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꿈을 응원하는 모델 박둘선
강렬한 조명핀 아래 빠르게 찰칵이는 셔터, 그리고 시즌 신상품을 몸에 걸치고 한껏 멋진 포즈로 카메라를 고혹적으로 응시하는 모델. 보통 사진작가와 슈퍼모델이라고 하면 이런 이미지가 떠오른다. 여기 화려한 조명, 값비싼 신상 명품, 당연히 뒤따르는 부와 명예를 등지고 자신만의 신념으로 수년째 봉사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멋진 부부가 있다. 당장의 생계가 절박해 변변한 가족사진조차 남기지 못하는 개발도상국 이웃들을 위해 그들의 건강한 모습을 액자에 담아 선물하는 프로젝트이다. 절망의 땅에서 희망을 찍는 '사랑의 가족사진 보내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사진작가 조장석, 모델 박둘선 부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가진 것을 나누고 사랑하리라' 지극히도 평범하고 당연한 말이지만 내가 가진 것을 남에게 내어 주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대부분 시간이 없다는 이유를 첫 번째 이유로 꼽는다. 조장석, 박둘선 부부는 시간이 없다는 말은 핑계에 불과하다고 보기 좋게 비웃는다. '마음이 있는 곳에 시간이 있다'는 명제를 실천하며 세계 곳곳에 그들이 가진 재능을 아낌없이 나누고 있다. 남편 조장석 사진작가는 그의 장기를 십분 발휘해 그의 눈을 통해 세상 곳곳을 따스하게 비추고, 아내 박둘선은 슈퍼모델답게 각종 패션쇼에 선 경험을 바탕으로 바자회를 연다. 이 부부를 움직이게 한 힘은 무엇일까.
'사랑의 가족사진 보내기(One Nation One Family)'
조장석 작가가 과거 세네갈을 방문했을 때. 현지에서 낯선 동양인의 길잡이 역할을 해 준 아리주마라는 친구가 있었다. 아리주마가 태어나자마자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어머니의 얼굴조차 기억하지 못한다고 아쉬워했다. 이 친구의 한마디에 가슴이 뜨거워졌다. 이때 조장석 작가는 그 흔한 가족사진 한 장 갖는 것도 힘든 개발도상국 이웃들을 위해 비영리 NGO단체인 '더멋진세상'과 함께 '사랑의 가족사진 보내기 프로젝트'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사랑하는 가족이 있으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힘을 낼 수 있지 않은가? 가족들이 활짝 웃는 얼굴, 아이들의 밝고 건강한 모습을 찍어서 그들에게 선물하기 시작했다. 인생의 가장 행복한 순간, 진한 추억으로 남을 순간을 프레임에 담았다.
조장석 작가는 지금까지 세네갈, 르완다, 우간다,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5개국을 방문해 천여 가정 이상을 만났다. 그 중 우간다와 인도네시아는 두 번씩 방문했다. 잦은 해외 출입이 지칠법도 하지만, 이상하게도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현지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유의 건강한 에너지가 그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르완다에서 있었던 일이다. 촬영 중 우연히 생명이 위독한 할머니를 만났다. 급히 현지 의료봉사팀에 이송했다. 빠른 치료 덕분에 극적으로 살아날 수 있었다. 나와 의사선생님을 바라보던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감사와 기쁨, 안도, 미안함이 뒤섞인 표정이었다.”
빈곤포르노에 염증 느껴 '예술작가'로 변모
조장석 작가는 패션을 전공하고 패션회사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다 뒤늦게 중앙대학교 사진학과에 입학해 광고사진을 전공했다. 졸업 후 20년 동안 패션과 광고를 촬영했다. 패션 사진을 찍을 동안에는 자기도 모르게 보다 자극적인 사진을 추구했다. 자극적인 사진만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고 더 많은 돈을 불러들였기 때문이다.
