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에게서 배우는 삶의 태도
우리는 흔히 ‘단단한 사람’을 높이 평가한다. 신념이 뚜렷하고, 한 번 정한 길을 끝까지 가는 사람. 세상의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강직함은 믿음을 준다. 하지만 모든 시대에 단단함이 답이었던 건 아니다. 세상이 멈추지 않고 흐르는 한, 단단함은 언젠가 부러진다. 우리가 흔히 ‘흔들리지 않는 신념’을 찬양하는 사이, 세상을 이끄는 힘은 오히려 ‘흐름에 맞춰 스스로 바꾸는 능력’ 일지도 모른다.
물은 싸우지 않는다. 부드럽고 낮다. 하지만 결국 모든 것을 깎아내고 세상을 덮는다. 막히면 돌아가고,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든다. 낮은 곳으로 향하기에 멈추지 않는다. 세상에서 가장 유연한 것이 동시에 가장 강하다는 역설. 이것이 오래전 노자가 말한 “상선약수(上善若水)”의 뜻이다.
그가 말한 ‘무위(無爲)’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태만이 아니다. 억지로 조종하거나 바꾸려 하지 않는 태도다. 흐름에 맞춰 움직이되, 그 안에서 자신의 방향을 잃지 않는 자세. 물처럼 낮은 곳으로 흐르며, 필요한 만큼의 형태로 변하되 본질을 유지하는 태도를 말한다.
유연함의 가치는 기업의 세계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난다. 비디오 대여점 시대를 풍미했던 블록버스터는 단단했다. 안정적인 수익, 확실한 구조, 수많은 매장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세상이 스트리밍으로 이동할 때, 그 단단함은 오히려 발목을 잡았다. 반면 넷플릭스는 스스로를 부수었다. DVD 배송이라는 안정적인 사업을 버리고,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몸을 바꿨다. 위험했지만, 결국 그 선택이 회사를 살렸다. 물이 막히면 옆으로 흐르듯, 넷플릭스는 흐름의 방향을 읽고 스스로 형태를 바꿨다.
비슷한 예는 코닥에서도 볼 수 있다. 필름 기술로 세계를 지배했지만, 디지털 시대의 물결을 거부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디지털카메라를 처음 발명한 회사가 바로 코닥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필름 회사’라는 정체성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본질을 고집한 게 아니라, 과거의 형태를 고집한 결과였다. 그사이 애플과 캐논은 사진의 의미 자체를 바꾸며 시장을 장악했다.
과거에는 건축 조감도를 손으로 그렸다. 그 일을 직업으로 하는 분이 있었다. 그림 실력이 뛰어났고 결과물도 훌륭했다. 그러다 3D 그래픽이라는 새로운 기술이 등장했다. 하지만 그분은 손으로 그리길 고수했다. 결국 3D 그래픽을 전문으로 훈련한 사람들에 의해 그분의 일은 대체되고 말았다. 만약 그분이 기존의 길을 고집하지 않고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였다면 어땠을까. 이미 감각은 가지고 있기에 훨씬 더 좋은 결과물이 나왔을지도 모른다. 저는 컴퓨터랑은 친해지질 않더라고요.라고 그분이 말했던 것이 기억난다.
이렇게 조직뿐 아니라 개인도 다르지 않다. 한때 능숙했던 기술이 금세 낡아지고, 익숙한 업무 방식이 시대에 뒤처지는 일이 잦다. 빠르게 바뀌는 환경에서 중요한 건 ‘얼마나 아는가’보다 ‘얼마나 바꿀 수 있는가’다. 예를 들어 한 직장에서만 일한 경력이 길다고 해서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 새로운 도구를 배우고, 다른 방식의 협업을 시도하며, 익숙한 틀에서 벗어나되 본질은 유지하는 사람이 직업 시장에서도 살아남을 것이다.
AI 시대가 되면서 변화가 더 빠르고 거칠어졌다. 일의 경계가 무너지고, 과거의 전문가가 더 이상 전문가가 아닐 수도 있다. 우리는 매일 방향을 잃지 않으려 발버둥 친다. 그래서 더욱 단단해지고 싶어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필요한 건 ‘부드러움’이다. 기존에 내가 가지고 있던 전문성을 시대의 흐름에 맞게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한다.
물은 모든 환경에 맞춰 스스로를 바꾸지만, 언제나 물이다. 온도에 따라 증기가 되고 얼음이 되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자신의 역할과 방향을 바꾸되, 그 일이 가진 목적과 근본은 잃지 않아야 한다. 앞서 말한 건축 조감도처럼 말이다. 건축 조감도의 본질은 건물이 지어지지 전에 여러 이해관계자들이 미리 보고 판단하기 위한 역할이면서 소비자들에게 완성된 모습을 상상하도록 돕는 역할이 본질이었다. 그런 본질이 바뀌지 않으면서 더 효과적인 3D 그래픽을 활용하는 것이 바로 변화하는 것이다.
AI시대에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이럴 때 내가 당장하고 있는 일의 본질을 다시 파악하고 그것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생각해 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 그 본질을 유지하거나 개선하기 위해 나의 형태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를 고민하면 길이 보이지 않을까. 오랫동안 해오던 일의 형태를 바꾸는 것에 거부감이 생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더 큰 위기를 만나게 될 수 있다.
본질은 유지하되 형식, 기술, 방법 등은 바뀔 수 있다.
이럴 때 근본으로 돌아가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자.
내 일의 본질은 무엇인가?
본질을 유지하되 형태만 바꾼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질문 없이 그저 운 좋게 파도가 지나가기만 기다리다가는, AI라는 쓰나미에 모든 게 휩쓸려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