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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잘쓰는헤찌 Sep 01. 2022

게스트 하우스

나에게 영감을 주는 도시 5화

[여러분 오랫동안 기다리셨습니다.

저희 비행기는 ㅇㅇ공항을 출발하여 

여러분들이 원하시는 여행지로 떠나는

 **에어 4372 비행기입니다. 

저희 비행기 잠시 후 이륙하겠습니다.

즐거운 여행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차분하고 낮은 목소리가 평화를 불러온다.

 스피커로 번지는 기장님의 안내를 듣고는 휴대폰을 끈다. 

모든 여행의 시작은 ‘전원 끄기’부터 시작이다. 

자, 벗어나자. 

일상의 번잡한 소식에서 벗어나 그곳으로 떠나자.

 자유를 향해.


가인이는 어느 작은 도시의 동사무소 직원이다.

 부모님은 가인이가 공무원이 되길 바라셨고, 

안정적인 직업에 편안하게 살기를 원하셨다. 

가인이는 그렇게 살았다. 그녀는 착한 아이니까. 

시키는 대로 잘 따라 하는 아이니까.


어른들이 만져주는 손길대로 자라던 혹이

 툭-하고 터지던 어느 날, 

가인이는 터진 혹의 핏조각을 쓸어버렸다.

 가볍게 든 오른 다리의 뒷발질로 쓸어버렸다.

 그리고 뒤도 보지 않고, 앞으로 묵묵히 걸어 나갔다. 


‘나’를 찾아서, 

그리고 지나 가버린 부모님과의 관계 회복을 위해서. 


잠깐의 시간이 흐르고 나니 비행기는 이윽고 착륙한다. 

푸른 바닷바람이 가인이의 머리칼을 흩날려준다. 



떠났다. 

벗어났다. 

이곳으로.

 내가.


가인이는 맞은 편에 있는 버스정류장으로 가기 위해 발걸음을 옮긴다. 


끼익- 끼익- 

손에 쥔 캐리어의 플라스틱 바퀴가 힘겹게 돌고 있다. 

버스정류장에서 게스트하우스까지는 45분. 

차를 타고 깊이, 더 안쪽으로 들어갈 것이다. 

아무도 찾지 않는 조그마한 숙소로. 

조용한 사연을 안고 온 그들이 모인 곳으로.

그녀는 제주 동쪽의 에메랄드 바다가 펼쳐진 월정리에 도착하였다. 

드넓은 월정리 해변과는 대조적으로 마을의 집들은 다소 작다. 

돌담 안에 있는 집들이 마주 앉아 소곤소곤한다. 

알록달록 여러 채색이 담긴 이 동네는 과하지 않다. 

그저 차분한 분위기에 동화되어 있다. 

이거다. 가인이가 원했던 생동감 있지만 조용한 그 동네. 

그녀는 휴대폰을 꺼낸다. 

그리고 예약한 게스트하우스 앞에서 전화를 건다.


“저....... 도착을 했는데요. 어디로 가면 될까요?”

“어머, 언니~ 그렇게 입으면 다쳐요!”


활짝 열린 대문으로 한 여자가 뛰어온다. 


화려한 점프 수트를 입은 그녀의 몸짓이 

나풀거린다.


“네?”

“언니, 그렇게 길고 치렁한 옷을 입으면

나뭇가지들에 걸려서 다친다고요!”

그녀의 눈망울이 반짝인다.


“아, 그래요? 짐은 어디에 풀면 될까요?”

“저기가 여자 방이니까 오른쪽 아무 데나 풀어요. 

사장님은 지금 장 보러 가셨어요.”


가인이를 반겨 준 여자는 손님이다. 

사장님의 지인도 아니고, 

그냥 손님이다. 


가벼운 몸짓을 보여주는 이분의 이름은 박민주.

 서울 모 대학의 연극영화과 재학생이자 연극배우다.

 민주는 같은 극단의 여자 동료와 같이 여행을 왔다. 

