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한일 월드컵
“가나 초콜릿 언제쯤 출발해요?”
가나와의 조별리그가 있기 6시간 전,
차분한 어조지만 다소 조급한 한마디가
사무실을 울린다.
2022 피파 카타르 월드컵 H조의 경기가 있는 날,
가나 초콜릿을 씹어먹으며 응원해야 한다는
팀장의 목소리가 꽤 들떠있다.
이곳 사무실은 각자 자기 할 일을 하느라 고개 한번 들지 않는데,
팀장의 목소리에 한둘씩 미어캣처럼
고개를 들어 올린다.
11월에는 바싹 마른 나뭇가지의 잎이
하나둘씩 떨어지고 있다.
뜨거운 마음으로 함성을 토해내기엔
무언가 쓸쓸하고 썰렁하다.
나는 퇴근 시간 2분 전에 초콜릿을 받았다.
초콜릿에는 승리에 대한 설렘이 어려있다.
“감사합니다.”
회사 건물을 빠져나오는 발걸음에
초콜릿을 질겅질겅 씹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월드컵을 봤던 때를 떠올려 본다.
내게 월드컵에 대한 기억은 학창 시절의 소속감과 같다.
학창 시절에는 어딘가 소속되는 것을 좋아하고,
같은 경험을 공유하는 걸 최고로 여겼다.
그렇기에 월드컵 경기는 다 같이 모여서 응원하는 것이
참으로 큰 가치였다.
모두가 기억하는 2002년의 초여름.
나는 열셋, 그리고 질풍노도의 사춘기였다.
그 시기의 나는 아직 어리고 싶은 마음과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의 괴리가 참 혼란스러웠다.
익숙한 학교를 떠나 새로운 터전을 잡아야 하는 현실이
묘하게 두려웠다.
그런 고민을 잊게 해주는 건
다 같이 모여서 외쳐대는
월드컵 응원이었다.
한국의 경기가 있는 날이면
골목에는 붉은색 옷을 입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였다.
여러 고민이 뒤엉킨 열세 살의 일기장은
답답함이 빼곡히 채워졌다.
그러나 경기가 있는 날은 달랐다.
‘다 같이 한국을 응원한다.’는
몽글몽글한 마음이 종이 위에 듬뿍 담겨있었다.
기쁜 마음을 일기장이 대신 들어주고 있었다.
모두가 한마음이었다.
경적을 울려 대도 어느 누구 하나 화내는 이가 없었다.
오히려 내가 아쉬움의 탄식을 내뱉을 때,
아래층이나 위층에서 같이 소리를 지르면 묘한 동질감이 느껴졌다.
그것이 소속감이었던 듯하다.
학교나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는
언제나 ‘Be the reds’의 새빨간 반 팔 티셔츠를
파는 상인들이 있었고, 생필품이었다.
새빨간 무지 티셔츠 안 된다.
가슴팍에 꼭 ‘reds’가 적혀있어야 한다.
그 옷을 입고 있으면 우리는 하나가 된다.
옆 사람이랑 하이파이브는 물론, 포옹도 된다.
눈빛으로,
그리고 온 마음으로 ‘대한민국’이 흘리는 땀방울을 응원한다.
“가나 초콜릿 도착했어요.
모두 씹어먹으면서 응원해요.”
초콜릿을 받아 든 우리는
다시 한번 잃었던 소속감을 느낀다.
각각의 파티션 너머로 숙인 고개를 들어
서로를 쳐다본다.
그리고 각자가 쓰고 있는 마스크 너머로
반가운 미소를 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