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이들 1화
“니 아들 장은준”
“응~ 너는 장은준 여친 김정화”
맥락 없는 말이 오고 간다.
이렇게 4교시를 맞이하는 아이들은
언제나 상기되어 있다.
시간대마다 아이들의 기운이 조금씩 다른데,
4교시는 유독 다르다.
‘조금만 버티면 밥 먹으러 간다’는 기쁨 때문이었을까.
아이들의 활기찬 기운이 온 건물을 진동시킨다.
“니 아들 장은준”
지금은 소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의 성격을
파악하는 모둠활동인데,
이따금 불협화음이 들린다.
장난스레 말을 주고받는 두 아이 가운데서
모둠원들은 묵묵히 제 할 일을 한다.
마치 원래 그랬던 환경인 것처럼 서로에게 무관심하다.
심지어 장난치는 이 두 아이는 같은 모둠도 아니다.
한 아이의 입에서 ‘장은준’이란 이름이 나올 때마다
다른 아이는 서로 기분 나쁜 표정을 지으며
쫓아가 때린다.
이윽고 ‘장은준’의 이름을 넣은 또 다른 놀림거리로
집요하게 문장을 만들어 낸다.
“조용히 해라.”
나는 웬만해선 아이들 장난과 싸움에 끼어들지 않는다.
내 딴엔 심각해 보여서 개입을 하면 아이들은
‘장난인데 왜 일을 크게 벌리냐’고 내게 핀잔을 준다.
그 묘한 관계들 속에서
단지 철없는 아이들의 장난인지,
아니면 거절하는 법을 모르는 한 아이의 억눌린 희생인 건지
판단이 쉽지 않다.
아이들 흐름을 모르는 꼰대가 몇 번 되고 나니
무엇이 아이들을 위한 것인지
혼란이 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물리적 폭력이 오가지 않않는다면
내가 먼저 잘 끼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엔 왠지 느낌이 달랐다.
두 아이 사이에 앉아 있는 은준이는
묵묵히 활동지를 작성해갔다.
표정 변화 하나 없이 자기 할 일을 했다.
내가 보는 은준이는 썩 괜찮은 아이였다.
늘 밝은 기운이 가득했고,
자신의 엄마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다 지지해준다면서
기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모든 수업 시간에 즐겁게 임하는 건 물론이었다.
겉으로 보기에 은준이는
무례한 두 아이를 무시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찮은 사람을 보듯이 바라보다가
중지를 들어 올려 두 아이에게 날렸다.
그리고 자기 할 일을 했다.
그래도 두 아이는 그칠 줄 몰랐다.
미동도 없는 은준이의 표정은 오히려 위태로워 보였다.
나는 조용히 은준이에게 가서 나지막히 소근거렸다.
“기분 나쁘면 선생님한테 말해”
아이는 그 순간 잡고 있던 감정의 끈을 놓았다.
든든한 자기 편이 있다는 것에 안도감이 퍼졌을까.
굵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연신 닦기 바빴다.
나는 그 눈물을 신호탄으로 받아들였다.
내가 개입해도 좋다는 신호였다.
이제는 내가 억눌러 왔던 교육을 할 차례였다.
“야 니들 입에서 은준이 이름 언급 하지마.
한 번만 더 은준이 이름 언급하면 가만히 안 둘거야.”
“저래 울지 몰랐어요”
놀린 상대방의 눈물과 단호한 선생님의 말투에
당황한 두 아이 중 한 명이 대답한다.
“아니. 싫다면 그냥 하지마.
우리 비겁하게 살진 말자.
싫다는 사람 두고 계속 놀리는 건
너무 비겁하잖아.
우리 한번 태어난 인생,
비겁하게는 살지 말자.
너네 앞으로 은준이랑 친하게 지내지마.
근처에 오지마.”
우리 어릴 때는 싸우지 말고
친하게 지내라고 했지만 이제는 아니다.
나를 괴롭게 하는 상대를
계속 마주한다는 것은,
고통이다.
아직 거절 표현이나 감정표현을 잘하지 못하는 아이들에게는
더더욱 고통이다.
피해자는 지금처럼 자신의 생활을 유지해야 한다.
그러므로 가해자의 행동에 제재를 가하는 것이 맞다.
세상에 왕따를 당하는 게 마땅한 사람은 없고,
모든 아이들은 귀하며 사랑받을 가치가 있다.
아무것을 하지 않아도 존재만으로도
사랑을 주고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이 가치를 훼손하는 사람은 비겁하다고 정의한다.
아이들을 상대로 하는 괴롭힘이 정말 비열한데,
이건 아이들끼리의 괴롭힘도 마찬가지다.
나는 은준이가 조만간 이렇게 말할 수 있길 바란다.
“응~ 나는 우리 엄마 아들~ 우리 비겁하게 살진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