순간, 가인이의 직장 생활이 떠올랐다. 

“공무원이 딱 붙는 옷을 입고 다니는 건 좀 아니지 않나?”

등산길에 레깅스를 입고 갔다가 만난 동료가 전한 말이었다.

 나이 드신 분도 아니고 가인이보다 겨우 6살 많은 30대 동료였다. 

그들은 서로가 감시자가 되어 서로를 지켜보았다. 

직장 안에서도, 직장 밖에서도 동네의 얼굴이 되어야 했다. 

동네에서 함부로 사생활이 노출되어서는 안 됐다.


 별 의미 없이 한 행동은 수십 개의 눈이 생각한 오해들로 

되돌아왔다. 


동네는 안전한 곳이 아니었다. 

가장 편해야 할 동네에서도 몸의 긴장을 풀 수 없었다.

 아니, 풀면 안 됐다.

“언니는 어디로 놀러 갈 거예요? 아니다. 

우리가 안내할게요! 우리 차 타고 다니자!”

민주는 가인이 대답하기도 전에 가인의 손을 이끌고

 게스트하우스 이곳 저곳을 구경시켰다.

 그리고 이내 차에 태우더니 

대뜸 해수욕장에 데려가는 게 아니겠는가. 

가인은 처음 보는 이들이 참 편했다. 

처음 보는 이들과 차 안에서 목청껏 노래도 부르고 

서로 사진을 찍어주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이들의 인생 이야기를 들으며 가인의 이야기도 할 수 있었고,

 그들과 머물 수 있다면 제주 어디를 다녀도 상관없었다.


여행의 마지막 날,

 공항 근처의 숙소로 예약했던 가인은 가지 않았다. 

이미 체크아웃 시간이 훨씬 지났음에도 나가지 않았다. 

그리고 게스트하우스 사람들은 누구도 잠자리에 들지 않았다. 

바비큐와 함께 한 그날의 밤은 서로의 인생이 어우러져 

밤새 기타를 치고 놀았다. 

“언니 서울 한번 놀러 와요! 우리 집에서 같이 자자!”

민주가 자신의 핸드폰을 내밀며 전화번호를 받아 간다. 

한 달 뒤 놀러 간 서울역은 민주와 그의 동료가 데리러 왔고,

 민주의 집에 머물며 강아지 산책도 시키고 연극도 보러 갔다.

 혼자 들린 제주에서의 기억은 가인의 아지트가 되었고, 

가인이 역시 매년 제주를 가며 터주대감 역할을 했다.

일상으로 돌아온 가인은 다시 잘 살아갔다.


 자신을 옥죄던 조직문화에서 즐거움을 찾기 시작했다. 

가인을 수군대며 뒷담화하던 사람들 사이에도 가인의 편은 있었고,

 가인을 응원하는 사람은 어디든 있었다.

 그저 나를 해치는 사람과 잘 지내고 싶은 마음에 집중했을 뿐이다. 

가인은 발로 대충 쓸어버린 핏조각을 물로 씻어버렸다.

 그저 깨끗하게 보내주고 나는 현재에 집중하리라.

제주는 다양한 삶을 사는 사람이 모이는 공간이다. 

내가 평소에 만나보지 못한 직업군, 

혹은 여러 모양의 꿈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기타 치고 

술을 치켜들며 해맑게 웃는다. 

그들의 웃음에는 가식도 없고 몸의 긴장도 없으며 그 순간을 즐긴다. 

그들은 눈은 연일 반달 모양을 하며 점점 더 행복에 빠져든다.

자유가 점철된 이 도시는 다양한 사람들이 삶을 그릴 것이다. 

그리고 내일도 이 게스트하우스에는 또 다른 일행이 올 것이다.

 그때 가인은 뛰쳐나가 이렇게 외칠 것이다.


“어머, 언니~ 그렇게 입으면 다쳐요! 

나뭇가지들에 걸려서 다친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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