2010년, 이스라엘 방문이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세상 속에서 성공과 명예만을 추구하며 불나방처럼 살았던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3년 동안 “Eastern Promise”라는 주제로 이스라엘의 다양한 모습을 촬영했다. 돈을 받고 광고주가 원하는 콘셉트의 사진을 찍는 것이 아닌 그가 원하는 사진을 찍기 시작하면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희열을 느꼈다.
개발도상국 이웃들을 만난 이후에는 완전히 상업작가에서 예술작가로 전향했다. 르완다, 우간다 이웃들은 분명 빈곤하다. 당장 끼니를 걱정하느라 내일을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이다. 하지만 그곳의 아이들은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다. 조장석 작가는 그들의 웃음 속에서 뜨거운 희망을 발견했다.
“스스로 더이상 진흙탕으로 빠져드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상업작가로서 더 성장할 가능성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과감하게 멈췄다. 지금은 빈곤국가 이웃들의 환한 모습을 찍는 일이 훨씬 더 마음 편하고 즐겁다.”
NGO 단체라고 하면 흔히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구정물 떠먹는 아이라던가, 피골이 상접한 아이라던가. 그런 사진을 소위 ‘빈곤 포르노’라고 한다. 조장석 작가는 그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불쌍하고 처참한 사진을 보고 사람들로 하여금 지갑을 열게 만드는 게 아니라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전할 수 있는 밝고 건강한 사진을 찍고 싶었다.
그동안 그가 찍은 사진들을 보면 극적인 효과를 노리기 위해 의도한 사진은 하나도 없다. 온통 밝게 웃고 있는 아이들 천지다. 값싼 동정심을 거부하고 오로지 사진 한 장으로 한줄기 희망을 선물한다.
가족사진은 아름다운 추억일 뿐 아니라 고통을 견디게 하는 가족의 힘이다
조장석 작가가 생각하는 가족사진은 단순한 가족사진의 의미가 아니라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시대, 역사, 문화의 기록이다. 가족사진을 받아들고는 마치 세상을 모두 가진 것처럼 기뻐하는 그들을 볼 때 큰 보람을 느꼈다. 몸은 고되지만 촬영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은 늘 가뿐했다. 마치 영혼이 치유받고 회복되는 느낌이랄까.
아쉬운 점도 있다. 다양한 나라를 방문해 촬영을 하고, 가족사진을 선물하고, 전시회를 하려면 기업이나 정부의 지원이 절실하다. 천여 가족 이상의 사진을 찍었지만 비용의 문제로 가족사진을 전달하지 못할 때가 가장 가슴아프다. 조장석 작가는 '사랑의 가족사진 보내기(One Nation One Family)' 운동이 단발성 행사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이어지려면 정부는 물론 다양한 민간 기업의 참여가 필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가족이란 인내, 희생, 용서, 사랑, 감사, 희망의 대상
그는 사실 모델 남편으로 더 유명하다. 그의 아내는 1998년 슈퍼엘리트모델 1위로 화려하게 데뷔한 모델 박둘선이다. 데뷔 한 다음해(1999년) 바로 결혼했다. 정상의 자리에서 돌연 결혼을 선택해 대중을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다. 조장석, 박둘선 부부는 결코 성급한 판단은 아니었다고 입을 모은다. 서로가 있어 성장할 수 있었고 나아가 현재 진행 중인 '사랑의 가족사진 보내기(One Nation One Family)' 운동도 가능했다. 그들이 생각하는 가족이란 '인내, 희생, 용서, 사랑, 감사, 희망'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21년차 부부의 일상은 여느 부부와 다름없이 여행과 영화, 공연, 전시회 관람을 즐기는 평온한 일상이다. 그러나 서로에 대한 애정과 관심 만큼은 여전히 뜨겁다. 무엇보다 각자 자기계발을 게을리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모습이 서로에게 훌륭한 자극제가 된다고 말한다.
