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법의 고수는 싸우지 않고 이긴다
현대 사회는 경쟁으로 가득하다. 회사 안에서는 성과를 두고 경쟁하고, 시장에서는 기업들이 서로의 점유율을 두고 싸운다. SNS에서도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의견을 증명하려 한다. 우리는 마치 늘 전장 한가운데 서 있는 듯하다.
그러다 보니 ‘이긴다’는 말이 곧 성공의 상징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정말 모든 싸움이 필요할까? 이긴다는 것은 언제나 좋은 일일까? 만약 진짜 승리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느낌이 드는가? 우리는 상대를 적으로만 여겨야 하는 걸까.
백 번 싸워 백 번 이기는 것은 최선이 아니다. 싸우지 않고 상대를 꺾는 것이 가장 뛰어나다.
손자병법에서 손자는 이렇게 가르치고 있다. 그는 전쟁의 본질을 현실적으로 이해했다. 싸움에는 언제나 손실이 따른다. 이긴 쪽도 상처를 입고, 진 쪽은 모든 것을 잃는다. 남는 건 폐허와 피로뿐이다. 그렇기에 그는 싸움을 ‘최후의 수단’으로 여겼다.
싸움에서 가장 현명한 승자는 상대가 싸울 필요를 느끼지 않게 만드는 사람이다. 무력을 쓰지 않고 상대의 의도와 욕구를 이해해 출구를 만들어주는 것. 그 과정에서 상대가 자발적으로 물러나거나 협력하도록 만든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승리가 아닐까. 이겨도 얻는게 많으니까.
조직 내 갈등도 부부간의 갈등도 모두 마찬가지다. 감정이 앞서면 문제는 커지고, 서로에 대한 이해가 앞서면 싸움은 줄어든다. 조직 내에서 부딪힐 때 논리적으로 상대를 제압했다고 해서 반드시 이겼다고 볼 수 없다. 상대는 원한을 품고, 어떤 식으로든 반격을 노릴 수도 있고 그로인해 상황이 급반전될 수도 있다. 사이다처럼 시원하게 상대를 무너뜨리는 게 반드시 승리라고는 볼 수 없다.
상대를 제압하려 하기보다는 서로가 무언가를 얻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결국 이기는 데 필요한 것은 힘이 아니라 ‘상황을 읽는 눈’이다.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상대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것을 취하는 것. 그게 손자가 말한 승리라고 할 수 있다.
손자는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고 했다. 여기서 말하는 ‘앎’은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이해’를 뜻한다. 상대가 왜 싸우려 하는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아는 것이다. 그 지점에서 대립이 아니라 협력을 모색할 수 있다.
기업 간 경쟁에서도 마찬가지다. 무리한 가격 인하로 시장을 장악하려는 전략은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결국 브랜드 가치와 신뢰를 해친다. 협력이나 상생 모델을 통해 모두가 성장할 수 있는 방향을 찾는 것이 오히려 지속 가능한 이익을 만든다.
예를 들어, 경쟁사끼리 기술을 공유해 시장을 키우거나, 노사 관계에서 서로의 손해를 줄이는 타협점을 찾는 일은 손자가 말한 ‘싸우지 않고 이기는 전략’에 가깝다. 상대를 굴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살아남는 길을 만드는 일이다.
부부나 연인 사이도 마찬가지다. 여행을 떠났는데 무조건 자기가 경험해보고 싶은 걸 하지 않는다고 대결로만 가기보다는 여행의 목적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서로가 좋을 경험을 찾는게 현명하다. 자기 주장만 내세우는 자존심 싸움의 결과는 모처럼 비용과 시간을 들여 떠나온 여행을 에너지 소모로 이어지게 할 수 있다. 심한 경우 관계가 끝나버린다면, 그 싸움에서 이겨서 도대체 무엇을 얻는걸까?
우리의 전장은 더 이상 창과 방패가 아니라, 회의실과 이메일, 그리고 인간관계다. 직장에서는 의견 충돌이, 가정에서는 감정 싸움이, 온라인에서는 끝없는 논쟁이 일어난다. 싸움을 즐기면 결국 소모된다.
서양의 사상가 니콜로 마키아벨리도 『군주론』에서 이렇게 말한다.
진정한 현명함은 싸움을 피할 때 발휘된다.
그는 현실 정치의 냉혹함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무력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는 지도자는 오래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힘으로 상대를 굴복시켜 얻는 승리는 잠시뿐이며, 상대의 마음을 잃으면 결국 다시 싸움을 반복하게 된다. 마키아벨리의 ‘정치적 지혜’ 역시 손자의 병법처럼 싸움의 비용을 계산하는 냉정함에서 출발했다.
진짜 강한 사람은 싸움을 피할 줄 아는 사람이다. 목소리를 높이지 않아도 설득할 수 있고, 이길 수 있는 싸움도 피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는 감정을 다스리고 상황을 읽는다. 상대의 상황과 마음을 이해하여, 이길 수 있는 싸움을 노리기보다는 이길 필요가 없는 싸움을 구분한다.
감정적으로 상대를 제압하면 일시적 쾌감은 얻을 수 있지만, 관계는 무너진다. 반대로 감정을 절제하고 상대의 입장을 인정하면 신뢰가 생기게 된다. 싸워서 이긴 후 얻는 것의 두 배를 얻게 되는 것이다. 싸움에서 이기는 대신 함께 살아남는 길을 찾는 것, 그것이 진정한 고수의 병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