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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잘쓰는헤찌 Dec 20. 2022

사람도 충전을 해 줘야 해

배터리

우리는 월화수목금 매일 출근하면서 현생을 살고 있었다. 

출근과 퇴근 외에 다른 것은 생각할 수도 없었고, 

결혼해서 행복해하는 사람들은 그저 남의 일이었다. 


대한민국에서 크게 부모님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누구나 그랬듯이 

그 애와 나도 아등바등했다. 

옛날 말로는 자수성가라고 할 수도 있겠다.


내 아버지는 매일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며 

신문을 배달했다. 

그 애의 아버지는 매일 인력센터에 가서 

건설물을 투닥거리며 하루를 살았다. 

내 어머니는 아픈 다리를 질질 끌면서 

무거운 솥단지를 들어 올렸다. 

그리곤 남은 음식들을 몰래 싸서 새끼들을 먹였다. 

그 애 어머니는 식당에서 음식도 팔고 

시장에서 나물도 팔며 

가끔은 술과 웃음도 팔았다.


우리 집은 네 가족이 단칸방 전셋집에서 

쫓겨날까 전전긍긍했고, 

그 애는 낡은 컨테이너에서 

다섯 식구가 살았다.

 그리고 나이 든 조부모가 추위에 돌아가실까 

노심초사했다.


우리는 서로의 아픈 사랑이 끝난 후에 처음 만났다. 

나의 사랑은 나를 가스 라이팅하며 

정신병자로 만드는 사람에게 

매달리다가 끝이 났고,

 그 애의 사랑은 자식 둘 딸린 유부녀에게 

애정을 갈구하다가 끝이 났다.


아픈 사랑을 하고 난 우리에겐 

연애는 감히 넘볼 수 없는 벽이었다. 

마음이 가난한 이들은 사랑 주는 법도 몰랐고, 

설사 알더라도 그 마음이 작았다.


우연히 회사 동료의 결혼식에 갔다가 그 애를 만났다. 

그 애가 입은 정장 셔츠는 

어디 구석 행거에서 오래 방치된 듯이

 누런 얼룩이 피어있었다. 

서로 기 싸움을 하는지 힐끗힐끗 쳐다보다가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우리 같이 놀래요?


나는 집에서 언니의 충전기와 보조배터리를 

훔쳐서 관사로 왔고,

매일 그 애와 카톡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나는 어느 시골 짝의 계약직 공무원이 되어 

관사에서 살았고, 

그 애는 어느 도시에서 보험을 팔았다. 


그 애는 가끔 내가 사는 관사로 놀러 왔다. 

나에게 보험을 팔기도 하고, 

계장님께 보험을 권유하기도 했다. 

동료들은 머뭇거리다가 내게 말했다.


그 애 만나지마.


그 말을 듣고, 

나는 살면서 보험은 어차피 있어야 하는데

 그 애에게 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그 애를 도와준 것도 없고, 

나보다는 보험을 더 잘 알테니 이왕이면 

그 애한테 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애는 가끔 나에게 편지를 썼다. 

나를 보러오는 기차에서, 

그리고 고객을 기다리면서 썼다. 

그 애는 글 쓰는 걸 참 좋아했다. 


나는 가끔 그 애가 화장실에 가거나 

담배를 피러 밖에 나가면 

그 애의 가방을 뒤졌다. 

그 애는 항상 일기장을 가지고 다녔다. 

일기는 몇 줄 되지 않았다.


6월 2일 

엄마가 아빠에게 맞았다. 

엄마는 화가 나서 나를 때렸다.

8월 14일 

동생 생일이라서 아빠가 케이크를 사 왔다. 

나는 내 생일에 다른 친구를 

축하해주러 갔었다.

 

어느 날은 관사에서만 놀기 지겨워서 

인근 도시의 모텔로 불렀다. 

그 애는 저녁 7시에 도착한다고 말했고, 

나는 알겠다고 했다.

나는 훔친 충전기와 보조배터리를 놔두고 나왔다. 

그리고 내 핸드폰의 배터리는 꺼졌다.

7시에 그 애는 모텔에 없었다. 

근처를 하염없이 돌아다녀도 없었다. 

지나가는 사람의 핸드폰을 빌려서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았다. 

그 애는 모르는 번호는 받지 않았다.

한참을 찾다가 관사로 돌아왔다. 

그 애는 내 방 한가운데 앉아서 

잔뜩 화가 나 있었다.

그 애가 물었다. 

배터리를 꺼놓고 '어디 다녀왔냐'고 했다.

내가 맨날 나쁜 일만 생기니까 다들 날 피하더라고.

 열심히 해도 나쁜 게 배어 있나 봐. 

전원이 꺼졌다는 안내 메시지를 들으니 

그 목소리가 나에게 하는 소리 같더라.


나는 그 애의 몸을 끌어안았다. 

그 애의 깡마른 몸을 안고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에 우리는 헤어졌다.


한번 보자, 

매번 말했지만 다시 만나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그 애의 카톡 메시지가 그쳤고,

 나는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우리는 서른이 되었다. 

그 애 어머니는 몸을 팔다 미친놈에게 '걸려 살해당했다. 

나는 그 얘기를 풍문으로 들었다. 

그 애는 가끔 지나가는 사람의 

가방을 털기도 했다.

나는 시골 짝에서 채운 경력을 바탕으로

 다른 회사의 정규직이 되었다. 

어느 날 그 애가 인스타로 연락이 왔다. 

대형 마트 물류센터에서 지게차를 운전한다고 했다.

우리가 자주 가던 대포 집에 갔다. 

사람도 충전을 해줘야 해.

나는 너를 보러 오는 게 충전이었어.

제대로 살고 싶어.

첫 월급은 적어. 

그래도 월급 나오면 막걸리 사줄게.

그 애 번호로 연락이 왔다.


ㅇㅇㅇ 본인 상.


그 애는 자기가 몰던 지게차에 깔려 죽었다. 


33살이었다.

우리는 친구였다. 

아픈 사랑을 하고 난 우리에겐 연애는 감히 넘볼 수 없는 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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