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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이 주목하는 멀티 크리에이터, 조던 종원 리

Jourdain Jongwon Lee

by 끌로이

예술의 중심지 뉴욕이 주목하는 멀티 크리에이터

조던 종원 리(Jourdain Jongwon Lee)



흔히 미국을 인종의 용광로라고 한다. 다양한 인종이 뒤섞여 다양한 문화와 언어가 공존하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뉴욕은 예술의 용광로라 일컬어진다. 오늘날 뉴욕이 문화예술 중심지라 불리는 배경과 일치한다. 뛰어난 세계 예술가들이 모여 무한 경쟁을 벌이는 잔인한 도시이기도 하지만 생각을 조금만 비틀어 보면 뉴욕의 수많은 예술 경쟁자들을 예술 동반자로 선택해 집단창작을 이루는 훌륭한 토양이 되기도 한다.

조던 종원 리는 뉴욕이라는 비옥한 예술 토양 위에 조각, 그림, 여행, 교육의 씨앗을 뿌리고 부지런히 물과 비료를 주는 중이다. 기특하게도 저마다 조금씩 싹을 내고 열매를 맺었다. 작은 텃밭에서 이뤄낸 성과가 꽤 쏠쏠하다. 예술 농사의 재미를 톡톡히 본 조던 작가는 앞으로 텃밭을 넓히고 씨앗 개수를 늘려나갈 계획이다. 뉴욕의 젊은 농부, 조던 작가의 예술 이야기를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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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한 크리에이터가 되고파

한국에서 대학을 나온 뒤 뉴욕에 정착한지 9년째, 지난 9년은 노력과 환희의 연속이었다. 그의 이력을 보고 있노라면 '세상에 이보다 더 부지런한 작가가 있을까' 싶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만들어내며 조각가 본연의 역할에 충실했고, 일 년에 두 번 이상 매번 다른 작품으로 전시회를 열었다. 무언가를 꾸준히 창작해 내기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늘 머릿속이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가득한 그였기에 꾸준한 작품 활동이 가능했다.

그의 독특한 작품세계는 대학원 재학 중 발표한 시리즈에서 일찌감치 발현됐다. 게껍데기를 쌓아 올려 조각을 만든 작품이다. 부제는 크랩 가디언(Crab Guardian). 게껍데기 소재에서 의외의 결과물이 나온데 대해 많은 사람들이 감탄했다. 전시할 때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안타깝게도 작품이 팔리지는 않았지만 그 작품 이후 버려진 것들에 관심을 갖게 됐다. 졸업 후 첫 시리즈가 고철을 이용한 골렘(Golem)이었다. 고철과 나무, 가죽, 페인트 등 재료가 주는 신선함에 매료돼 한동안 골렘 시리즈 제작에 집중했다. 게껍데기를 쌓아 올릴 때보다 작업 과정은 훨씬 수월했다 용접이나 재료에 대한 제약이 덜하다보니 만드는 과정 또한 당연히 즐거웠다.

조던 작가의 작품은 상품성이 뛰어나다. 그말은 곧 대중들에게 인기가 좋고 잘 팔린다는 뜻이다. 대학원 졸업 후 지금까지 했던 작품은 거의 다 팔렸다. 안 팔리더라도 그는 애써 자기 작품을 간직하려고 하지 않는다. 일부러 기증하기도 한다. 자식으로 치면 여러 곳에 유학 보내는 셈이다.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라고는 따로 없다. 내가 만든 작품들이 적절한 장소에 가있으면 이미 그것만으로 나는 괜찮다.”


조던 종원 리를 딱잘라 뭐하는 사람이라 설명하기가 어렵다. 조각가이자 설치미술가, 화랑 대표 정도가 그의 대표 직업이다. 직업이 여러 개인 이유를 묻자 특별한 이유는 없다며 겸연쩍게 웃는다. 예술과 친구를 사랑하는 그의 성격과 치열한 뉴욕 경쟁사회에서 성공하고자 했던 그의 열망이 맞물려 멀티 크리에이터 조던 종원 리가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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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들의 요람 'Space776'

