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미국에 간다고 했을 때 주변 친구들의 반응은 두 가지였다. “헬조선을 벗어나다니 좋겠다. 부럽다”고 말한 사람들이 대다수였고, “고생스러울 텐데 열심히 살아”라고 현실적인 조언을 해주는 사람들은 일부였다. 도대체 무엇이 부럽다는 말인가. 내 또래 젊은 여자들의 시선에서는 육아와 교육, 복직에 대한 부담이 한국보다 상대적으로 덜한 미국이 천국이다.
최근에는 강남역 묻지마 살인,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 같은 굵직한 사건 사고가 계속되고 있다. 희생자들의 죽음이 안타까우면서도 동시에 부끄럽기도 했다. 우리 사회의 치부가 고스란히 드러난 사건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건을 다룬 기사에는 어김없이 ‘헬조선 이민가고 싶다’라는 댓글이 달린다. ‘헬조선’이라는 표현도 끔찍한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민을 열망하고 있다는데 더욱 놀랐다.
<한국이 싫어서>(사진)는 제목 그대로 한국이 싫어서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두고 호주로 이민간 사정을 들려주는 장강명 작가의 소설이다. 주인공 계나는 한국에서의 익숙한 불행보다 호주에서의 낯선 행복을 택했다. 가진 게 없어도 행복해질 수 있지만 미래를 두려워하면서 행복해질 수는 없다는 이유에서이다. 계나에게 한국은 미래가 없는 답답한 나라였다.
수도권 대학 나온 애들은 지방대 나온 애들 대접 안해주고, 인서울 대학 나온 애들은 수도권대학 취급 안해주고, sky 나온 애들은 인서울을, 서울대 나온 애들은 연고대를 무시하잖아. 그러니까 애들이 다 재수를 하든지 한국을 떠나고 싶어하지.
-장강명 작가의 <한국이 싫어서> 본문 중-
한국사회에서 학벌도 재력도 외모도 평균 이하인 계나가 이민이라는 모험을 통해 자신만의 행복을 찾아 가는 과정은 좌충우돌이었다. 계나는 간절하게 품어왔던 꿈을 이룬 후에 그 만족감을 발판삼아 힘든 현실을 버틸 수 있는 것이 자산성 행복이고 순간 순간이 설레고 행복한 것이 현금 흐름성 행복이라고 스스로 정의했다. 팍팍한 현실을 욕하면서도 달라지기를 두려워하는 자산성 행복을 쫓다 보면 현금 흐름성 행복을 누릴 수 없다고 판단했다.
특히 이 책은 1인칭 독백체여서 읽는 내내 입담 좋은 친구와 수다떠는 기분이 든다. 20대 후반 여성에 대한 상황과 심리묘사가 워낙 섬세해서 당연히 여자 작가가 썼으리라고 여겼지만 이 책은 40대 남자 작가의 글이다. 이민을 만류하는 남자친구에게 계나가 “나는 한국에서도 2등 시민이야. 남자인 너는 이해 못해”라고 말하는 대목이 있다. 장강명 작가는 실제로도 한국 사회가 젊은 여성을 2등 시민 취급한다고 생각해서 사회적 소외 계층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이 책은 반드시 20대 여성의 독백으로 써야 했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이 책이 외국생활을 동경하는 젊은 여성의 허세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는 않다. 계나가 왜 호주로 갈 수 밖에 없었는지를 설득력있게 설명하고 있는데 처음 이민을 생각했을 때에는 “여기선 못 살겠다”는 반항심이 컸다. 하지만 두 번째 호주를 선택했을 때에는 이유가 다르다. “이제 나는 한국을 싫어하지 않는다. 관심이 없을 뿐”이라고 말한다. 계나는 기회를 주지 않는 한국 사회를 거대한 장벽으로 인식하고 좌절하는 대신 한국이 아닌 다른 곳에서 행복한 삶을 찾기로 마음을 고쳐먹은 것이다.
결국 계나의 이야기를 통해 한국이 싫어지면 이민을 선택하라고 종용하기보다 현실을 바꾸려는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설득하는 느낌이다. 한국이 싫어서 이민을 갔을지언정 세상 어느 곳에도 유토피아는 없다. 다만 조금씩 사는 모습이 다를 뿐이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가까이서 봤을 때 정글이고 멀리서 보면 축사 안이다. 국가라는 큰 축사 안에 가족, 학교, 직장 등 다양한 이름의 울타리들이 얽혀있는데 사람들은 여러 개의 울타리를 넘나들면서 살아가고 있다. 이민을 간다 해도 축사의 이름이 바뀔 뿐 지켜야 할 울타리는 마찬가지이다. 이름과 크기가 달라졌다 해도 여전히 축사 안이다. 이래도 이민만이 정답일까? 생각해볼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