사회 공헌과 나눔에 앞장서는 부부
아내 박둘선은 슈퍼모델모임인 아름회가 주최하는 '입양아 돕기 자선 바자회'에 꾸준히 참여하고 있다. 대한사회복지회와 인연을 맺어 매달 넷째주 일요일에 입양을 기다리는 아이들을 돌보는 봉사를 해왔고, 그 외에도 사진전, 바자를 비롯한 기금 마련 행사에 빠지지 않았다. 갓 태어난 신생아부터 유년기에 이르는 아이들까지 입양이나 가족을 기다리는 아이들을 위탁해 맡아주는 수용보호 시설부터 위탁 가정, 장애로 인해 입양이 어려운 아이들까지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는 아이들을 위해 주저없이 달려갔다. 또 국내 유일의 소아 조로증 환아 홍원기 군을 돕기 위해 함께 화보를 촬영하고 플리마켓, 온라인 홍보 등 적극적인 지원 활동에 나서기도 했다. 작년에는 연예인 봉사단체 길(GIL)미니스트리 일원으로 '아이티 심장병 환아 돕기 바자회'에 동참했다.
다른 사람이 차린 밥상에 숟가락만 얹었을 뿐이라며 손사레를 치는 박둘선. 칭찬받아 마땅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극구 부끄럽다고 말한다. 요란하게 알려지는 대신 꾸준한 선행으로 진심을 전하는 것이 최선이라 믿기 때문이다. '내가 이 사회에 어떤 보탬이 될 수 있을까?'를 늘 고민하고 가진 재능을 적극적으로 내어 놓는 그녀의 추진력에 박수를 보낸다. 더불어 서로를 '무엇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임에도 불구하고'라는 전체 하에 상대를 이해하려는 부부의 노력이 인상적이다. 이들 부부의 모습을 보면서 선한 영향력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조장석 작가의 사진에서는 유난히 가족애 진하게 녹아있다.
'남북 이산가족 사진 전시회' 기획
조장석 작가는 앞으로 남한과 북한의 이산가족 사진을 촬영해 DMZ와 평양, 서울, 나아가 세계 순회전시까지 하고 싶다고 수줍게 밝혔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 된 <인간가족 사진전 The Family of Man>처럼 인간의 아름다움과 삶의 본질을 생각하게 하는 사진을 기록하고자 한다. 역사의 한 페이지를 기록하는 사진작가로서의 역할에 충실함은 물론 전 세계에 남북 분단의 아픔을 알리고, 가족의 존엄성을 일깨우는 값진 역할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최종적으로 세계 순회 사진전을 열어 나의 가족사진이 한 알의 밀알이 되어 풍성한 열매를 맺어 지구촌이 사랑과 행복으로 가득 찬 멋진 세상으로 변화되기를 간절히 소망해본다.”
아내 박둘선은 언제나처럼 그의 곁을 지키며 모델로서 사회에 봉사할 수 있는 일을 계속할 것이다. 화려한 패션을 즐기는 남자와 무난한 단색 패션을 선호하는 여자. 록(Rock) 음악을 좋아하는 남자와 클래식(Classic) 음악을 즐겨 듣는 여자. 이렇게 서로 취향과 성격이 다른 남녀이지만 한 번도 내 짝이 아니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서로 같은 곳을 바라보면서, 같은 꿈을 꾸기 때문이다.
조장석 작가는 예술작가로 전향한 후 수입이 예전에 비해 크게 줄었을 때 채근하지 않고 묵묵히 응원해준 아내가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고 말한다. 아내 박둘선은 맛있는 것 먹고, 잠잘 곳 있고, 배우고 싶은 것 배울 수 있는 정도면 충분하지 더 이상의 욕심은 없다고 말한다. 또한 그들이 가진 재능을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보다 더한 행복은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로를 다독이며 소신있는 행보를 이어가는 이들 부부의 꿈을 응원한다.
*S.CASA (New York 문화.예술 스토리 매거진) 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