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해결만이 전부는 아니다

근본을 이해하려는 질문

by 위니

우리는 늘 문제 해결에 몰두한다. 고장 난 기계를 고치고, 일을 처리하느라 일정에 쫓긴다. 그리고 여러 인간관계에서 생기는 갈등을 해결하며 살아간다.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짜릿한 성취가 따른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정작 중요한 질문은 놓친다.


'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

'내가 하는 일은 무엇을 위한 걸까?'


수천 년 전 소크라테스가 바로 이런 질문을 집요하게 던졌다. 그는 아테네의 시장을 서성이며 시민들에게 다가가 물었다. “정의란 무엇입니까?” “용기란 무엇입니까?” “행복이란 무엇입니까?” 그가 한 질문은 단순했지만, 누구도 쉽게 답하지 못했다. 대답하는 순간 그는 다시 “그렇다면 정의롭지 않은 것이란 무엇입니까?” 하고 되묻곤 했다. 사람들은 점점 말문이 막히고, 자신이 알고 있다고 믿었던 것이 사실은 모호했다는 걸 깨달았다. 이 과정을 ‘산파술’이라고 부른다. 산모가 아이를 낳도록 돕듯, 상대가 스스로 답을 낳도록 질문으로 이끄는 방식이다.


당시 아테네 사람들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부분 맡은 역할에 몰두하며 살았다. 장군은 전쟁을 준비하고, 상인은 돈을 벌고, 장인은 물건을 만들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왜 하는지 깊이 묻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거추장스러운 인물이면서 사람들을 지혜롭게 만들어주는 인물이었다. 아쉽게도 바쁜 일상을 살던 당시 사람들도 그를 거추장스럽게만 여겼다.


어느 날 소크라테스는 한 장군에게 전쟁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오랜 전쟁 경험이 있는 장군조차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사실 그는 장군뿐 아니라 장인, 시인, 정치가 등 여러 계층의 사람들에게 같은 방식으로 질문을 던졌다. 누구도 자신이 하는 일을 명확히 정의하지 못하자, 그들은 점차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문제 해결에 몰두하던 일상에 괜히 끼어들어 성가시게 군다고 여긴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을 했다고 흔히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델포이 신전에 새겨진 글귀다. 나는 이 문장이 두 겹의 뜻을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너는 신이 아닌 인간이니 한계를 알라는 것. 둘째, 자기 자신을 깊이 알아야 제대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면접 자리에서 지원자에게 가끔 소크라테스식 질문을 던진다.


“프로그래머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좋은 디자이너를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요?"

"그럼 나쁜 디자이너는요?"


당신의 대답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여기에 정답은 없다. 각자 자기만의 정의가 있을 뿐이다. 별생각 없이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시키는 대로만 일하는 사람과, 자신의 일에 의미를 묻고 답하며 살아가는 사람 사이에는 시간이 갈수록 분명한 차이가 생긴다. 단지 경력이 몇 년 인지만 중요한 것은 아니다.


혹시 아직 자신이 하는 일을 정의해 본 적 없다면 지금 시도해 보자. 그리고 가능하다면 질문을 계속 이어가 봐도 좋다. 꼬리에 꼬리를 물며 질문할수록 생각은 더 깊어진다.


다음 질문을 해보자. ( )는 당신의 직업도 좋고 직무라도 괜찮다.


당신은 ( )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좋은 ( )는 어떻게 정의할 수 있나요?

그렇다면 나쁜 ( )란 어떤 건가요?




이제 질문이 가진 힘을 일상에서 어떻게 사용할지 알아보자.


여기 한 아버지가 있다. 아이가 놀아달라며 다가온다. 아버지가 그것을 ‘문제’로 인식하면, 손쉽게 스마트폰을 쥐여주며 ‘해결’할 수 있다. 아이는 조용해지고 아버지는 자신의 시간을 지킨다.


하지만 만약 “부모란 무엇일까? 좋은 아버지는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자주 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아이가 보내는 눈길이 번거로운 문제가 아니라 함께 추억을 만들 기회로 본다. 그런 아버지라면 아이와 눈을 맞추고 대화를 할 테고 아이의 끈질긴 질문에 성심껏 답하려 할 것이다. 이런 아버지라면 자신의 말보다 자신이 하는 행동을 보고 아이가 배운다는 것을 알기에 평소 행동과 말을 주의해서 할 것이다.


이렇게 보면 아이가 놀아달라고 하는 순간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서로를 더 깊이 연결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지나고 나면 그 시간이 얼마나 짧았는지 알게 될 것이다.


질문은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 삶의 방향을 바꾼다. 어떤 질문은 쉽게 답을 얻을 수 없고, 평생 마음속에 머문다. “내가 평생 바쳐야 할 일은 무엇일까?”라는 물음처럼 말이다.


나는 아직 그 답을 모른다. 아마 끝내 알지 못한 채 생을 마칠지도 모른다. 그러나 돌아보면, 답보다 질문이 나를 이끌어왔다. 그 질문이 없었다면 새로운 경험도, 새로운 만남도 없었을 것이다. 내가 답이라고 여겼던 것이 아닐 때도 있었고, 답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에서 답을 찾기도 했다.


어쩌면 중요한 건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질문이 내 삶을 어디로 이끌어가고 있는지를 지켜보는 일일지 모른다. 답은 사라질 수 있지만, 질문은 계속 움직이며 나를 앞으로 나아가도록 이끌기 때문이다.


여전히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그리고 그 질문이 삶의 경험을 더욱 풍부하게 만든다는 것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