처음부터 집단 창작을 염두에 두지는 않았다. 한국에서 온 소수민족 예술가가 뉴욕에서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공동 기획, 공동 창작, 공동 전시라는 선택지를 집어 들었고, 그의 선택은 탁월했다. 그렇게 탄생한 곳이 Space776이다. 그는 브루클린에 작은 스튜디오 하나를 빌렸고, 그 곳에서 친구들과 함께 작품을 만들었다. 완성된 작품을 상품으로 만들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다. 포트폴리오를 옆구리에 끼고 운동화 밑창이 닳도록 화랑 담당자들을 만났다. 어렵게 얻은 전시 기회도 자리 배치가 아쉬운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래서 그는 마음 맞는 친구들끼리 모여 우리에 의한, 우리를 위한 전시를 열기로 했다. 2013년에 시작한 Space776이 이제는 제법 많이 알려져 신진 작가들의 요람으로 자리 잡았다. 지금까지 Space776에서 기획한 전시만 100여 회, 거쳐간 작가들은 2백 명이 넘는다.

Space776 탄생 비화가 재미있다. 브루클린 부시윅 지역 오픈 스튜디오 행사를 계기로 그가 살던 지하와 1층을 모두 전시공간으로 바꿔버렸다. 지하로 들어가는 철문을 아예 개방하고 친한 작가들을 모아 기획하고 전시하는 모임을 갖기 시작했다. 전시는 한 달에 한번 정기적으로 이뤄졌는데, 전시 당일에는 수백 명이 그의 집을 찾아 북새통을 이뤘다. 세들어 사는 입장에서 주인 눈치가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2년 만에 쫓겨나다시피 부시윅을 떠날 수밖에 없었지만 그가 처음 공동 전시를 시작한 그곳의 진한 추억을 잊을 수 없었다. 776은 바로 그때 그가 살던 집 번지수이다. 친구들끼리 “776으로 모여!” 말했던 습관이 입에 붙어 지금의 자리로 화랑을 옮긴 후에도 그대로 Space776으로 불린다.

친구들 사이의 은밀한 아지트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화랑의 모습을 갖추고 난 후부터는 꾸준히 주요 아트페어에 참가하고 있다. 당장 이달 초 아모리 위크(Amory week) 기간 중 볼타쇼(Volta NY)에 Space776 작품이 처음으로 나간다. 그의 화랑에서 오랜 시간 동고동락했던 김종민(Jongmin Joy Kim) 작가의 작품을 출품한다. 또 4월과 5월에는 뉴욕, 홍콩, 한국 등지에서 열리는 아트페어에 참여한다. 작가의 작품은 대중과 만났을 때 그 가치를 인정받는 법. 그런 의미에서 이번 아트페어는 조던 작가에게 특별하다. 그는 한국 작가들의 작품을 세계에 알리고 가능성을 엿보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아트페어에서 신진 작가들 역량 발휘되길

재력가의 후원이나 정부 차원의 지원이 있어야만 가능했던 신진 작가 발굴사업이 어떻게 그의 손에서 가능했을까? Space776을 운영하는데 조던 작가만의 재미있는 철학이 있다. 그가 만들어 그가 운영하는 화랑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절대 자신의 작품을 걸지 않는다. 다른 예술가를 위해 판을 깔아주는 정도의 역할에서 멈춘다. 본인 작품을 걸어 화랑을 사유화하는 순간 다른 작가들에게 집중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신 그의 작품은 다른 곳에서 딜러나 큐레이터를 통해 열심히 전시한다.

이런 그의 노력이 서서히 값진 결실을 맺고 있다. 이달 말, 아트바젤 홍콩 전시를 시작으로 4월에는 부산에서 전시가 예정돼 있다. 이후 줄줄이 아트페어에 참가한다. 다른 예술가들과의 협업도 주저하지 않는다. 5월, 부산에서 열리는 아트부산에는 뉴욕 전시그룹인 언커먼 뷰티(Uncommon Beauty)와 합동으로 참가한다. Space776의 문턱을 낮추고 집단 창작에 유연하게 대응한 그의 경영 능력이 빛을 발한 결과다.


