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이들 3화
“오늘은 왜 이렇게 하이텐션이에요?”
“응? 내가 언제 하이텐션 아닌 날이 있었어?”
“네, 지난주에는 웃지도 않고 무서웠어요.”
“아, 지난주에는 생리여서 그랬나 보네.”
교실 안이 순식간에 술렁인다.
서로 묘한 눈빛을 교환하고 옅은 미소를 보인다.
남고도 아니고, 여학생들도 있는데 이렇게 술렁인다고?
인식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
성교육전문지도사 자격증이 있음을 먼저 밝히고
이야기를 이어나가려고 한 그때였다.
“그거 별로 안 아플 것 같은데?
피 나올 때만 잠깐 아프잖아요.”
볼멘 목소리가 쏜살같이 날아들었다.
평소 성실하던 이 반의 반장, 준서였다.
교실 안이 순식간에 술렁인다.
아까와는 또 다른 술렁거림이었다.
그 뭉친 소리에는 황당함과 서운함 등의 여러 감정이 담겨있다.
나는 문득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다.
“얘들아, 혹시 생리대 소, 중, 대가
뭐를 기준으로 하는지 아는 사람?”
이내 아이들의 눈이 반짝였다.
초점 잃은 눈으로 교과서를 멍하니 바라보던 아이들도
재빠르게 고개를 들었다.
그 안에서 여전히 아이들은 서로 묘한 눈빛을 교환하고,
미소를 히죽거린다.
이때, 준서 옆에 있던 인성이가 분위기를 몰아
목소리를 쏘아낸다.
“생리휴가 그거 한국에만 있는 거예요.
다른 나라는 없어요.
제가 출처 찾아오면 인정해주실 거예요?”
주변 여학생들의 기분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다.
이곳은 남녀가 같이 생활하는 공간이다.
그러나 서로가 서로에게 반대가 되어 으르렁대기 바쁘다.
여학생들이 웅성거리기만 할 뿐, 별말을 하지 않는다.
침묵이 긍정은 아닐 텐데 말이다.
그들은 더러운 똥을 피하는 듯
하나같이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이때, 인성이가 한 마디를 더 거든다.
“생리는 한 달에 한 번만 하면 되지만
남자들은 24시간 군대에 있어야 하잖아.”
인성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지현이가 소리를 꽥 지른다.
“생리도 24시간 피 나온다고!”
지현이는 평소 조용하고 자기 할 일 잘하는 아이다.
이런 지현이가 울분에 찬 목소리를 내뱉자
인성이가 짐짓 놀란 표정을 보인다.
아이들의 이런 반응은 SNS에서 무분별하게 보이는 정보를
아이들이 받아들인 탓일 터이다.
주변에 집중하기보다 네모난
스마트폰의 이야기를 믿었을 것이다.
SNS는 관심을 받기 위해서 더욱 자극적으로,
그리고 더욱 갈등을 부추기는 메시지를 담았을 것이다.
나는 극심한 다이어트를 한 이후에
생체 시계가 뒤바뀌었다.
그리고 월경통을 크게 앓았다.
한 번에 진통제 8알을 30분마다 먹지 않으면
서 있을 수도 없었다.
뾰족한 칼끝은 척추에 닿아 긁히는 것만 같았고,
차가운 두통과 저체온의 몸살은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러나 아픔을 말할 순 없었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집에서 시간이 가기만 기다렸다.
어느 하루는 정기봉사가 있는 날이었다.
아프단 이유로 빠질까 생각도 했지만,
하필 그날 멤버 중에서 여자는 나 혼자였다.
밖에서 세차할 남자 인원이 필요하고,
실내에서 재봉틀을 다룰 여성 봉사자가 필요하단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어차피 재봉틀을 다룰 줄 모르니
내가 했던 봉사는 성별 무관하게
누구나 할 수 있었던 일이었다.
그러나 여성 봉사자가 필요하단 말에
일정을 취소하지 않았다.
그리고 괜찮은 척 주어진 일을 마쳤다.
봉사가 끝나고,
우리는 근처 떡볶이 가게에 앉았다.
자리에 앉는 그 순간,
갑자기 극심한 오한이 들더니 몸이 오들오들 떨렸고,
창백해진 나의 안색에 주변에선
패딩 여러 개를 벗어 내게 덮어주었다.
당시는 3월 초의 그다지 춥지 않은 날씨였다.
그러나 그냥 몸이 안 좋다고만 말하고,
생리 중이었다고는 말하지 못했다.
남자들만 있는 곳에서 내 상태를 공감받진 못할 것이라
단정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왠지 생리라는 단어를 가족 외의 사람에게
말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나고 계속 의문이 들었다.
우리는 월경을 왜 숨겨야 할까.
내가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니고,
수치심을 주는 단어는 더욱 아니다.
성교육 자격증까지 있는 내가 더
사명감을 가져야 하는 게 아닌가.
여기까지 생각이 이르자, 용기가 필요했다.
그리고 다음 봉사에서는 용기를 내었다.
“그날 챙겨줘서 고마웠어.
요즘 생리통이 심하더라고.”
“아, 그래? 미리 말하지.
그럼 쉴 수 있게 했을 텐데.”
걱
정했던 것보다 분위기가 전혀 변하지 않았다.
뭘 그런 걸 얘기하냐고 눈치 주는 사람도 없었고,
오히려 나의 아픔에 집중해주었다.
그렇다.
나의 몸 상태인 월경을 굳이 숨길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도 술렁거림을 받아들이고,
반에 들어가서 말한다.
“생리를 부끄럽게 만들거나 야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이상한 사람이야.
그런 찐따랑 어울리지 마.
정상인은 학교 다니고 직장 다니느라
남녀갈등 글 쓸 시간 없어.
어울리지 마.”
술렁거린다는 것은 목소리를 낸다는 것이고,
이는 곧 인식의 변화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