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꿈을 향한 초대장

by 다잘쓰는헤찌

홍배가 서울로 온 지 1년 여쯤이 지난 5학년이 되었을 때, 그의 삶은 큰 변화를 맞이했다.

고향에서 전화가 온 것이다.

“홍배야, 얼른 영천 내려오거라.”

어느 비 내리는 날이었다.

홍배는 평소처럼 버스에서 내려서 마당을 가로질러 들어섰다.

집 안은 평소와 다르게 조용했고, 그의 마음에는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스며들었다.

어머니는 대청마루에 서서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고, 홍배가 다가가자 어머니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아들을 바라봤다.

홍배는 어머니의 얼굴이 울먹이며 젖어 있는 걸 보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어렴풋이 느꼈다.

"홍배야,"

어머니는 떨리는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너희 아버지가 오늘, 우리 곁을 떠나셨다."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홍배의 온몸은 마치 세찬 빗물에 흠뻑 젖은 것처럼 무거워졌다.

아버지는 평소처럼 잠자리에 드시고는 깨지 않으셨다.

홍배는 믿을 수 없는 마음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날 밤, 아무 말 없이 사랑방에 누운 그는 눈을 감아도 아버지의 웃는 얼굴이 떠올라 쉽사리 잠들지 못했다.

아버지는 언제나 단단하고, 흔들림 없는 존재로 여겨졌는데 이제는 그 빈자리가 그에게 얼마나 큰 상실감을 주는지 체감할 수 없을 정도였다.

다음날 홍배는 아버지의 친구들이 건네는 조문 인사를 무력하게 받았다.

조문객 대부분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걱정은 늘 유학 가 있는 막내아들이었다’

라고 말했고, 그래서 홍배는 더욱 마음이 무거웠다.

아버지는 그의 공부를 누구보다 중요하게 생각하셨고, 그 기대가 머리 위로 무겁게 내려앉았다.

장례식을 마친 뒤, 어머니는 홍배를 잠시 불러 조용히 말을 꺼냈다.

"홍배야, 지금처럼만 잘하면 된단다."

그 말속에는 아버지의 바람을 이뤄주려는 어머니의 염원도 함께 담겨 있었다.

그렇게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홍배는 다시 서울로 유학을 떠났다.

아버지의 빈자리를 느낄 때마다 마음 한구석에서 깊은 다짐이 일어났다.

공부에 전념해 아버지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다는 결심이었다.

그러나 서울에서 새로운 인연을 만나며 운동에 대한 기회가 찾아왔을 때, 홍배는 그리움과 고민 속에서 끊임없이 아버지를 떠올렸다.

"아버지라면 내게 어떤 선택을 하라고 하셨을까?"

이 질문은 그의 마음속에 계속 남아 있었다.

어느 날 늦은 오후,

서울의 거리에 저물녘 빛이 서서히 물들 무렵, 아이는 집 근처 운동장을 떠돌며 축구공을 찼다.

“홍배야, 축구 많이 좋아하는가 봐?”

한 남자가 아이에게 익숙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아이는 수줍은 웃음을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

축구공을 조심스레 되받아 찬 그는 이미 몇 번이고 이 남자에게서 축구공을 받아본 터였다.

"이거, 선수들이 쓰는 진짜 연습 공이란다. 마음껏 차 봐."

아이의 얼굴엔 기쁨이 가득했다.

1970년대 초,

축구공 한 알이 얼마나 귀한지 잘 알고 있던 그는 공을 받는 순간이 마치 꿈만 같았다.

홍배가 서울에서 국민학교를 다니던 시절, 홍배에게는 특별한 인연이 있었다.

아이는 서울 제일병원 산부인과 원장님의 집에서 머물렀는데, 원장님은 홍배의 작은 아버지였다.

작은 아버지 집에는 세 들어 사는 사람이 몇몇 더 있었다.

세입자 중에서 아이에게 가장 영향을 준 사람의 직업은 다름 아닌 축구 코치였다.

그는 전라도 광주 출신으로 산업은행 축구단에서 활동 중인 선수였다.

여느 어른들과는 다르게 그 코치는 홍배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졌고, 종종 선수들이 쓰던 연습 공을 아이에게 건네주곤 했다.

평소에 친근하게 대해주던 그는, 마치 한 사람의 멘토처럼 이 어린 소년에게 특별한 눈길을 보내곤 했다.

코치는 아이의 신체적 재능을 보고 축구 경험을 확장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아이의 부모님이 지방에 있는데, 함부로 아이를 데리고 다닐 순 없었다. 그저 축구 경기 초청권을 건네며 축구에 대한 애정을 심어주었다.

홍배는 그 초청권을 손에 쥐고 축구 경기를 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아이는 그라운드를 지배하는 선수들을 바라보며 꿈을 키워갔다. 코치는 아이가 공을 찰 때마다 자세를 교정해주곤 했다.

그러다 어느 날,

코치는 허리를 구부려 홍배와 눈을 맞추며 차분하게 말을 꺼냈다.

