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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은 자신있는 태도와 미소에서 나온다”

베네피트 글로벌 홍보 & 커뮤니케이션 매니저 이솔

by 끌로이


“아름다움은 자신있는 태도와 미소에서 나온다”

베네피트 글로벌 홍보 & 커뮤니케이션 매니저 이솔


봄은 여자의 입술에서 온다. 유난히 길고 지루했던 겨울이 드디어 지났나보다. 거리에서 마주치는 여자들의 입술색이 유난히 쨍하게 맑다. 코끝을 스치는 바람이 아직은 알싸할지언정 여자들의 입술과 볼에는 선홍빛 봄이 내려앉았다.

계절과 해가 동시에 바뀌는 연초, 화장품 회사가 가장 바쁜 시기이다. 계절을 앞서 신제품을 내놓아야 하고, 한 해 유행을 미리 점쳐야 한다. 미국의 권위 있는 색채 연구소 팬톤(Pantone)은 올해의 색깔로 ‘리빙 코랄(Living Coral)’을 선정했다. 화장품 브랜드들은 저마다 앞 다퉈 잘 익은 자몽을 닮은 리빙 코랄 색조 화장품을 출시하고 있다. 온 세상이 산호빛으로 옷을 갈아입을 때 홀로 유행을 거부하는 독특한 화장품 브랜드가 있다. 달리기에 비유하자면 함께 뛰는 주변 경쟁자들을 둘러볼 필요는 있지만 절대 치우쳐서 따라하지는 않는다는 콧대 높은 철학이다. 이 글로벌 화장품 브랜드의 도도한 홍보 전략이 전 세계 여성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우수한 제품과 똑똑한 마케팅이 만나면 브랜드 가치는 걷잡을 수 없이 높아진다. 그 이면에 똑소리나는 재치만점 마케팅으로 베네피트를 오늘날 최고의 화장품 브랜드로 이끈 한국인 홍보매니저가 있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베네피트 본사 최초의 한국인 글로벌 홍보 매니저 이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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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 소리 나는 일처리로 본사가 인정한 인재

그녀의 하루는 밤사이 세계 지사에서 쏟아진 전자 우편을 확인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베네피트 코리아, 베네피트 영국 등 브랜드가 진출해 있는 나라만 해도 53개국, 각 지사에서 한 통씩만 보내도 벌써 53통의 편지가 쌓인다. 요구 사항도 다양하다. 주로 추가 보도자료를 요청하는 경우가 다반사고, 특정 프로젝트에 필요한 본사의 협조를 구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일일이 답변서를 쓰다 보면 꾀가 날 법도 하다. 중요하지 않은 업무는 내일, 모레, 오후에. 이런 식으로 자꾸 미루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리 자잘한 내용이라도 그녀는 그 자리에서 즉각 답장을 보낸다. 그것이 본사 글로벌 홍보 매니저로서의 역할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세계 지사와 소통하며 홍보를 지원하다보면 오전 시간이 훌쩍 지난다.


그녀에게는 오랜 습관이 있다. 아무리 피곤하더라도 전자 우편을 확인한 자리에서 즉각 답변하기, 그리고 영어로 작성한 답변서는 반드시 소리 내서 다시 읽어보기.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한국인 매니저에게 영어로 업무를 처리하는 일은 매일이 도전의 연속이다. 이렇게 소리 내서 읽어보면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실수를 잡아내기 수월하다. 해야 할 일들은 개인 수첩에 적는다.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하면서 일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이미지 트레이닝을 해본다. 이렇게 해야 정해진 시간 안에 빠뜨리는 일 없이 꼼꼼하게 업무 처리를 할 수 있다. 컴퓨터만 켜면 전자 메모가 가능한 세상이다. 심지어 얼마든지 깔끔하게 수정, 추가가 가능한데 그녀가 굳이 수기로 종이에 적어가면서 일하는 이유가 뭘까.



저만의 방식이에요. 해야 할 일들을 적어 두고 달성할 때마다 형광펜으로 하나씩 지워나가는게 성취감이 있어요. 그래서 더 열심히 할 일을 만들고, 더 열심히 달성해나가죠. 일의 능률을 높일 수 있는 좋은 방법입니다.


