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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잘쓰는헤찌 Oct 06. 2022

사랑의 흑역사

요즘 아이들 2화

#1

전 씨는 지난 2019년 11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A씨에게 불법 촬영물을 보내고, 

350여 차례에 걸쳐 문자나 메신저로 연락하는 등 

스토킹한 혐의를 받는다.

(중략)

검찰은 지난 8월 18일 결심공판에서 전 씨에게 징역 9년을 구형했다.

당초 이 사건의 선고는 지난 15일로 예정됐으나 

전 씨는 하루 전날인 14일 밤 9시쯤 신당역 여자 화장실에서 

역무원 B씨를 상대로 흉기를 휘둘러 숨지게 했다.


#2

“너는 같은 일을 하고 있으면 이해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


“넌 화장실 갈 시간도 없어?”


“야, 밥 먹을 시간도 없어. 수업계 일이라는 게 그래. 

내가 해야 할 일이 있는데, 옆에서 핸드폰 보고 있어?”


연인이라면 적어도 3시간에 한 번은 연락을 줘야 한다. 

화장실이라도 갈 것이고, 점심은 먹을 테니까. 

남자는 관심이 있는 여자라면 

전쟁터에서도 연락을 하기 때문이다.


#3

“여보, 요즘 맞춤법 안 틀린다?”

“그거 우리가 최근에 카톡 안 해서 그래.”

“그래?”

손에 쥐고 있는 휴대전화의 전원을 눌러서 화면을 켠다. 

그리고는 카톡에 들어가서 남편과의 대화 내용을 본다. 

[여보 나 이제 밥 먹어요]

[오키]


#4

‘사랑’이라는 주제를 받고, 많은 생각이 스쳤다. 

나에게 ‘사랑’이란 나이에 따라 참 다양하게 변했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 ‘사랑’을 느낀 상대는 여고 시절 한 ‘총각 선생님’이었다. 

우연히 맺어진 사적인 만남은 

그 선생님과 내가 특별한 관계라는 착각을 안겨주었다. 

별 건 아니었다. 

학교에 갇힌 나를 선생님이 구해주셨다거나 

술주정하시는 선생님을 우연히 만났다거나 그런 거였다. 

어쩌면 답답한 학교생활의 탈출구로 여겼을지도 모르겠다.

내 꿈은 ‘박 선생님 동료 교사’였다. 

모두가 아는 꿈이었다. 

왜냐하면 학생부인 그 선생님을 따라서 

일찍 등교하기도 했고, 

그 선생님의 차를 보고 출퇴근 시각을 추측하기도 했다. 

문자도 꽤 주고받았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삐뚤어진 사랑이었구나’를 

알게 된 건 그 어느 날 저녁이었다.

그날은 매우 추운 1월의 마지막 날이었다. 

사방에는 블랙홀 같은 어둠이 낮게 깔린 저녁이었다.

그날의 나는 도서관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있었다. 

도서관으로 가는 버스의 노선에는 학교가 있었고, 

학교는 방학이었다. 

그러나 학교의 교무실 즈음 되는 위치에서 

옅은 불빛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 

이 시간에 불빛이 왜 있을까. 

나는 ‘하차 벨’을 눌러서 내렸다. 

직감적으로 그곳으로 걸어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교무실은 후덥지근한 난방 열기를 토해내고 있었다. 

그리고 정중앙에는 그 선생님이 수업 준비를 하고 있었다. 

너무나 반가운 우연이었다.

그러나 내가 뒤를 밟았다고 생각하셨을까.

선생님께서는 나를 앉혀두고 눈을 맞추며 생각을 차근히 말씀하셨다.


“나 이 학교 오래 다니고 싶어. 

좋아해 주는 건 고맙지만 과하진 않았으면 좋겠어.”


그날이 기점이었다. 

그 후로 나는 선생님을 더 이상 찾지 않았다. 

내가 했던 행동들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13년이 더 지나서 나는 실제로 그 선생님의 동료 교사가 되었다. 


13년 전의 내가 장담했던 것처럼, 

그와 한 파티션 안에서 일하는 동료 교사가 되었다. 

반가워하는 선생님과는 다르게 나는 동료로도 다가갈 수 없었다. 

내가 잘못한 게 많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그 선생님을 따라다닌 것은 스토킹이었다. 

나이가 어려서 봐주셨을 뿐, 집착이었고 사랑이 아니었다.


그 때 즈음, 나는 사내 연애를 하고 있었다. 

두 살 연하의 수학과였다. 

나이보다 어른스러운 모습이 참 멋있어 보였고, 

매일 연락도 잘하던 사람이었다. 

휴게실에서 몰래 눈빛을 교환하는 일은 참 짜릿했다. 

그러나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곳으로 발령을 받았다. 

서로의 직장은 20분 거리에 위치했고, 집은 여전히 6분 거리였다. 

그러나 그는 눈에 띄게 연락이 줄어들었고, 

퇴근하고도 만날 수가 없었다. 

그렇게 그와 만남은 끝났다.


그 뒤로 몇 년이 더 지나 나는 결혼을 하여 지금의 남편을 만났고, 

그 친구가 맡았던 수업계 일을 맡게 되었다. 

나의 업무는 출근해서 가방을 내려놓음과 동시에 시작된다. 

갑작스러운 병가나 출장이 잡힌 선생님의 시간표를 바꿔놓아야 한다. 

절대 공백이 생기면 안 된다. 

그리고 음악실이나 미술실 등의 특별실이 겹쳐서도 안 된다. 

수업 교체를 부탁드릴 선생님이 자리를 비웠으면 

학교 전체를 찾아다니며 부탁을 해야 한다. 

절대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된다. 

잠깐 실수하면 그 반 30명의 수업 자체가 펑크 나버린다.

나 역시 일하다가 수업을 들어가고, 

또 수업 교체를 하다가 내 수업 들어간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퇴근 시간이 지났다. 

내가 언제 점심을 먹었는지 무슨 수업을 한 지도 모른다. 


그저 기계처럼, 

그리고 매 순간 날아온 일들을 집중하여 쳐낼 뿐이다.

핸드폰은 어디에 둔 지도 모르겠고, 

차 타고 퇴근하다가 핸드폰이 생각나서 돌아오기도 부지기수다.

그러던 어느 날, 국어 전공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가 말했다.

“여보, 요즘 맞춤법 안 틀린다?”

“그거 우리가 최근에 카톡 안 해서 그래.”

“그래?”

손에 쥐고 있는 휴대전화의 전원을 눌러서 화면을 켠다. 

그리고는 카톡에 들어가서 남편과의 대화 내용을 본다. 

[여보 나 이제 밥 먹어요]

[오키]

-끝-


느닷없이 찾아온 사랑은 

내가 느낄 수 있는 감정의 스펙트럼을 확장해준다. 

어린 시절에 부모와 맺은 관계에 따라서 

사랑에 대한 애착이 드러나기도 한다. 

불안 또는 회피형으로 나타난다. 

내 입장에서 내가 하고 싶은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진정 상대를 위하는 사랑을 하려면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상대의 입장에 서서 말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사랑의 형태가 참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그걸 무엇이라 정의하기는 아직 어렵다. 

성숙한 사랑을 할 수 있도록 매번 배우고, 

상대의 눈에서 바라보는 연습을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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