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음력 4월 6일, 하늘은 밝고 맑았다.
따사로운 햇살이 마당을 환히 비추고, 살랑거리는 봄바람이 온 집안을 부드럽게 감쌌다.
부처님 오신 날을 이틀 앞둔 그 날,
평화로웠던 기와집에 갑자기 경사스러운 울음소리가 가득 울려 퍼졌다.
아이가 태어난 것이다.
건강한 사내아이가 이 세상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날, 기와를 얹은 넓은 저택 안에는 긴장과 기대가 교차했다.
가족들은 모두 조용히 한숨을 삼키며, 아이가 세상에 나올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방 안에서는 땀에 젖은 어머니가 마지막 힘을 쏟으며 아이를 낳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그 순간,
"우앙!"
하는 우렁찬 울음소리가 방안을 가득 메우자, 밖에서 기다리던 집 안 사람들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났다.
"사내아이야!"
"정말 힘찬 울음소리네!"
아버지는 그 소식을 듣고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도 한 손으로 이마의 땀을 닦으며 안도와 기쁨이 섞인 미소를 지었다.
방안은 아이의 탄생을 축복하는 기운으로 가득 찼고, 그 기쁨은 점점 집안 전체로 퍼져나갔다.
세 번째 사내아이가 태어난 그 순간, 커다란 기와저택은 어느 때보다도 환하고 밝았다.
마당의 붉은 꽃들은 만개했고, 바람은 상쾌했다.
집안 어른들은 환하게 웃으며 서로의 등을 두드렸다.
"이 집안에 큰 복이 내렸구나!“
아이의 울음소리는 힘차고도 우렁찼다.
튼실하게 태어난 이 사내아이가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갈지, 어떤 인물이 될지 기대에 부풀었다.
할머니는 종종걸음으로 다가와 갓 태어난 손자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주름진 손으로 아이의 뺨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말했다.
"크게 될 아이로구나. 장군감이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자부심이 가득했다.
집안의 귀한 아들이 태어났으니, 이 아이는 앞으로 가문의 이름을 빛낼 큰 사람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날 밤, 방안에는 한결 조용한 고요함이 흘렀지만, 어머니의 품속에 안긴 아기는 가벼운 숨소리와 함께 평화롭게 잠들어 있었다.
어머니는 지친 몸을 이끌고, 아기를 품에 안고 눈을 감았다.
그 순간, 창밖으로 은은한 달빛이 방으로 스며들었고, 가족들은 아이의 밝은 미래를 기원하며 잠이 들었다.
세상에 첫발을 내디딘 이 아이의 앞날은 다소 이르지만, 그날 밤만큼은 모두가 이 아이의 운명에 대해 좋은 예감만을 품고 있었다.
“수고했다,”
아버지가 어머니의 손을 잡고 낮게 말했다.
그 말 한마디에 담긴 고마움과 사랑이 그녀의 피로를 한순간에 덜어주었다.
그리하여 1960년의 부처님의 가피가 가득한 그 날,
경주 최씨 가문에 새 생명이 들어섰고, 아이의 울음소리는 집안의 새로운 역사를 알리는 신호가 되었다.
아이가 앞으로 어떤 삶을 살든, 그 시작은 이토록 소중하고 사랑으로 가득 찬 순간이었음을 모두가 느끼고 있었다.
아이는 남들보다 유독 눈에 띄었다.
또래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클 정도로 키가 크고 당당한 체구를 자랑했다.
집안에서도 그 큰 키와 뛰어난 운동신경 덕분에 그는 늘 주목받는 존재였다.
아이가 온종일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쏟아내는 활기가 사랑방에 가득 찼고, 그가 다니는 곳마다 밝은 기운이 넘쳐났다.
힘이 넘치는 몸짓에 걸맞게 머리도 빠릿빠릿했다.
또래들보다 훨씬 먼저 한글을 떼고,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하곤 했다.
특히 그의 외삼촌은 아이의 재능을 먼저 알아본 사람이었다.
외삼촌은 그 시절 교장 선생님으로 이름난 사람이었고, 심지어 책도 저술한 학자였다.
그가 어린 조카의 똑똑함을 처음 보고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여동생에게 말했다.
“경호야, 크게 될 아이야. 이 아이, 틀림없이 우리 집안을 빛낼 거야.”
외삼촌의 그 말은 그저 덕담이 아니었다.
누구보다도 예리한 눈으로 아이의 밝은 미래를 내다본 것이었다.
집안 어른들은 외삼촌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에 동의했다. 아이가 가진 잠재력은 이미 집안에서 작은 전설이 되어 있었다.
아이는 대문 앞의 초등학교에 다니면서도 그 명성을 이어갔다.
그가 반장 선거에 나가면 다른 아이들은 명함도 내밀지 못했다.
아이는 단 한 번도 반장 자리를 놓친 적이 없었다.
반장으로서 그는 책임감 넘치는 모습으로 또래 친구들을 이끌었고, 학교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일들에 먼저 나서서 해결책을 제시했다.
게다가 아이는 한글을 일찍 익힌 덕에 친구들 중에서 글을 모르는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는 역할도 했다. 학교에서뿐만 아니라 집에서도 또래들에게 수학을 가르치며 일종의 작은 멘토 역할을 했다.
그렇게 활기차고 총명했던 아이는 11살이 되던 해, 서울로 유학을 떠나기로 결정됐다.
그의 재능을 더 크게 펼칠 곳은 고향이 아닌 더 넓은 세상이었다.
서울에서 병원을 운영하는 작은아버지의 집으로 가게 된 아이는 새로운 환경에서 자신의 꿈을 키워나가야 했다.
부모님은 그가 더욱 크게 성장하길 바라며 기꺼이 아이를 서울로 보냈다.
“똑똑한 머리로 크게 공부해라,”
아버지는 아이가 공부에 전념하기를 바라며 아쉬운 마음을 감추고 그를 격려했다.
새로운 도시에서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여정은 아이에게도 설렘과 약간의 두려움을 동시에 안겨 주었다.
아이에게 서울은 낯선 곳이었다.
하지만 국어 시간만큼은 아이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특히 글을 읽는 걸 좋아했던 그는 국어 교과서를 읽는 시간이 가장 즐거웠다.
아이는 경상도의 진한 사투리를 썼지만, 글 속에서만큼은 그 누구보다도 자유로웠다.
어느 날, 국어 시간에 아이는 자신 있게 교과서를 읽어나갔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오는 경북 사투리에 서울 친구들이 킥킥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아이는 잠시 멈칫했지만, 곧 웃음을 지우고 담담하게 발표를 이어갔다.
급우들의 반응에 살짝 부끄러웠을지는 몰라도, 아이는 국어를 여전히 사랑했다.
글을 읽고 표현하는 그 시간이야말로 그가 마음껏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순간이었다.
글을 통해 세상을 배웠고, 국어 시간은 그의 마음속 깊이 남아있는 작은 즐거움이었다.
그렇게 아이는 서울 장충초등학교에서 30회 졸업생으로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고향을 떠나 새로운 도시에서 적응해가면서도 그는 변함없이 자신의 열정과 총명함으로 주변을 빛냈다.
삭막할 수 있는 도심 속에서도 그는 여전히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잃지 않았다.
그는 앞으로 펼쳐질 더 큰 세상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