기회는 준비된 사람에게 온다

똘똘하게 일 처리하는 모습을 보니 그녀가 어떻게 글로벌 브랜드 본사 자리에 앉아 있는지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솔 매니저가 처음부터 샌프란시스코 본사 글로벌 마케팅팀에서 일한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사실 베네피트 한국지사에서 일하던 직원이었다. 홍보팀에서 4년 동안(2010-2014) 대리, 과장을 거쳐 홍보팀 팀장까지 차근차근 승진했다. 그때가 한창 전 세계적으로 브랜드 인기가 높아지는 시기였고, 덩달아 본사 규모가 눈에 띄게 성장했다. 글로벌 마케팅의 역할이 커지면서 본사에서 글로벌 홍보를 전담할 새로운 팀(Global PR & Communications)을 기획했고, 이 자리에 이솔이 지원했다. 어찌 보면 운명적인 기회였다. 한국지사에서 근무할 때만 해도 본사에 진출하려는 꿈은 없었다. 그런데 우연히 기회가 생겼고, 언제나 그랬듯이 적극적으로 기회를 잡았다.


샌프란시스코 본사에서 새로운 홍보팀을 꾸리면서 염두에 둔 것이 바로 '홍보 경력은 있되, 미국인이 아닌 인재를 뽑자'였다. 브랜드 스스로 미국이라는 우물을 깨고 나와 아시아, 유럽 시장의 문을 본격적으로 두드리기 위함이었다. 특히 아시아에서 인기가 눈에 띄게 높아지고 있어 미국인이 아닌 외국인의 시각으로 홍보를 전담할 담당자가 필요했다. 이솔은 채용 계획을 듣자마자 이력서를 정리해 보낸 뒤 본사 채용 팀과 2시간이 넘는 긴 화상 면접을 봤다. 주로 일처리 하는 방식, 순서, 신제품이 나왔을 때 홍보자료를 만들어 배포하기까지의 과정 등 실무에 대한 질문이었다. 또 전 세계 홍보팀을 총괄할 자리인 만큼 회의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다른 팀의 협조가 필요할 때 어떤 식으로 의견을 묻고 일정을 조율할 것인지를 묻기도 했다. 매일 하던 일이라도 설명하자면 말문이 막히기 마련이다. 까다로운 질문에도 이솔답게 당차게 대답했다. 이후 8단계의 임원 면접을 모두 통과하고 오늘날 베네피트 샌프란시스코 본사 글로벌 홍보 매니저가 됐다.



본사에서 근무할 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운 적은 없었어요. 하지만 제안이 들어왔을 때 도전하고 싶었어요. 한국이라는 큰 마켓에서 근무한 경력을 활용해 더 큰 시장에 적용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거든요. 기회는 언제든지 찾아옵니다. 그래서 늘 잡을 준비를 하고 있어야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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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다로운 채용 절차를 단번에 통과한 비결이 뭘까? 당시 본사 글로벌 홍보팀에서는 이미 한국지사에서 일하는 이솔 팀장을 알고 있었다. 본사에서 세계 53개국 지사에 각각 업무 협조를 요청했을 때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응답하는 사람이 한국의 이솔 팀장이었다. 당연히 눈에 띌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솔은 한국 소비자만을 대상으로 하는 국내 행사라 할지라도 매번 보고서를 만들어 본사에 보냈다. 본사에서 응답이 있든 없든, 단 세줄 짜리 간단한 내용이라 할지라도 늘 보고서를 썼다. 그렇게 본사에 이솔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비법이 뭐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이솔은 담담하게 말한다.



그냥 제자리에서 맡은 일 열심히 하세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것 같아 당장은 속상할 수 있지요. 하지만 내가 얼마나 열심히 일하는지는 결국 성과로 드러나요. 결정적인 순간 존재감이 빛나죠.




