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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잘쓰는헤찌 Dec 19. 2022

MBTI, 알게 뭐야.

ESTJ X INFP . 절대적인 건 없다.

MBTI, 알게 뭐야.


“남편이 살림을 많이 도와주시나 봐요?”

설렌 표정의 지점장이 

나를 쳐다본다. 


오랜만에 이야기 통하는 남자 고객을 

만난 그의 표정은 설렘이 만연하다.


나는 예상치 못한 호출에 깜짝 놀라 

고개를 번쩍 든다. 

멀찌감치 떨어져서 핸드폰을 바라보던 나는 

눈빛을 움직인다.

그리고 이내 대답한다.


“제가 살림 안 해요.”     


그들은 마치 축구나 군대 얘기를 만난 것처럼 

드럼 세탁기 내부 통의 기울기에 대하여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나는 감각이 예민한 편이라 

작은 차이 하나도 꼼꼼하게 탐색한다.

남편은 기준이 엄격한 편이라 

작은 차이 하나도 꼼꼼하게 확인한다.     


나는 마음이 내키지 않은 내용을 두고 

토론을 이어가는 편이고, 

남편은 마음이 확신하는 내용을 놓고 

토론을 계속한다.     


우리의 가치관은 비슷하고, 

우리의 행동 패턴은 같다.     


그러나 나는 마음이 바뀌는 과정이 중요하고, 

남편은 마음이 바뀐 결과가 중요하다.     


이쯤 되면 우리의 mbti를 예측한 사람도 있겠다.


그렇다. 

나는 INFP고, 남편은 ESTJ다.      


나는 내향적이고 상상을 좋아하며 

감정적으로 환경을 인식하여 행동한다.

남편은 외향적이고 경험에 따라 판단하며 

사고적으로 계획을 통해 행동한다.


MBTI 상 정확하게 대칭을 이루고, 

완벽하게 상호 보완이 된다.     


“집에 가면 저녁은 뭐 해 먹어?”

점심시간이 되면 삼삼오오 동료들과 모여서 

시덥잖은 이야기들을 나눈다. 

사실은 별로 궁금하지도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라도 해야 업무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으므로 

점심마다 꼭 거치는 의식이다.     


“엄마가 주신 반찬으로 먹거나 

남편이 해주는 밥 먹어요.”

그들은 동그란 토끼 눈을 하고 

나를 쳐다본다.

으레 여자가 밥을 차리고 먹이는 게 

역할이라 생각했으리라.     


그러면 내가 이내 덧붙인다.

“저는 결혼 전까지 부모님과 살았고, 

남편은 자취를 오래 해서 더 잘해요.”


그중 일부는 굳이 자취 중인 동료를 짚어서 

‘밥을 해 먹냐?’고 물어보기도 한다.

뭐, 남편은 자취를 안 했어도 

계획 잡힌 삶을 좋아하므로 

집안 살림을 잘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굳이 말하지 않는다. 

그들이 궁금한 건 우리 집 저녁 사정이 아니다. 


나는 그냥, 

내가 부엌에 안 들어가는 것이 도와주는 것이라며 

나를 웃음거리로 소비한다.     


갓생 살기가 유행하면서 미라클 모닝, 

계획적인 사람이 각광 받는다.      


나는 계획 설정에 서투르고 

변하는 상황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즐긴다.

남편은 시간대별로 계획을 잘 세우고, 

변하는 상황이 오면 혼란스러워한다.


반면에 나는 계획대로 움직이라고 하면 

숨통이 조이는 것 같다.

그러나 남편은 계획 없이 움직이라고 하면 

불안해한다.     


우리는 같이 경험을 쌓는 것을 즐긴다.

나는 기존에 없는 경험을 창의적으로 

시도하는 것을 좋아하고, 

남편은 이미 해본 경험을 익숙하게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우리는 같이 기록하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매 순간을 마구 풀어내는 기록을 좋아하고, 

남편은 정돈하고 분류된 기록을 좋아한다.     


이러한 우리는 서로가 완벽하게 보완되어 

시너지를 낸다고 좋아했다.

그래서 서로 잘하는 것을 하자고 협의를 봤다.     


집안 살림과 전자제품 구입은 남편이 한다. 

나는 안방에 들어가 게임을 한다.

생활용품 구입과 장보기는 내가 한다. 

남편은 작은 방에 들어가 게임을 한다.      


맛깔나는 술안주는 남편이 만든다. 

그리고 신선한 건강식품은 내가 만든다.


각자 잘하는 거 하면 되지, 알게 뭐야.     


나와 mbti의 첫 만남은 

2000년대의 끝자락이었다.

교육심리학 시간에는 늘 그렇듯이 

각종 검사들을 했고, 

결과가 나오면 교수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너는 교직 사회에 있기 힘들겠다.”

“자유롭고 창의적이어야 되는데, 

관료제 사회에 적응하기 힘들겠어.”          


그러거나 말거나 알게 뭐야. 

입학 동기 15명 중 3명만 아직 교직에 있는데 

그중 하나가 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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