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bus Circle
뉴욕의 또 다른 이름은 바둑판 도시. 도로 체계가 격자형 직교로 짜여 모든 길이 가로와 세로로 통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수많은 관광객이 주소 한 줄만 달랑 들고도 가뿐하게 길을 찾을 수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런데 뉴욕 맨해튼 한복판에 바둑판 구획을 거스르는 원형교차로가 있다. 센트럴파크 남서쪽 모퉁이에 자리 잡은 콜럼버스 서클이다.
센트럴파크 꼭짓점에 자리한 원형 광장
콜럼버스 서클은 맨해튼 어퍼 웨스트 사이드에 있는 광장으로 브로드웨이와 센트럴파크 웨스트, 센트럴파크 사우스 도로가 교차한다. 구역은 물론 심지어 맨해튼 가운데 자리 잡은 센트럴 파크마저 네모반듯한 모양인데, 이곳에 원형 광장이 들어선 이유는 뭘까? 도심의 거대한 인공 정원, 센트럴 파크의 탄생과 관련이 깊다. 공원을 길쭉한 직사각형 모양으로 설계하면서 네 꼭짓점에 각각 광장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건물이든 도로든 네모 일색인 각진 도시 풍경에 자그마한 재미를 불어넣고자 했던 설계자의 깜찍한 의도가 아니었을까.
이탈리아가 기증한 콜럼버스 동상
광장 중앙에 높이 치솟은 동상이 유난히 눈에 띄는데,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의 조각상이다. 이탈리아 조각가 가에타오 루소(Gaetano Russo)가 1892년, 콜럼버스의 미국대륙 발견 4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었다. 높이 23미터에 달하는 대형 대리석 조각상으로 원기둥에 세 개의 뱃머리와 닻이 새겨져 있다. 콜럼버스가 신대륙 탐험에 나설 때 이끌었던 니나호, 핀타호, 산타마리아호를 상징한다. 이탈리아 제노바 출신인 콜럼버스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이탈리아계 미국인들의 자본으로 이탈리아 조각가에 의해 이탈리아 주조소에서 만든 메이드 인 이태리(Made In Italy) 작품이다. 뉴욕까지 배로 옮겨와 센트럴파크 남서쪽 모퉁이에 자리를 잡은 뒤부터 콜럼버스 서클이라 불렸다.
인구 유입에 발맞춰 교통 설계 재정비
20세기 들어서면서 콜럼버스 서클도 격랑의 시기를 맞는다. 새로운 지하철을 짓기 위해 땅을 파고 주변에 고층 건물을 짓자 기념비가 삐뚤어졌다. 지반이 흔들린 탓이다. 원래 위치에서 북쪽으로 2인치 움직였고 중심축 또한 1.5인치 기울어졌다. 게다가 맨해튼의 빠른 속도에 발맞춰 사람과 차가 갑자기 몰려들기 시작했다. 차가 양방향으로 원을 그리며 달리는 구조 때문에 거의 매일 사고가 잇따랐다. 결국 서클 지름을 넓혀 안전지대를 확보하고, 모든 차는 반시계 방향으로만 움직이도록 다시 설계했다. 보수 공사 과정에서 삐딱한 동상도 제자리를 찾았다.
공연장·쉼터의 공간으로 새단장
1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콜럼버스 서클은 꾸준히 새 옷을 갈아입었다. 앙상하게 홀로 서있던 동상 주변으로 화려한 분수와 조명이 생겼다. 로마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디자인이 콜럼버스 동상 분위기와 잘 어우러진다. 매일 사고가 끊이지 않았던 애물단지 교차로가 거리 예술가들의 공연장이자 만인의 쉼터로 다시 태어났다. 새단장한 콜럼버스 서클은 2006년 미국 조경건축가협회의 디자인 명예상, 2007년 루디 브루너 도시 어워드 은상을 받기도 했다.
타임 워너 센터(Time Warner Center)
콜럼버스 서클은 교차로를 둘러싼 고급 빌딩으로 더 유명하다. 그 중에서도 비교적 최근인 2004년에 문을 연 타임 워너 센터는 자본과 예술의 중심지로 대변되는 맨해튼의 면모를 집약한 공간이다. 워너 브라더스, 타임 출판사 등을 보유한 세계 최대 미디어 기업 타임 워너 본사 건물이다. 55층짜리 쌍둥이빌딩에 홀푸즈, 윌리엄 소노마, 아마존 서점 같은 쇼핑몰을 비롯해 세계 최초 재즈 전용극장인 재즈 앳 링컨센터(Jazz at Lincoln Center)가 입점해있다. 4층까지는 식당과 쇼핑몰이 들어서있고 고층은 센트럴파크를 조망하는 고급 아파트로 전형적인 주상복합 구조이다. 한쪽 건물에는 오성급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이, 나머지 한쪽 건물에는 CNN 스튜디오가 있다. 고급 빌딩답게 뉴욕 시내에서 가장 깨끗한 공공화장실을 자랑한다.
행운을 준다는 아담 조각상
타임 워너 센터에 사람이 몰리는 이유는 따로 있다. 문을 열자마자 마주하게 되는 커다란 남녀 누드 청동상 한 쌍이 유난히 눈에 띈다. 콜롬비아 출신 조각가 페르난도 보테로(Fernando Botero)가 만든 12미터 높이의 작품이다. 이름은 누드 조각상의 원초적인 느낌 그대로 아담과 이브이다. 그런데 이 조각상 어딘가 우스꽝스럽다. 금방이라도 터질듯 포동포동한 가운데 신체 비율에 비해 성기가 유난히 앙증맞다. 특히 아담의 성기는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쓰다듬어 고유의 진갈색 대신 빛나는 황금색을 띤다. 건물관리소가 주기적으로 덧칠을 하지만 어느새 그 부분만 다시 황금빛으로 반짝인다. 월스트리트에 있는 돌진하는 황소 청동상 중요부위가 노랗게 닳은 것과 같은 이유다. 자본으로 범벅된 타임 워너 센터 입구를 지키고 있는 아담의 성기를 만지면 나에게도 재물운이 들지 않겠냐는 기대감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