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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잘쓰는헤찌 Dec 21. 2022

상대에게 물듦

전염

“신랑님, 이 좋은 날에 왜 그러세요?”


“그러게요. 제게 좋은 날이지, 

사장님이 좋은 날이 아니잖아요?”


또 한 건을 해냈다. 

그의 이름은 찬혁. 

말을 잘하고 꼼꼼한 성격 탓에 

그를 상대하는 것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방금의 일은 한복 가게에서 일어났다. 

서늘한 늦가을의 바람이 머리카락을 흩날리는 날, 

장모님과 아내는 혼주 한복을 보러 갔다.

문제는 ‘처음’의 낯섦에 사장님이 시키는 대로,

썩 내키지 않는 한복을 

계약하고 온 것이었다.

 

흔히 ‘웨딩’이란 단어가 붙으면 제약이 많아진다. 

장모님의 혼주 한복도 그랬다.

한복 가게 사장은 딸의 웨딩드레스보다 

화려하면 안 되니 톤이 다운된 채도를 고르라고 했다. 

말로는 선택권을 줬다. 

그러나 그가 가져온 한복은 딱 2벌이었다.


샵에서는 또래 혼주들보다 유독 젊은 장모님의 

우아한 기품을 위했는지도 모르겠다. 

어울리지 않게 어두운 주황색 치마를 골라주었다.

마치 홍시를 먹다가 옷에 흘러서 

짓이겨진 색깔과 비슷했다.


딸이 주인공이니 자기주장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못내 아쉬웠다. 

그윽한 나이를 머금은 한복은 

이제 갓 50을 넘긴 트렌디한 장모님과 

맞지 않는 옷이었다.


“1시간도 안 된 계약이 왜 취소가 되지 않죠? 

식이 넉 달 넘게 남았으니 

가봉도 안 하셨을 것 아니에요? 

사장님께서 응대하신 시간적 비용을 10%나 쳐서 

3만원 빼고 환불 해달라는 게 

왜 좋은 날 너무한 게 되는 거죠?”

그의 말투는 나지막하지만 냉정했다. 


그의 차가운 말투는 결혼식 당일에도 사용되었다. 

“원래 타 지역은 출장비를 주셔야 해요.”

“계약서에 이 웨딩홀의 이름은 처음부터 적혀있었습니다. 

로만스 웨딩홀이 부안인 거 알고 계셨잖아요. 

출장비에 관한 내용이나 언급은 없으셨는데 

저희가 왜 드려야 하죠?”

미리 출장비를 언급한 사진작가에게는 출장비를 드리고, 

드레스 도우미에겐 주지 않았다. 

두 분이 같이 있는 곳에서 그랬다. 

물론 당일의 드레스 도우미는 열정적으로 일을 했고, 

친절했다. 


그러나 그건 그거고, 

계약은 계약이었다. 

둘은 다른 것이다.


찬혁과는 다르게 아내는 성향이 정반대였다. 

둘의 성격은 완전히 달랐으나 

지향하는 가치가 잘 맞았다. 

그래서 함께 할 때면 즐거웠다. 


그런 찬혁의 아내는 심리학과 

사회학에 관심이 많았다. 

그녀는 ‘홀랜드 검사’ 예술형에 

‘애니어 그램’ 4번의 예술가, 

그리고 ‘MBTI’ INFP 몽상가인 

호기심쟁이였다. 


그녀를 보고 있으면 나풀거리는 나비 한 마리가 

통통 튀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찬혁에게도 심리학 문제를 곧잘 건넸다. 

그리고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봤다. 


그때마다 찬혁은

“나는 이런 심리검사는 어차피 통계학인데, 

말장난인 것 같아서 별로 안 좋아해.”

라고 말했다. 

그러나 아내가 원한다면 기꺼이 다 해주었다. 

그의 심리검사는 한결같이 분명한 결과를 가리켰다.


[현실주의. 직설적. 합리성. 완고함. 

공과 사 구분. 공감 능력 부족]


아내는 자신과 겹치는 키워드가 없는 

찬혁을 보며 신기해했다. 

그리고 남편의 마음을 더 잘 알겠다며 

아이처럼 좋아했다.


하지만 그녀가 가지고 있는 철학은 확고했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경제적이거나 

손익 계산을 하면 편해질 순 있어. 

그러나 결국 큰일을 결정하게 하는 한방은 

감정에서 온다고 봐. 

우린 사람으로 긴밀하게 맺어지니까.”


찬혁은 그런 아내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냥 사랑하니까 

받아들이고 인정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났다. 

아내는 찬혁에게 심리검사를 

건네는 일이 줄었다. 

알 만큼 안 것 같기도 하고 테스트보다는 

얼굴을 맞대고 대화하는 게 

더 좋기 때문이다.

 

반면에 찬혁은 그녀의 모습을 닮아서 

곧잘 테스트를 건넨다. 

마치 성향이라는 물감을 짜내서 

서로 맞닿은 데칼코마니와 같다. 

1년을 안은 심리 테스트는 

종종 같은 곳을 바라보기도 했다.


[찬혁 결과: 공감적이고 소통을 잘함.]


[아내 결과: 할 말을 다 함. 직설적임. 

호불호가 강함.]


[두 분은 상대의 최강점이 자신의 최약점, 

자신의 최강점이 상대의 최약점인 관계입니다. 

기본적으로 같은 심리기능을 사용하면서 상호 보완이 

완벽하게 되기에 사회 인격학 관점에서는 

이론상 최상의 궁합이에요. 


특히 두 분은 기본적으로 양쪽이 

전혀 다른 서로의 모습을 

긍정할 수 있을 만큼 심리적으로 건강하고 

포용력이 좋은 편입니다.]


전염. 그건 다른 사람의 습관이나 분위기, 

기분 따위에 영향을 받아 물이 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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