Space776, 예술 창작소 역할도

Space776은 계속 변하고 있다.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화랑으로서의 역할에 더해 작가들이 먹고 자면서 편하게 작품을 만드는 작업실의 역할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그의 화랑을 거쳐간 대부분의 작가들이 레지던시 스튜디오에 머물렀다. 18 세 이상 비주얼 아티스트는 누구든 학력, 지역 상관없이 레지던시 스튜디오를 신청할 수 있다. 그림, 사진, 조각, 인쇄물, 디자인 할 것 없이 그저 예술이면 된다. 조던 작가가 이렇게 그의 화랑을 적극적으로 개방하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9년 전, 처음 뉴욕에 발을 디뎠을 때 한국에서 온 무명의 예술가가 설 자리는 너무나도 비좁았다. 조각 예술이 좋아 무작정 뉴욕으로 왔지만 냉혹한 현실에 절망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런 시린 경험을 다른 예술가들에게는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특히 뉴욕의 살인적인 물가는 이방인 예술가들을 더욱 쓸쓸하게 만든다. 그래서 그들에게 최소한의 잠자리, 작업공간, 그리고 완성된 작품을 전시할 공간까지 통째로 제공하고 싶었다.

그의 바람은 이제 어느 정도 이뤄진 듯 보인다. 이미 Space776은 실력 있는 신진 작가들의 작품을 사려는 사람들로 늘 붐비니 말이다.


그의 꿈은 점점 완성형을 향해 간다. 앞으로는 Space776이 전시한 콘텐츠와 뉴욕, 브루클릭 콘텐츠들을 모아 다큐멘터리 영상을 만들 계획이다. 백 마디 말보다 1분짜리 짤막한 영상이 더 효과적인 시대다. Space776과 함께 하는 작가들을 한명씩 영상으로 담아 작품과 예술가를 동시에 보여줄 예정이다. 지금까지 이런 화랑은 없었다. 예술가 작업실 지원, 작품 전시에 다큐멘터리 영상 제작까지.


“아무도 하지 않는 일을 찾아 하는 재미가 있다. 새로운 형식의 전시 공간을 만들려고 한다. 예술, 문화 경험에 대한 종합적인 서비스를 하려고 한다.”


Space776 같은 화랑을 한국에 만들 계획도 있다. 뉴욕의 Space776이 주로 한국계 작가들의 뉴욕 데뷔를 돕는 산파 역할을 했다면, 한국의 Space776은 미국 신인 작가를 한국에 소개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예술 저변을 넓히고 다양한 소통 창구를 마련해 두 나라 예술가들을 동시에 양성하기 위함이다. 이쯤되면 조던 작가는 타고난 사업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벌이기 좋아하는 조던 작가답게 벌써 그의 수첩에는 올 한해 계획이 빽빽하게 들어차있다. 신나게 포부를 설명하는 그의 목소리에서 굳은 확신이 느껴졌다. 조던 작가는 몇 년 뒤 Space776을 다시 취재해 달라고 말한다. 지금보다 훨씬 크게 성장한 화랑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공언한다. 그의 말이 왠지 허공의 메아리처럼 들리지는 않는다. 앞으로 예술가로서의 조던 종원 리, Space776 운영자로서의 조던 종원 리, 그리고 뉴욕 예술시장을 움직이는 멀티 크리에이터로서의 조던 종원 리의 모습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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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던 종원 리 (Jourdain Jongwon Lee)

Director and Founder of Space 776 2014 - 2018

Director of Jourdain Studio


학력

New York, USA C. W. Post Long Island University, MFA, Sculpture 2011 -2013

Seoul, Korea Sangmyung University BFA, Sculpture 2002 – 2008


수상

2012 Bank Asiana Artist Grant, New York

2012 O’Marley Grant Long Island University, New York

2014 Proclamation 7th Annual Jersey City Invitational Art exhibition New Era, Office of the Mayor, City of Jersey City, N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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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전시

“Golem” – Back to the machine age, BCS Gallery, Long Island City, NY 2014 Jan 10

“Golem”- The age of shaman kings, Space 776, Brooklyn, NY 2014,May 30


공동전시

8th Annual Jersey City Invitational Art exhibition New Era, Jersey City Hall, Jersey City, NJ 2015

9th Annual Jersey City Invitational Art exhibition New Era, Jersey City Hall, Jersey City, NJ 2016

Ghost of Inanimate, Curated by Iron Gate East, South Hampton Social Club, South Hampton, NY 2018 등 다수



*S.CASA (New York 문화.예술 스토리 매거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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