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의 쓸모
사람들은 철학을 어렵다고 생각한다. 추상적인 개념과 논리, 이해하기 힘든 용어로 가득한 학문. 그래서 철학은 일상과는 거리가 먼, 일부 학자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진다. 물론 그것도 세계를 이해하려던 현인들의 철학이다. 혹시 우리가 매일 하는 생각 “왜 이렇게 불안하지?”, “이 선택이 옳을까?”, “나는 어떤 사람일까?” 이런 것들도 철학이 될 수 있을까?
일부 현인들은 철학은 우주와 세계가 작동하는 방식을 찾기만 하는 학문은 아니라고 한다.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그 이유를 찾아가는 과정도 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주어진 대로 받아들이기만 하는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해 보는 태도가 철학의 태도라고 할 수 있다.
16세기 프랑스의 사상가 몽테뉴는 철학을 머리로 하는 이론이 아니라, 자신을 이해하려는 시도로 보았다. 그는 말했다.
나는 나 자신을 연구하는 일을 내 일로 삼았다.
몽테뉴는 신god이나 이성 같은 거대한 주제보다 인간의 마음과 감정에 주목했다. 불안, 게으름, 질투, 부끄러움 같은 평범한 감정들. 그는 그것들을 숨기지 않고 기록했다. 철학은 완벽한 인간이 되기 위한 수양이 아니라, 불완전한 인간을 이해하려는 시도라는 것이다.
그 결과물이 바로 《수상록》(Essais)이다. ‘Essais’는 프랑스어로 ‘시도’ 혹은 ‘시험’이라는 뜻이다. 그는 자신의 글을 완성된 이론이 아니라 생각의 실험으로 보았다. 이 단어가 영어로 옮겨지며 ‘에세이(essay)’라는 말이 생겼다. 오늘날 우리가 쓰는 ‘에세이’는 바로 그의 글쓰기에서 비롯됐다. 최근 한국에서 에세이가 인기를 끌고 수많은 작품이 출간되는 것을 보면, 수많은 철학자들이 탄생하는 것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
몽테뉴처럼 자신을 관찰한 철학자는 또 있다. 로마의 황제이자 철학자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다. 그는 제국의 최고 통치자였지만, 매일 밤 자신에게 편지를 쓰듯 글을 남겼다. 그 기록이 《명상록》이다.
철학하는 황제의 글에는 권력의 흔적보다 인간의 불안이 담겨 있다. “오늘도 분노하지 말자.” “남의 말에 흔들리지 말자.” “죽음은 두려움이 아니라 자연의 일부다.” 그는 제국을 다스리면서도 자기 안의 혼란을 다스리는 일에도 게으르지 않았다. 그에게 철학은 세상을 통제하기 위한 지식이면서, 자신을 붙잡기 위한 훈련이었다.
우리는 숨 가쁘게 이어지는 정보와 빠른 판단의 압박 속에서 생각할 틈없이 살아간다. 철학이 거창한 학문이 아니라 잠시 멈춰 자신을 돌아보는 일이라고 하면, 몽테뉴처럼 에세이 쓰기는 현대인이 실천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철학의 방식이 아닐까. 설사 그것을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는다고 해도 말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곧 생각을 밖으로 꺼내 정리하는 일이다. 머릿속에서 흐릿하게 맴도는 감정과 판단을 문장으로 바꾸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자신이 무엇을 느끼고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마주하게 된다. “오늘 나는 왜 이렇게 피곤했을까?”, “그 대화가 왜 마음에 남았을까?” 이런 질문을 글로 적는 순간, 생각은 구체화되고 쓰기 전에는 알아차리지 못한 것들을 알아차리게 되기도 한다.
몽테뉴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그랬듯, 글쓰기는 자신에게 묻는 철학의 행위이기도 하다. 완벽한 문장을 쓰려는 게 아니라, 불완전한 나를 이해하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글을 쓰며 자신을 낯설게 바라보고, 그 안의 모순과 불안을 인정하는 일. 그것이 철학의 시작이자, 우리가 일상에서 할 수 있는 사유의 연습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