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태도가 주는 것들
공자의 제자 중에는 성격이 거칠고 직설적인 자로(子路)라는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자로가 물었다.
“스승님, 어떤 사람이 진정 아는 사람입니까?”
공자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이렇게 말했다.
아는 것을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아는 것이다.
자로는 늘 앞에 나서고 목소리가 큰 제자였지만, 뭔가를 모른다고 말하기를 꺼려했다. 공자는 바로 그 점을 짚었다. 모른다는 말을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야말로 지혜의 출발이라는 뜻이었다.
1912년 타이타닉호는 ‘절대 가라앉지 않는다’는 믿음 속에 출항했다. 항해 도중 여섯 차례나 빙산 경고가 들어왔지만, 선장과 항해사들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자신들이 충분히 알고 있고 위험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은 것이다. “확실히 모르니 더 확인해 보자”는 태도가 없었기에 배는 침몰했고, 1500명이 넘는 목숨이 바다에 잠겼다.
1592년 조선 조정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일본이 침략을 준비한다는 보고가 거듭 올라왔지만, 대신들은 “설마”라며 무시했다. 국제 정세를 정확히 알지 못했으면서도 자신들이 충분히 알고 있다고 여긴 것이다. 조금의 겸손이 있었다면 전쟁 준비는 달라졌을지 모른다. 그러나 체면과 아는 체가 앞섰고, 결과는 임진왜란이었다. 국토는 유린되고 수많은 백성이 희생됐다.
중세 유럽의 흑사병도 다르지 않았다. 원인을 알지 못하면서도 사람들은 ‘나쁜 공기 때문’이라는 미아즈마 이론을 확신했다. 원인을 정확히 알 수 없다는 걸 인정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했더라면 대응은 더 빨랐을 것이다. 하지만 잘못된 확신은 도시마다 무덤을 늘려갔고, 유럽 인구의 3분의 1이 사라졌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런 사례들에서 배울 점은 분명하다.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생각하는 교만은 커다란 비극으로 이어진다. 타이타닉의 침몰, 임진왜란의 패배, 흑사병의 오진, 그리고 프로젝트 실패까지 모두 같은 뿌리를 갖고 있다. “내가 잘 모를 수도 있다”는 태도가 사라질 때, 개인과 공동체는 위기를 맞는다.
최근 카카오톡 업데이트 사태에서도 비슷한 점이 보인다. 카카오는 친구 목록 대신 피드형 UI를 넣고, 광고와 콘텐츠 노출을 크게 늘렸다. 내부에서는 “사용자 경험이 크게 나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었지만, 경영진은 이를 무시하고 “사용자도 곧 적응할 것”이라 판단했다.
결과는 예상 밖의 거센 반발이었다. 사용자들은 소셜미디어와 커뮤니티에서 불만을 쏟아냈고, 브랜드 이미지는 흔들렸다. 결국 카카오는 일부 철회를 검토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렸다. “우리는 충분히 알고 있다”는 확신이 “우리가 잘 모를 수 있어, 좀 더 살펴보자”는 겸손을 대신한 순간, 회사 전체가 큰 비용을 치르게 된 것이다.
물론 재무적 이익 측면에서는 광고를 전면에 내세워 매출 향상에는 도움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애초부터 그걸 감수하고 이런 결정을 내렸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전 국민의 메신저라는 이름에 걸맞은 행동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거대한 배는 금방 가라앉지 않는다. 이런 작은 균열들이 여기저기 일어나며 서서히 가라앉는다. 소비자로부터 믿음을 잃으면 당장은 눈에 띄지 않겠지만 서비스 전체에 균열이 생길 것이다.
경력이 많고 직급이 높아질수록 뭔가를 모른다고 말하기 어려워진다. 그렇지 않으면 그 권위가 무너질 것만 같다. 그래서 자기가 잘 모르는 것도 억지로 아는 체를 하며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렇게 해서는 얻을 것이 없다. 리더가 조직 구성원들에게 솔직하게 모르는 건 모르겠다 함께 알아보자는 태도로 다가가면 조직 구성원들은 더욱 신이 나서 일을 하게 된다. 반대로 다 안다는 식으로 행동하면 어차피 리더가 다 알아서 할 테니 우리는 시키는 일만 하자는 태도를 가지게 된다. 그렇게 해서는 조직에도 도움이 되지 않고 리더 본인도 별로 얻을 것이 없다.
부모 역시 권위의 대상이다. 부모들 스스로가 그것을 알고 있기에 자기도 모르게 아이 앞에서는 모르는 것이 없어야 한다는 태도를 보인다. 앞서 조직의 리더와 다를 것이 없다. 아이들은 자기들이 우러러보는 부모가 모르는 게 있고 그것을 함께 알아보자고 하면 신이 난다. 나중에 다른 시리즈에 말하겠지만 내 경험으로는 그렇게 형성된 관계가 사춘기를 이겨내는 토대가 되기도 했다. 모르는 것을 솔직하게 말하면 나도 새로운 지식을 알게 되고 아이도 부모와 함께 하는 게 즐거운 일이 된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직관적으로는 모르면 안 될 것 같은 그 느낌으로부터 벗어나보자. 이것도 여러 번 하다 보면 습관이 되어 편안해진다. 모르는 것은 부끄러운 게 아니다. 모르는데 아는척하다가 더 곤란한 일이 일어나는 게 현실이다. 사소해 보이지만 그것은 개인에서부터 거대한 조직까지 모두 해당되는 중요한 문제이기도 하다. 오늘부터라도 이런 태도로 사람들을 대해보자. 나는 배우는 게 많아져서 좋고 조직과 사회는 초래할 위기를 줄여서 좋다. 모두가 좋을 일을 안 할 이유는 없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