미국에 K-beauty를 전도하는 역할도

한국 유학생이나 교포가 본사에 입사하는 경우는 있어도 이솔 매니저처럼 한국지사에서 본사로 발령 난 경우는 처음이었다. 그녀를 칭할 때 최초, 처음이라는 수식어가 뒤따르는 이유다. 본사에서도 한국에서 온 홍보 매니저에 대한 기대가 남달랐다. 아시아 뷰티 시장을 흔히 '금맥'이라 표현한다. 잠재된 가능성이 높은데다 한번 유행이 시작되면 그야말로 광풍이 불기 때문이다. 한국 시장이 특히 그렇다. 그녀가 3년 반 전 처음 이곳에 왔을 때만 해도 K-beauty는 중국, 일본 등 아시아권 바람에 지나지 않았다. 이내 유럽과 미국에서 한국의 뷰티 스타일을 따라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제품 출시 전 모델 화보 촬영을 진행할 때 한국식 메이크업과 헤어를 참고해 촬영하는 경우도 많다. 한국의 뷰티는 이제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 뷰티 트렌드의 기준이 되고 있다. 한국발 K-beauty 인기 덕에 제품 개발 단계에서부터 한국인들이 좋아하고 사랑하는 스타일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지는 제품들이 있을 정도다. 팀에 한국 뷰티 동향만을 조사하는 직원도 따로 있다. 한국에서 온 이솔의 의견을 우선 묻고 적극 반영하기도 한다.


이쯤 되면 이솔은 한국을 대표해 미국에 파견된 뷰티 전도사인 셈이다. 그녀가 K-beauty 열풍을 몸소 체감하는 순간은 따로 있다. 동료들은 그녀가 뷰티 강국 한국에서 왔다는 이유만으로 화장품에 대한 지식과 기술이 엄청 풍부할 거라고 생각한다. 발령 초기에는 “한국 여자들은 세수하고 나서 기초를 9가지나 바른다면서? 너도 그렇니? 화장품을 사는데 한 달에 얼마를 쓰는 거야?” 같은 질문을 수도 없이 받았다. 미용 분야에서 한국 여성들이 어떻게 인식되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녀의 주요 업무는 홍보이거늘 엉뚱하게 제품개발팀에 불려가기도 했다. 아시아 여성들은 어떤 립스틱 색을 좋아하는지 조언을 구하고, 제품 질감과 성능을 이솔에게 시험했다.



“K-pop 스타처럼 메이크업을 할 때 가장 중점을 둬야하는 것인 무엇인지, 밝은 립스틱 컬러를 선호하는 한국인들이 자연스러운 밝은 립 연출법은 무엇인지, 자연스럽지만 완벽하게 피부를 커버하는 한국인들의 피부 메이크업 비법은 무엇인지,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미 전문가 대접을 받아요.”



같은 이유로 회사 동료들은 그녀가 가지고 다니는 화장품 가방에 대해서도 호기심이 많다. 베네피트 사원이라 해도 모두 자사 제품만 사용하지는 않는다. 게다가 뷰티 전문가들이 모인 사무실에서는 다양한 제품을 발라보고 서로 의견을 나누는 일상이 자연스럽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뿌듯하다. 늘 가지고 다니는 화장품 가방 안에 한국 제품이 세 가지나 된다. 동료들은 그녀의 화장품 가방을 엿보면서 자연스레 한국 화장품들을 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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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롭고 적극적인 미국 회사 분위기에 놀라

한국에서 4년, 미국에서 4년. 이솔은 어느덧 8년차 사원이다. 같은 브랜드 회사이지만 두 나라의 회사 문화는 많이 다르다. 미국 본사에서는 개개인을 모두 '전문가'로 인식한다. 직급이나 나이, 경력과 관계없이 스스로 자신이 맡은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가로 생각한다. 이제 막 직장 생활을 시작한 막내 사원의 의견에도 임원들이 귀를 기울이고, 실제로 그들의 아이디어가 현실화되기도 한다. 어른 앞에서는 말 끊지 말고 잠자코 들어야 한다고 배운 이솔에게 그것은 꽤나 충격적인 모습이었다. 게다가 어린 신입 사원이 회의 중간에 큰 소리로 주장을 펴는 일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자칫하다가는 '나댄다'는 핀잔을 듣기 일쑤였다. 그러나 본사의 회의 풍경은 사뭇 다르다. 적극적으로 의견을 말하는 사람을 오히려 '창의적'이라고 평가한다.


