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이렇게 살아가야 하는가?

당연한 것에 던지는 질문

by 위니

우리는 점점 더 복잡한 세상에서 살아간다. 편리함을 위해 규칙을 만들고, 효율을 위해 제도를 만든다. 회사는 평가 제도를 도입하고, 학교는 등수를 매기며, 도시는 각종 규제를 늘려간다. 그런데 이런 장치들이 늘어난다고 해서 사람들이 더 자유로워지는 걸까? 아니면 더 얽매이게 되는 걸까?


루소는 『사회계약론』의 첫 문장을 이렇게 시작했다.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으나, 어디서나 쇠사슬에 묶여 있다.


루소는 1712년 제네바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 어머니를 잃고 불안정한 가정에서 자랐으며, 정규 교육을 오래 받지 못했다. 그는 시계공 수습생, 음악 교사, 비서 같은 직업을 전전하며 파리로 흘러들어 갔다. 당시 파리는 계몽주의자들의 중심지였다. 처음에는 그들과 교류했지만 점차 이들과 거리를 두고, 오히려 문명이 인간을 더 행복하게 만들지는 않는다고 주장했다. 다른 계몽사상가들이 ‘이성의 진보’를 강조할 때, 그는 “진보가 인간을 쇠사슬에 묶고 있다”라고 말하며 반대 방향에서 질문을 던진 것이다.


우리는 왜 이렇게 살아가야 하는가?


당연하게 여겨지는 제도와 규칙을 다시 근본에서 의심해 보자는 것이다.

소유권은 정말 자연스러운 권리인가?

교육은 아이를 존중하는가, 아니면 사회가 원하는 틀에 맞추는 도구인가?

민주정은 다수의 이름으로 소수를 억압하는 방식으로 흐르지 않는가?



현대 사회의 당연한 것들에 던지는 질문


회의는 원래 더 나은 결정을 내리기 위한 자리다. 하지만 어느 순간 회의 자체가 일이 된다. 이미 이메일로 충분히 정리할 수 있는 내용도 굳이 모여서 되풀이한다. 실질적인 논의보다 ‘참석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해진다. 우리는 왜 모였는가? 서로의 생각을 듣기 위해서일까, 아니면 일하는 모습을 누군가에게 보여야 하기 때문일까?


학교에서도 마찬가지다. 시험을 치르는 이유는 학생이 무엇을 얼마나 배웠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시험은 ‘배움’보다 ‘순위’를 매기는 도구로 변했다. 학생들은 질문을 던지는 힘을 기르기보다, 문제집의 답을 빠르게 찾아내는 능력만 키운다. 게다가 한국에서는 모든 교육이 대학 입시를 목적으로 한다. 간혹 근복적인 교육을 추구하는 곳도 있지만 대학 입시라는 '성과' 앞에서 힘을 쓰진 못한다. 한국에서 학교 교육이란 '대학 입학 성공을 위한 과정'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대학도 마찬가지다. 취업을 위한 기관일 뿐이다. 우리는 그것이 전부냐고 질문해봐야 하지 않을까. 지금과 같은 행태 때문에 아이들은 학원, 공부 경험외에는 별로 해보질 못한다. 그래서 30대 직장인도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게 아닐까.


늘 곁에 두고 있는 스마트폰을 보자. 우리는 알림이 뜨면 습관처럼 화면을 연다. 하루에 몇 시간씩 소셜미디어를 들여다보지만, 화면을 닫고 나면 기억에 남는 건 별로 없다. 내가 이것을 도구로 사용하는 걸까, 아니면 이 도구가 나를 사용하고 있을까? 스마트폰이 본래 나를 자유롭게 하기 위해 만들어진 도구인지, 오히려 나를 더 구속하는 함정은 아닌지 질문을 던져봐야 하는게 아닐까.


지금 우리는 AI가 추천하는 뉴스와 음악, 알고리즘이 설계한 광고 속에서 산다. 더 편리해진 것 같지만, 그것이 나의 선택이라 할 수 있을까. 자신이 해야 할 선택을 대신해 줘서 편리하다면, 과연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이라 할 수 있을까? AI에게 선택을 맡겨버린 인간은 그저 그 서비스에 데이터를 제공하는 연료일 뿐이다. 루소가 오늘을 본다면, 인간이 자율성을 잃은 이 상황을 또 다른 ‘쇠사슬’이라 부를지도 모르겠다.




아직 선택권은 나에게 있다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을 “원래 그런 거니까” 하고 무심히 받아들이면, 루소의 말처럼 스스로 쇠사슬에 묶인 인생을 사는 것이다.


지금은 개인 선택의 시대다. 그럼에도 그 선택의 자유가 우리 자신에게 있는 걸까? AI가 발전하면서 우리는 더욱더 AI가 만들어 놓은 길을 따라 아무 생각 없이 걸어가는지도 모른다.


다행히 아직은 우리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잠시 멈추고, 내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생각하는지 돌아보자. 자동으로 흘러가는 화면을 닫고 책을 펼쳐보자. 귀에 아무것도 꽂지 않고 조용히 길을 걸어보자. 내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생각들이 나의 생각인지 주의 깊게 들어보자. 세상이 대신 정해준 생각에서 벗어나는 연습이다.


우리는 왜 이렇게 살아가야 하는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이런 질문을 던지는 순간, 우리는 다시 생각하는 존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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