“홍배야, 나도 운동을 참 좋아하지만, 공부를 놓은 게 한 번씩 후회될 때가 많다.

중학교까지만이라도 공부에 힘을 좀 쏟아보거라.”

아이는 갑작스러운 충고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왜요, 코치님? 전 축구 선수가 되고 싶은데…”

코치는 고개를 끄덕이며 어깨를 두드렸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축구를 하고 싶다면, 날 찾아오면 된다. 내가 전국 각지에 있는 친구들을 통해 네가 원하는 학교로 보내줄 수도 있으니까. 어디든 가고 싶다면 말이다.”

코치는 진지한 표정으로 덧붙였다.

"이회택 선수도 내 친구다. 내 결혼식에도 와 줬던 사람이야. 그러니 네가 축구에서 정말 재능을 발휘하고 싶다면, 난 언제나 너를 돕기 위해 여기 있을 거야. 하지만 지금은 우선 공부를 해 보는 게 좋겠다.”

그 순간 아이의 마음속에 자그마한 씨앗이 심겼다.

‘공부도 더 열심히 하리라.’

그날 이후, 아이는 축구 경기를 볼 때마다, 꿈꾸는 미래에 대해 한 번 더 깊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아이는 차분히 서울 광희중학교에 입학했다.

막 입학식이 끝났을 때였다.

체육부 선생님들이 홍배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제 막 중학생이 된 아이답지 않은 174cm의 키는 운동에 적합한 자질로 비추어졌던 듯하다.

체육부장 둘은 곧 그의 능력을 활용하고자 홍배에게 다가왔다.

아이를 부르더니 이내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홍배야, 너 키가 참 크구나. 뭐, 하고 싶은 종목은 없니?”

럭비부와 농구부 선생님들이 그를 주목하며 농구와 럭비 중에 관심 가는 운동이 있는지 물었다.

홍배는 고민에 빠졌다.

광희중학교에는 축구부가 없었다. 대신 농구부와 럭비부가 있었다.

체육부장들은 아이가 두 종목 중 하나를 택하도록 유도했고, 아이는 잠시 고민하다가 농구를 선택했다.

럭비는 몸을 부딪치며 까지고, 몸싸움을 심하게 해야 하는 운동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럭비부 선생님도 그의 결정을 존중해주었다.

“그래, 너는 농구가 잘 맞을 것 같구나.”

그의 키와 체격을 보며 아쉬운 듯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섰다.

광희중학교에서의 생활은 공립학교 특유의 자유로움과 함께 훈훈한 학교 분위기를 더해주었다.

그중에서도 아이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선생님은 차재억 선생님이었다.

차재억 선생님은 아이의 가능성을 일찍이 알아보며 그를 격려해주었고, 때로는 그의 장래를 함께 고민해주는 든든한 멘토가 되어주었다.

그때 만난 체육 선생님, 차재억 선생님은 그에게 따뜻한 미소를 보내며 물었다.

“홍배야, 대학교는 어디로 가고 싶은 생각이 있니?”

아이의 눈이 반짝였다. 주저 없이 대답했다.

“저는 연세대학교 영문학과에 가고 싶습니다!”

그의 꿈을 들은 차재억 선생님은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내가 그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돕겠다.”

그는 진심 어린 눈빛으로 아이를 바라보았다. 선생님은 이어서 규칙을 하나 정해주었다.

“첫째 시간은 무조건 수업에 참여해라. 둘째 시간부터는 네가 하고 싶은 걸 자유롭게 해도 좋다. 그게 네 꿈을 이루기 위한 첫걸음이니까.”

그날 이후,

홍배는 체계적으로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며 자신의 길을 닦아나가기 시작했다.

아이의 운동 기량은 이미 중학생 수준을 넘어서 고등학생 못지않게 뛰어났다.

그의 뛰어난 실력은 주변의 관심을 끌기에는 충분했다.

학교 체육관에서 농구 연습을 하며 그의 실력은 점점 더 높아졌고, 어느새 중고등학교 농구 연맹에도 정식 등록 선수가 되었다.

그의 마음속에서 꿈은 한 걸음씩 자라났고, 그를 둘러싼 사람들의 응원과 함께 빛을 발하기 시작하였다.

아이의 꿈은 이제 작은 씨앗에서 튼튼한 나무로 자라나고 있었다. 언제 어디서나 당당하게 자신의 길을 걷던 그 소년은 차재억 선생님의 응원과 함께 조금씩 새로운 꿈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운동장에서 땀을 흘리며 몸을 단련하고, 팀과 함께 연습할 때마다 홍배는 새로운 활력을 느꼈다.

팀을 위해 뛰는 순간만큼은 모든 걱정과 고민을 잊고 몰입할 수 있었기에 운동은 그에게 특별한 즐거움이었다.

어느덧 서울에서 지낸 지 4년이 지난 어느날, 아이의 부모님에게 불길한 소식이 전해졌다.

작은 아버지를 통해 들은 소식이었다.

"형수님, 홍배가 요즘 학교에서 운동을 시작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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