일 년에 한번 주요 제품 런칭을 위한 글로벌 런칭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일도 이솔의 주요 업무 중 하나이다. 53개국 제너럴 매니저들과 본사 임원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중요한 시간이다. 언뜻 임원이 참석하는 자리라고 하면 딱딱할 거라는 생각이 들지만 이 회사의 컨퍼러스는 3일짜리 거대한 축제이다. 특히 올해 컨퍼런스는 다른 브랜드로 자리를 옮기는 장 앙드레 루조(Jean-Andre Rougeot) 사장의 송별회를 겸한 자리였다. 이날 직원들의 드레스 코드는 '사장처럼 입기'. 늘 남색 조끼를 입고 일하는 그의 취향을 따라 컨퍼러스에 참석한 모든 직원이 남색 조끼를 차려입고 루조 사장의 상징인 대머리 가발을 썼다. 한국 기업이었다면 대머리 사장을 욕보이는 일이라며 감히 상상조차 못했을 일이다.


서로 다른 회사 문화에 적응하는 과정은 힘겨웠다. 버릇없음과 적극성의 경계가 무엇인지 헷갈렸고, 한국인 특유의 영어 억양을 비웃지 않을까 고민했다. 본사 근무 3년 반 만인 요즘에서야 그녀는 편안해졌다고 말한다. 완벽한 영어를 써야 한다는 강박에서 자유로워졌고, 회의를 주도하는 일도 자신감이 붙었다. 낯설기만 했던 샌프란시스코를 이제는 편안한 우리 집이라고 부른다. 매일의 일상이 이제 조금 익숙해졌다.



VLOG로 고객과 소통하는 유쾌한 홍보 매니저

늘 새로움을 찾아 당차게 내딛는 이솔답게 작년부터 유튜브 채널에 '샌프란시스코 본사 언니'라는 이름으로 브이로그(Vlog, vedio+blog:일상 동영상)를 연재하고 있다. 처음에는 한국에 계신 부모님께 샌프란시스코 생활을 보여 드리고자 시작했던 브이로그가 어느새 미국 직장생활을 현실적으로 보여주는 직장인 생활기로 자리 잡았다. 그녀와 마찬가지로 해외에서 일하고 있는 직장인들에게는 작은 위로를, 해외 취업을 꿈꾸는 지망생들에게는 진심어린 조언을 건네고 있다.


글로벌 브랜드 홍보 매니저로서 새로 출시된 제품을 홍보하는 데에도 브이로그를 적극 활용한다. 제품이 새로 나오면 평소에 여러 번 테스트를 거치고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홍보를 담당하는 본인이 그 제품을 가장 사랑해야 다른 여성들에게도 사랑받을 수 있다는 믿음에서다.



“웃음이야말로 최고의 화장품이죠. 제품으로 예뻐지는 데에는 한계가 있어요. 화장은 작은 눈을 조금 더 선명하게, 엷은 입술색을 더욱 생기 있게 보이도록 도움을 주는 역할에 그칠 뿐 실제로 예뻐지려면 여성 스스로가 자신감을 갖고 화장하는 과정을 즐겨야 합니다.”



그녀의 역할이 새삼 색다르게 다가온다. 알면 보인다 하지 않던가. 그녀가 하는 일과 꿈, 열정을 들여다보고 나니 그녀는 단순한 홍보 매니저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이솔은 오늘도 운동화 끈을 조여매고 새벽같이 길을 나선다. 그녀의 바람대로 샌프란시스코 본사에서의 값진 경험이 앞으로 코리안 뷰티인(korean beauty specialist)으로 거듭나는 밑거름이 되기를 소망한다.






*S.CASA (New York 문화.예술 스토리 매거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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