 있는 지금이 좋다.
운동에 강박을 느끼지 않는다.
몸이 좀 뻐근하면 그때야 운동을 시작한다.
이전의 스포츠센터는 무대에 오르기 위한 목적이거나
내가 지도자로서 수업을 하는 공간이었다면
지금은 정말 운동이 재미있어서 배울 수 있다.
내가 원하던 삶에 가깝게 걸어가고 있다.
또한 음식을 먹으면 맛있다고 느낀다.
물론 아직 좀 많이 먹긴 한다.
나는 먹는 속도가 느린 데다가
혼자 먹는 게 워낙 익숙해서 누가 옆에 있어도 곧잘 혼자 먹었다.
그러나 요즘은 가족이랑 먹는 즐거움도 느끼고,
친구들이랑 먹으니 음식이 더 맛깔 난다.
이 순간이 지나면 다신 못 먹는다는 생각이 거의 없어졌다.
경험에 대한 기억은 얼마든지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음식에 깐깐하게 걱정을 하던 순간,
식사를 보며 행복한 감정이 드는 순간.
그 모든 순간의 모습이 ‘나’다.
각 상황마다 다른 나의 모습이 나왔을 뿐,
앞으로는 나를 좀 더 편안하게 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