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negie Hall
철강왕 카네기의 꿈이 녹아든 곳, 카네기홀 Carnegie Hall
장르를 불문하고 음악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 쯤 서 보고 싶어 하는 꿈의 무대가 바로 카네기 홀이다. “부자인 채로 죽는 것은 수치”라는 명언을 남기고 재산의 90%를 사회에 기부한 전설적인 미국의 자선사업가 앤드류 카네기(Andrew Carnegie)의 이름에서 따왔다. 돈 없는 뉴욕 시민들이 품격 높은 예술을 참관할 수 있게끔 선의를 베푼 것이 카네기 홀의 태동이다.
카네기의 통 큰 자선사업으로 카네기 홀 탄생
카네기 홀 탄생 비화가 흥미롭다. 철강 사업가인 카네기는 60대 중반에 미국 시장 내 25%를 점유하고 있던 회사를 JP모건 회사에 매각하고 미련 없이 사업에서 손을 뗀다. 그리고는 록펠러처럼 자선사업에 온 힘을 쏟는다. 그의 인생을 둘로 나눈다면, 전기는 사업으로 이뤄진 시기이고 후기는 축적된 부를 사회에 환원하는 인생이었다. 카네기 홀 역시 그의 기부사업 중 하나이다. 카네기가 아내와 신혼여행을 즐기던 중 우연히 월터 담로시라는 지휘자와 친해지게 됐는데, 담로시가 뉴욕에 공연장을 짓고 싶다고 말하자 예전부터 예술에 관심이 많던 카네기는 200만 달러를 기꺼이 내놓으며 그를 돕기로 한다. 그렇게 1891년 카네기 홀이 문을 열었고 이후 뉴욕시가 인수했다.
음악인들의 꿈의 무대, 국가사적지로 지정
내로라하는 전 세계 음악인 4만 6천명 이상이 무대에 섰다. 카네기 홀 개관식 첫 공연에 차이코프스키가 특별 지휘를 한 것으로 유명하다. 카네기 홀이 클래식 음악가에게만 문턱을 허용한 것은 아니다. 마일즈 데이비스, 빌리 홀리데이, 엘라 피츠제럴드와 같은 유명 재즈 아티스트가 이곳에서 공연했고, 1964년 비틀즈가 처음 미국에서 공연을 한 역사적 장소이다. 카네기 홀은 그해 국가사적지로 지정됐다. 임형주, 조용필, 이미자, 이선희 등 수많은 국내 음악인들도 한 번씩 공연을 했다.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 우승자인 조성진이 이곳에서 리사이틀할 때 전석 매진된 일화는 유명하다.
카네기 홀에는 모두 3개의 공연장이 있다. 아이작 스턴 오디토리엄(Isaac Stern Auditorium)은 카네기 홀을 상징하는 공연장으로 좌석 수 2800석의 거대한 규모이다. 뉴욕 필하모닉이 1892년부터 1962년까지 상주 공연장으로 사용하다 링컨 센터로 옮겨 가면서 한때 철거 계획이 논의되기도 했지만 바이올리니스트 아이작 스턴이 물심양면으로 지원에 나서 그대로 보존할 수 있었다. 이후 그의 이름을 따서 1997년, 아이작 스턴 오디토리엄으로 바뀌었다. 좌석 수 600석 규모의 잰켈 홀(Zankel Hall)은 주로 실내악이나 소규모 관현악 공연에 쓰이고, 홀의 사장을 역임한 샌포드 와일과 조앤 와일 부부의 성을 따온 와일 리사이틀 홀(Weill Recital Hall)에서는 주로 독주회가 열린다.
재미있는 점은 공연 중에 관람객이 기침을 할 경우 직원이 달려와 목을 진정시킬 수 있는 간식을 가져다준다. 쾌적하고 편안한 공연을 제공하기 위한 카네기 홀의 배려이다. 카네기 홀의 역사와 모습이 궁금하다면 견학 프로그램을 신청해보자. 공연을 예매해 관람하지 않더라도 카네기홀 내부를 견학할 수 있다. 9월부터 다음해 6월까지 하루에 두어 차례 운영한다.
주소 : 881 7th Ave, New York, NY 10019
가이드 요금 : $12 ~$17
홈페이지 : carnegiehall.org